“어려서부터 영화가 좋았어요. 처음 영화를 접한 건 6살 때 어머니 등에 업혀 극장에 갔을 때였죠. 그래서인지 학창시절 영화를 좋아해 수도 없이 보러 다녔어요. 영화를 보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데 영화관 매점에서 일을 하면 영화를 실컷 볼 수 있을 것 같아 좌판에 간식을 들고 다니며 팔았어요. 대학에선 영화 연출을 전공했죠. 우연히 어떤 분이 제게 비디오 영화를 하는데 판권을 사줄 수 없냐고 하신 게 계기가 돼 20대 후반부터 영화 판권업을 시작하면서 영화계에 본격 뛰어들었죠.”
허은도 명보시네마 대표(61)는 영화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통한다. 영화 수입부터 배급, 영화 제작, 영화감독, 영화 관련 단체 등 평생 영화를 위해 일을 해왔다. 특히 최근에는 허 대표가 주관한 서울락스퍼인권영화제가 눈길을 끌었다. 올해 6월 열린 제1회 서울락스퍼인권영화제는 인권 운동의 대중화를 목표로 가장 대중적이고 재밌는 인권 영화를 통해 새로운 인권 운동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을 받고 있다.
“항상 대중과 함께…재밌는 인권 영화로 자유·정의·인권에 대해 쉽게 이야기할 수 있어”
“우리나라는 인권에 대해 너무 관심이 없어요. 특히 북한인권에 관해서 더 그래요. 기존에 북한인권 영화제가 많이 있지만 성공과 정착하지 못한 이유는 인권영화제라는 단어 자체가 딱딱하고 무겁게 느껴져 대중이 멀리하고 싶기 때문이죠. 거기에 프로그래밍 자체도 어려운 영화들만 선정한 것도 한 몫 해요. 그래서 제가 직접 나섰죠. 재밌는 인권영화를 통해 관객들에게 접근하면 자유와 정의, 인권에 대해 쉽게 이야기할 수 있거든요.”
“감독이 관객에게 강제로 주입을 시키려는 순간 영화는 잘될 수가 없어요. 영화는 항상 대중과 함께 나아가야 해요. 같이 즐기면서 영화제가 추구하는 바를 알려야 하죠. ‘락스퍼’는 꽃 이름인데 꽃말이 자유와 정의예요. 올해 첫 회를 시작하면서 아무 지원 없이 모든 걸 기획하고 프로그래밍을 했어요. 박선영 사단법인 물망초 이사장이 조직위원장을 수락해주셨고 이장호 영화감독께서 집행위원장을 맡아 주셔서 더욱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죠. 그분들께도 감사함을 표하고 싶어요.”
허 대표는 서울락스퍼인권영화제에 오세훈 서울시장이 참석한 이야기도 들려줬다. 오 시장은 락스퍼영화제는 이름도 너무 좋다며 개인 유튜브 채널에 락스퍼영화제 홍보영상을 게재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허 대표는 이에 힘입어 내년에는 ‘락스퍼국제영화제’라는 이름으로 세종문화회관에서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영화 관련 일을 해오면서 힘들었던 순간도 있어요. 2009년에 발생한 신종 플루였죠. 그 당시 ‘나무 없는 사회’라는 영화의 개봉을 앞둔 순간이었어요. 영화가 얼마나 좋았는지 CJ가 최초로 독립영화로 배급을 해줄 정도였죠. 그런데 개봉을 열흘 앞두고 신종 플루가 터졌어요. 개봉이 코앞이라 극장 스케줄도 있고 해서 개봉 일정을 조정할 수가 없었죠. 그 아픔은 말로 할 수 없어요.”
“보람찼던 순간도 있었죠. ‘태양 아래’라는 다큐멘터리를 상영했을 때였어요. 북한 어린이 ‘진미’의 시선을 통해 평양의 실상을 이야기하는 영화예요. 2016년에 개봉했는데 5월 5일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영화를 관람하셨어요. 더욱이 기억에 남는 건 그해 10월부터 박 대통령 탄핵이 시작돼 2017년 3월에 탄핵됐어요. 안타까우면서도 영화 일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아닌가 싶어요. 신기하게도 제가 가장 힘들었던 순간과 보람찼던 순간 모두가 국가적인 위기와 연관이 있었죠.”
“최근에는 코로나로 극장들이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지요. 사실 코로나가 터지지 않았어도 극장 자체가 사양 산업이에요. 특히 CGV 같은 경우에는 임대된 극장이 대부분이라 이와 같은 멀티플렉스들은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죠. 넷플릭스에 이어 내년에 디즈니까지 들어오면 영화는 안방에서 보게 될 거예요. 시대의 흐름은 어쩔 수 없어요. 영상미가 우수한 프리미엄 극장이나 고전 영화, 예술영화 전용관 등 특화된 극장만이 살아남게 될 거예요. 자생력을 가지고 버텨나가야 하죠.”
허 대표는 명보시네마 역시 올해 12월 문닫을 위기에 처했다고 밝혔다. 건물주와 협의를 봐야할 문제지만 지자체든 어디든 나서서 다같이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명보시네마는 단순히 상업을 목적으로 하는 곳이 아닌 기존 문화 활동의 중심이자 어르신들의 문화 향유를 해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저희 영화를 보러 오시는 관객들은 연령층으로는 어르신들, 그리고 좌우를 따지자면 자유 우파 성향의 관객들이 주를 이루고 있어요. 이런 분들이 많이 찾으면서 안정적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는데 갑자기 해체를 해야하는 상황이라고 하니 저도 고민이 많아요. 극장이 있는 상태에서 저의 소신에 따르는 문화 활동을 하는 것과 없는 상태에서 하는 것은 천지 차이죠. 지하에 두 개의 상영관이 있어 그곳으로 내려가는 방법도 있지만 지금도 적자가 나는 상황에서 개인한테는 큰 부담일 수밖에 없어요.”
