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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진의 스카이코리아

고이즈미 日총리는 왜 갑자기 정계은퇴 했을까

‘살아 있는’ 요코다 메구미 죽이기 북‧일 협상 막전막후

기사입력 2021-11-16 10:40:48

▲ 조정진 논설주간
 고이즈미 준이치로 제87~89대 일본 총리는 20089의원으로서의 능력을 총리 재직 시절에 전부 쏟아 부었다는 말과 함께 갑작스럽게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본인이 원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총리 임기를 연장할 수 있었던 고이즈미의 깜짝 퇴진은 의외였다. 하지만 매사 그렇듯이 진실을 알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고이즈미의 돌연 총리직 사임과 은퇴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진행된 북·일 정상회담 때문이다. 오랜 막후교섭 끝에 고이즈미는 2002917일 일본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해 북·일 평양선언을 채택하고 그해 10월 하스이케 가오루 부부 등 일본인 납북자 5명을 귀국시켰다. 여기까지는 큰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200411월 제2차 북·일 정상회담 끝에 일본인 납북자 8명과 함께 돌아온 소녀 납북 피해자요코다 메구미의 유골이 가짜로 밝혀지면서 터졌다.
 
·일 수교협상은 허종만 조총련 부의장(현 의장)과 다나카 히토시 일본 외무성 외무심의관 사이에 이루어졌다. 허종만은 북한이 메구미를 납치한 진짜 이유를 고백했다. 재일교포 출신 무용수 고영희가 김정일의 후처가 된 후 외부 활동을 못하게 되자 심심하고 외로워 말벗과 취미인 배드민턴을 함께 할 여자 아이가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일본에서 성장한 고영희는 조선어보다 일본어가 편했고, 취미가 배드민턴이었다.
 
메구미는 13세이던 197711월 일본 니가타현에서 북한 공작원 신광수한테 납치됐다. 중학교 1학년생 메구미는 학교 배드민턴부에서 연습을 한 뒤 하굣길에 실종됐다. 북한은 고영희의 말벗 겸 배드민턴 파트너로 메구미를 데려간 것이다. 고영희와 일상을 같이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김정일 가족의 사생활을 공유하며 김정철, 김정은, 김여정의 일본어 선생노릇도 했다. 북한이 메구미를 돌려보낼 수 없는 이유다.
 
메구미는 어린 소녀 때 남북 돼 납치 피해자의 대명사처럼 일본 국민 사이에 인식되고 있다. 메구미 문제를 풀지 않고선 양국이 학수고대하는 북·일 국교정상화는 불가능하다. 일본은 미국보다 먼저 북한과 수교해 북한 시장을 선점하는 게 계획이고, 북한은 일본과 수교해 거액의 식민지배상금을 받아내는 게 꿈이다. 허종만과 다나카는 ‘(살아 있는) 메구미가 사망했다고 발표하고, 아무 유골이나 화장해 송환하기로 합의했다. 유골은 섭씨 1200도 이상 가열하면 DNA가 파괴된다는 점에서 착안했다.
 
하지만 꼼수는 언젠가 탈이 나는 법. 일본 과학경찰연구소와 도쿄대 의대는 감식불가판정을 내렸지만 DNA를 수백만 배로 증폭하는 기술인 유전자중합효소법(nested PCR)으로 감식한 데이쿄대 법의학부 토미오 요시이 교수가 유골은 가짜라고 감식했다. 일본 국민을 속이려던 고이즈미와 김정일의 메구미 가짜 유골 진짜 만들기극비 프로젝트는 실패하고 만다.
 
메구미가 북한에 납치됐다는 정보는 1987년 대한항공 858기 폭파범 김현희가 납북된 일본인 여성한테 일본어를 배웠다고 말한 것을 계기로 알려졌다. 또 19971월엔 공작원 출신 탈북인 안명진이 메구미가 북한에 의해 납치됐다고 증언했다. 안명진은 메구미가 40시간 넘게 북한 공작선에 감금돼 격렬하게 울부짖고 선실 벽에 손톱을 심하게 긁어대 북한에 도착할 즈음엔 손이 뻘겋게 피로 물들었다고 털어놨다. 올해 6월 열린 제1회 서울락스퍼인권영화제 개막작 납치(원제 메구미에 대한 맹세’)’는 이 증언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메구미 납치범 신광수 신원도 밝혀졌다. 주한미군으로 근무 중 월북했다가 귀환한 로버트 젱킨스의 아내 소가 히토미는 신광수가 직접 메구미를 납치한 사람은 자신이라고 말했다“1970년대 후반 평양 시내 초대소에서 메구미와 함께 산 적이 있다고 밝혔다. 신광수는 1985년 한국에 잠입했다가 간첩 혐의로 체포돼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김대중정부가 가석방으로 출소시켜 2000년 비전향장기수의 일원으로 북송됐다. 일본은 신광수의 신병 인도를 강력히 요청했으나 한국 정부가 거부해 한·일관계 악화의 계기가 됐다.
 
영국 정보기관(MI6)이 평양에서 촬영해 제공한 메구미 생존 사진 2장을 확보하고 있던 미국은 배신자고이즈미에 메구미 사진을 이메일로 보내 총리직 퇴진을 압박했다. 미국보다 먼저 북한과 수교하려다 괘씸죄에 걸린 것이다. 김현희는 20171129일 산케이신문과 인터뷰에서 메구미가 지금도 살아 있다는 정보를 확인했다. 공개되면 곤란해지는 비밀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일본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메구미는 1978년 고교생 때 전북 군산 해수욕장에서 납북된 김영남과 1986년 결혼해 딸 김혜경을 낳았다. 김영남은 20066월 금강산에서 어머니와 28년 만에 재회했다. 메구미는 지금도 살아있다.
 
▲ 2002년 9월 17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오른쪽)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평양 백화원에서 북·일 평양선언에 서명한 후 악수하고 있다. 김정일은 이때 일본인 납치를 인정하고 사과했다. [사진= 뉴시스]
 

 [조정진 기자 / skyedaily@sky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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