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릉 
광주 
제주 
목포 
사용하던 카드 서비스가 종료되어 아주 오랜만에 새로운 카드 상품을 찾았다. 교통과 통신 할인을 기본으로 커피전문점, 영화관 혜택이 높았던 몇 년 전과 달리 콘텐츠 구독, 공유 서비스 등의 할인 영역이 눈에 띄었다.
식사를 책임지는 편의점, 마트에 가지 않고 주문하는 새벽 배송, 요리보다 편리한 배달 문화…. 잊을만하면 도착하는 택배 문자와 식사 때를 알리는 오토바이 소리 이외 카드 상품에 우리의 현재 모습이 담겨있는 점이 흥미롭다. 특히 2030 선호 카드 리스트에는 대형마트, 백화점 할인보다 온라인쇼핑, 편의점, 배달 앱 등 요즘 일상을 반영한 상품들이 눈에 띄었다. 올해 초 한 카드사에서 발표한 연령대별 소비 업종은 그 차이를 데이터로 증명해 보였다. 특히 65세 이상 인구의 슈퍼마켓 카드사용 비율이 50대 이하 세대에 비해 높게 나타났다. 2040세대의 주요 소비 업종엔 슈퍼마켓과 대형마트는 등장하지 않거나 하위권에 머물렀다. 세대별 소비 공간에도 큰 차이가 있다는 점을 카드 데이터가 증명해주는 셈이다.
소비 데이터와 세대를 연결해보니 장소가 보인다. 2040세대는 점점 슈퍼마켓에 방문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간단한 식료품은 집 앞 편의점에서, 이외 원하는 상품은 새벽 배송으로 하는 등 모든 것을 집 근처에서 해결하는 것이 일상이다. 코로나19의 확산 이전에 이미 슈퍼마켓은 방문객이 줄어들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요즘 누가 마트를 가냐’는 우스갯소리는 어느새 세대를 구분하는 표현이 되었다. 슈퍼마켓은 더 이상 전 사회 구성원을 수용하는 공간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사회의 식료품점에서 장보는 행위가 익숙한 이들을 위해 슈퍼마켓은 꼭 필요하다.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는 슈퍼마켓이라는 공간을 다시 생각해볼 차례가 아닐까.
사실 슈퍼마켓은 우리에게 너무 익숙해서 이상하지 않은 공간이다. 카트나 바구니를 들고 입장하고 상품이 진열된 골목길을 돌아 계산대로 향하는 일련의 과정은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큰 차이 없이 진행되는 우리의 일상이다. 독일의 공간사회학자 마르티나 뢰브는 사람들이 특별한 성찰 없이 일상적인 공간을 창출한다고 이야기한다. 특히 다른 도시, 다른 국가를 갔을 때 인종, 문화가 다르더라도 비슷한 구조의 공간이 존재하는 현상을 흥미롭게 바라보며 대표적 예로 슈퍼마켓을 거론한다. 공간이 하나의 제도처럼 작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제도적 공간 슈퍼마켓이 일부 세대에게 외면받고 있다. 효율적 제품 배치와 관리가 목적이 아닌 우리, 즉 사람들을 위한 공간으로 슈퍼마켓은 적합할지 의문이 든다. 특히 슈퍼마켓을 가장 많이 이용하는 연령대인 60대 이상의 일상적 공간으로 우리 시대의 슈퍼마켓은 적합한 인프라를 제공하고 있을까.
이에 대한 대안을 유럽 최초로 오스트리아의 한 식료품 체인이 제시했다. 2003년 오스트리아의 슈퍼마켓 체인은 시니어 특화 설계를 반영한 매장인 ADEG Aktiv 50+를 소개했다. 시력이 예민한 시니어를 위해 조도가 낳은 조명을 설치하고 이동이 편리한 넓은 통로에 미끄럼방지용 바닥을 깔았다. 통로마다 설치된 보조 손잡이를 통해 의지하거나 곳곳에 놓여있는 접이식 의자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천천히 장을 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바구니가 부착된 휠체어와 전동식 카트를 제공하고 모든 선반은 제품을 꺼내기 편한 낮은 높이에 놓여 있다. 시니어를 위해 큰 글씨로 쓰인 가격표와 돋보기를 빌려주는 서비스까지 놓치지 않았다.
베이비 붐 세대의 은퇴와 더불어 점차 증가하는 우리나라의 시니어 인구 비율을 고려할 때, 오스트리아의 슈퍼마켓이 국내에서도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실버주택이라는 생활공간뿐만 아니라 다양한 일상의 장소가 라이프사이클에 맞게 진화하여야 한다. 여가 시간이 증가하지만 다양한 활동을 접하기 어려운 시니어들을 위해 미국과 일본에서 출발한 시니어를 위한 복합문화공간 또한 유심히 보아야 하겠다. 미국의 모어댄어카페의 경우 시니어들의 아지트처럼 카페를 중심으로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저렴한 식사를 중심으로 건강, 컴퓨터, 여행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여 시니어들의 공동체 활동을 도모하는 허브로 작용한다. 특정 세대를 위한 커뮤니티 공간을 통해 시니어 개인의 건강, 나아가 건강한 사회를 구성하는 데에 기여하고 있다.
당연하게 생각되는 슈퍼마켓 공간이 우리 시대의 변화에 대응했다. 제도적 공간이 우리와 함께 유기적 존재로서 살아가는 모습으로 공간의 지속가능한 대안을 제시한다.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간과할 수밖에 없었던 공간에 변형을 추구하며 변화하는 사회와 다양한 계층을 포용하는 제도적 공간으로 거듭났다. 건축공간을 구성하는 물질만 나이를 먹을 뿐 아니라 공간을 경험하는 우리 또한 세월의 변화에 따라 일상이 달라질 수 있음을, 슈퍼마켓이라는 지극히 제도적인 공간의 변화를 통해 입증한 것이다.
명절을 맞아 오랜만에 TV에 장시간 노출되어 있었다. 한 채널에 머무르지 못하고 리모컨을 누르며 홈쇼핑 채널의 놀라운 세계를 경험하며 공간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었다. 홈쇼핑은 분명 유튜브와 넷플릭스 등 플랫폼과 온라인 쇼핑에 익숙한 세대와는 다른 세대를 겨냥하고 있다. TV와 스마트폰이 각기 다른 세대를 위해 진화하고 있는 만큼 오프라인 공간의 진화 또한 눈여겨봐야겠다는 다짐이 들었다. 시간이 흐르며 변화하는 것은 공간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 즉 라이프 사이클인 만큼, 다양한 사회 연령층을 위한 장소의 등장이 기대되는 바다.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좋아요
감동이에요
화나요
슬퍼요
추천해요0
좋아요0
감동이에요0
화나요0
슬퍼요0
대하역사소설 ‘우리나라 삼국지’ 
연재소설 ‘최초의 당신’
기사제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