보수 색채 영화 재생산 이뤄져야…내달 박 전 대통령 탄핵 영화 제작 돌입
영화계에서 보수우파로 꼽히는 허 대표로서는 활동하면서 힘든 점도 있다고 토로했다. 락스퍼인권영화제 폐막작이었던 ‘암살자’는 김정남의 정치적 암살에 민간 여성이 이용됐다는 이야기를 담았는데 정부가 처음엔 예술영화로 인정해 주지 않았다 한다. 부산 영화진흥위원회 앞에 가서 시위를 한 끝에 예술영화 인정을 받았다고 했다.
“다큐멘터리와 애니메이션은 비상업적인 영화이기 때문에 정부에서 예술영화로 인정을 해주게 됐어요. 예술영화로 인정을 받으면 영화진흥위원회가 운영하는 극장이 전국에 29개 정도 되는데 해당 극장에서 상영을 할 수 있죠. 어렵게 예술영화로 인정받았지만 개봉 2,3일 앞두고 인터넷진흥원에서 CGV나 롯데시네마와 같은 멀티플렉스에 전화해 이 영화를 상영 시 북한의 디도스 공격이 우려가 된다며 말도 안되는 이야기로 방해를 했어요.”
“결국 영화 관람객 수가 만 명도 채 안 됐어요. 우리나라는 자유우파 문화가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죠. 이 정도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으면 얼마 남지 않은 우파 문화인들은 살아 나갈 수가 없어요. 우파 성향의 영화가 해외에 나오면 수입을 하지 않게 되고 관객이 볼 영화는 사라져만 가게 돼요. 반면 좌파는 그렇지 않아요. 우파와 달리 똘똘 뭉쳐 힘을 발휘하죠.”
허 대표는 ‘귀향’과 같은 좌파 영화는 정부에서 표도 사주고 필수 관람 영화로 지정해 300만명 가까이 관람했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이 여성을 강제 납치해 위안부를 시키는 영화를 본 아이들은 일본대사관 앞으로 뛰쳐나가게 된다면서, 이것이 바로 영화의 힘이라고 강조했다.
“자유우파쪽에서는 이런 것을 못해요. 아스팔트에서 목소리를 높이거나 정치권에만 관심이 있어요. 대중문화는 정신을 지배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신이 지배당하는 상태에서 정치만 이기면 아무 소용없다고 생각해요. 설사 정권 교체가 이뤄진다고 해도 5년 후에 다시 빼앗길 수밖에 없죠. 현재 대중문화에 대한 인식 부족이 상당히 커요. 자유주의 대중문화가 강한 나라는 절대로 쉽게 흔들리지 않죠. 그렇기 때문에 저는 우파 문화 운동에 많이 관심을 가져달라고 말하고 싶어요.”
허 대표는 좋은 영화란 작품성은 물론이고 대중과 공감을 할 수 있는 영화라고 말했다. 보통의 예술영화들은 일반인들이 보면 지루하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허 대표는 작품성이 있되 대중과 공감을 할 수 있는 그런 웰메이드 영화를 좋아한다고 밝혔다.
“좋아하는 영화를 이야기하자면 300편도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래도 그 중에서 세 작품을 꼽는다면 가장 첫 번째는 ‘영웅본색’이에요. 작품성을 떠나 남자라면 ‘저 정도는 돼야지’ 하는게 아닌가 싶어요. 영화 속 주윤발은 너무나도 멋있죠. 두 번째는 ‘라라랜드’예요. 라라랜드는 영화 속에 모든 희로애락이 담겨있어요. 노래와 춤이 있고 영화적인 기술도 우수한 웰메이드 영화죠. 세 번째는 ‘원스어폰어 타임 인 아메리카’예요. 영화 속 ost가 너무 좋아서 테이프가 닳을 정도로 들었어요.”
“앞으로 꿈과 목표는 많은 사람들에게 진정한 자유주의 대중문화를 일깨워주고 보여주는 것이에요. 현 정부 하에서는 정치 편향적인 영화들만 나오고 있어요. 자유민주적 시각으로 만들어낼 영화들이 너무 많은데 단 한 편도 제대로 나오질 않고 있죠. 연평해전, 인천상륙작전 등 이런 종류의 영화들도 정치적인 신념 없이 상업적으로만 만들었기 때문에 그저 돈을 벌고 끝나기 십상이에요. 우파 성향의 영화를 재생산하게끔 만들어줘야 하는데 재생산이 이뤄지지 않죠.”
허 대표는 그런 의미에서 내달부터 박 전 대통령 탄핵 영화 제작에 들어가 내년 5월에 개봉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이 잘했든 못했든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탄핵은 말이 안 된다며 이건 분명히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전 대통령 재판의 모든 과정을 취재한 우종창 기자와 함께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이는 국민영화로 만들어야 해요. 한 나라의 대통령이 탄핵을 당했고 이와 관련된 모든 사람이 무죄로 나오고 있어요. 저는 박 전 대통령 탄핵도 민노총 주도하에 불을 지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젠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여줄 이런 영화들이 꼭 필요하니까 제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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