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을 먹으면 토했다. 신생아 5만 명 가운데 1명씩 영문도 모른 채 죽었다. 운 좋게 살아남아도 바보가 됐다. 평생 걷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는 중증 장애를 피할 수 없었다.
비극의 원인은 모유였다. 유전적 결함으로 모유가 소화되지 않았고, 분해되지 않은 아미노산(페닐알라닌)은 뇌에 독처럼 쌓였다. 젖이 아닌 고기와 생선을 먹어도 마찬가지였다. 페닐알라닌이 일으킨 선천성 대사이상 증후군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가장 완벽한 음식이라던 모유가 어떤 아이들에겐 날마다 마시는 독약이었다. 치료법이 없던 시절 영국에서 기적같은 일이 벌어졌다.
“제발 우리 아이를 살려달라!” 두 살배기 딸 실라 존스를 안은 어머니가 울먹였다. “치료법은 없다. 수용소로 보내라.” 의사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원인이 단백질(페닐알라닌)이라면 그걸 뺀 음식을 먹이면 되지 않느냐?” 이 한마디가 의학 역사를 바꿨다. 영국 버밍엄 어린이 병원 호르스트 비켈 박사는 1951년 생화학자 에블린 힉맨스 도움으로 페닐알라닌을 걸러낸 분유를 만들었다. 맛은 끔찍했지만 존스 목숨을 살렸다. 약이 아닌 음식으로 유전병을 치료했다.
특수분유는 한국에 없었다. 선천성 대사이상 환아 부모들은 보따리상을 통해 애보트(미국)와 메이지(일본) 특수분유를 1통당 6만 원에 샀다. 배송이 늦어지면 굶겨야 했기에 부모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젖먹이를 치료하던 대학병원 교수는 분유회사에 특수분유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신생아 0.002%를 위한 특수분유는 만들수록 손해였다. 자본주의 논리상 특수분유 제조는 바보짓이었다.
그러나 매일유업은 달랐다. “단 한 명의 아이라도 소외받아서는 안 된다.” 고(故) 김복용 창업주는 특수분유 개발을 지시했다. 팔수록 적자라는 보고를 받으면 이윤이 나지 않아도 좋다고 말했다.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던 김복용 회장은 “비용을 따지지 말고 만들라”고 강조했다. 김복용 회장에게 특수분유 제작은 식품 판매가 아니라 생명 구제였다.
매일유업은 창립 30주년이었던 1999년부터 평택공장에서 특수 분유를 생산했다. 공정은 까다로웠다. 선천성 대사이상 환아에게 일반분유는 독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꼬박 24시간 동안 분유를 만드는 기계를 분해하고 씻은 다음에 재조립해야만 했다. 매일유업이 손해를 감수하고 만든 앱솔루트 8종 덕분에 갓난이들이 비로소 맘 편히 배를 채우고 건강하게 자랐다.
아들도 아버지를 닮았다. 김복용 회장이 세상을 떠난 2006년 아들 김정완 회장의 결정도 남달랐다. 출산율이 떨어지고 우유소비가 줄어드는데 전라북도 고창에 상하농원을 짓겠다고 나섰다. 농민이 재배한 유기농 재료로 햄과 치즈, 된장을 만들고 소비자가 체험하는 6차 산업을 진흥시키겠다는 포부였다. 매일유업 안에서도 수익성이 없다며 말렸지만 김정완 회장은 “숫자를 따라간다고 돈을 벌 수 있는 게 아니다”며 밀어붙였다.
특수분유와 상하농원은 경영학 논리로 따지면 바보같은 결정이었다. 매일유업이 신뢰를 쌓는 동안 경쟁사 남양유업은 자본주의 우등생처럼 거침없이 질주했다. 현금부자로 불렸던 남양유업은 매출을 5000억 원대(1999년)에서 무려 1조 3000억 원대(2012년)로 늘렸다. 매일유업도 뒤질세라 커피와 치즈, 유기농 제품까지 앞세워 성장했지만 1등의 벽은 높았다. 그러나 남양유업 부조리는 2013년 5월 언론 보도로 드러났다.
“물건 못 받아? 죽여버린다!” 남양유업 영업사원은 아버지뻘인 대리점주를 협박했다. 매일유업이 아이를 살리기 위해 공장 기계를 멈췄지만 남양유업은 밀어내기로 사람을 벼랑 끝으로 밀었다. 매출을 높이려고 주문하지도 않은 제품과 유통기한이 임박한 제품을 떠넘기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조사한 결과 남양유업은 대리점에 제품을 밀어내기하고 판촉사원 임금을 전가하는 등 불공정행위를 일삼았다.
소비자는 바보가 아니었다. 화난 소비자들은 남양유업 불매운동을 일으켰다. 남양유업은 로고를 가린 제품을 내놓는 꼼수를 썼지만 소비자는 바코드를 찍어가며 남양유업 제품을 골라냈다. 남양유업 불매운동은 냄비처럼 끓다가 식는 일회성 분노가 아니었다. 매일유업은 상하농원을 개장한 2016년 남양유업을 매출에서 앞질렀다. 한 번 뒤집힌 판세를 돌이킬 수 없었다.
남양유업이 보여준 행보는 자멸이었다. 반성은커녕 눈총을 받을 짓만 일삼았다. 남양유업은 2019년 맘카페에서 매일유업을 비방했다. “매일유업 우유에서 쇠맛이 난다.” “목장이 원전 근처라서 방사능이 나온다.” 섬찟한 유언비어를 퍼트리다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실무자와 홍보대행사의 자의적 판단이라고 변명했으나 검찰은 수사 결과 홍 회장의 지시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창업주 외손녀 황하나씨 마약 투약 사건도 눈총을 받는 계기가 됐다.
결정타는 2021년 터진 코로나 마케팅이었다. 남양유업은 불가리스에 코로나19 억제 효과가 있다고 발표했다. 주가는 잠시 뛰었지만 국민의 불안심리를 악용한 대가는 혹독했다. 잇따른 악재로 눈총을 받던 홍 회장은 결국 2024년 1월 남양유업 경영권을 사모펀드(한앤컴퍼니)에 넘겼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올해 1월29일 회삿돈을 유용하고 거래계약 대가로 뒷돈을 받은 혐의로 홍 회장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소비자 눈길은 바보 매일유업에 쏠렸다. 손해를 보면서 특수분유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맘카페를 중심으로 “돈으로 혼내줘야 한다”며 구매 운동까지 나타났다. 남양유업과 달리 매일유업은 돈으로 살 수 없는 신뢰라는 자본을 만들었다. 착한 기업은 돈을 벌지 못한다는 통념은 깨졌다. 김복용 창업주와 김정완 회장에게 이윤이란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했을 때 소비자가 주는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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