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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수의 新삼국사 산책

벌휴왕(석씨)과 구도(김씨)의 갈등

구도를 경계한 벌휴왕의 한계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1-11-24 18:16:24

 
▲ 정재수 역사 작가
 신라 석씨왕조의 실질적 시조인 9대 벌휴왕은 즉위하자마자 신왕조 창업자로서의 정치행사를 실시한다. 즉위 이듬해(서기 185년) 정월, 석탈해릉(양정)을 찾아가 시조묘 제사를 지내며 석씨가 신라의 주인이 되었음을 고한다. 또한 대대적으로 죄수를 사면하며 석씨왕조 출발을 만천하에 알린다.
 
『삼국사기』는 벌휴왕이 ‘바람과 구름을 보고 점을 쳐 홍수와 가뭄 그리고 그해의 풍년과 흉년을 미리 알았으며 또한 사람이 사악한지 정직한지를 알아보아 그를 성인이라 일컬었다(王占風雲預知水旱及年之豊儉 又知人邪正 人謂之聖)’고 기록했다. 하늘의 이치를 알고 사람의 사정(邪正·사악함과 정직함)을 가리는 행위는 당시 왕이 갖추어야 할 중요한 덕목이다. 벌휴왕의 왕위승계가 지극히 정당함을 표현한 기록이다.
 
조문국 정벌의 진실
 
▲ 경주 동천동에 위치한 석탈해왕릉 모습. [사진=필자제공]
  
벌휴왕은 즉위 이듬해인 서기 185년(벌휴왕 2년) 2월, 전격적으로 조문국(召文國) 정벌을 단행했다. 조문국은 경북 의성에 소재했던 고대 소국이다. 『삼국사기』 기록이다. ‘2월, 파진찬 구도와 일길찬 구수혜를 좌우군주로 삼아 조문국을 정벌했다. 군주 명칭은 여기에서 시작됐다(二月 拜波珍飡仇道一吉飡仇須兮爲左右軍主伐召文國 軍主之名始於此).’ 조문국 정벌을 주도한 인물은 구도(仇道)와 구수혜(仇須兮)이다. 둘 다 김씨로 김알지의 직계 후손이다. 다만 『삼국사기』는 조문국 정벌의 결과만을 기록하고 있다.
 
이에 비해 『신라사초』는 조문국 정벌의 배경과 진행사항을 구체적으로 적고 있다. ‘2월, 달문(達文)이 조문국에서 반란을 일으키며 말하길 ‘골품이 아닌 벌휴(伐休)가 왕위를 훔쳤다. 이는 조종의 법도에 어긋나니 천하가 함께 토벌하여야 옳다’고 했다. 감문(甘文), 아슬라(阿瑟羅), 사벌(沙伐) 등이 호응하니 왕이 걱정했다. …(중략)… 이에 왕은 구도와 구수혜를 좌우군주로 삼아 조문국을 공격했다. 구도는 구산(龜山) 동북쪽에서 나오고, 구수혜는 곧장 아화옥(阿火屋) 큰 길로 향했다. 양쪽 군은 서로 완급을 조절하는 계책을 썼으며, 구도가 무녀(巫女)로 군대를 만들어 관문의 수비병을 습격하고 곧바로 그 도읍에 이르렀다. 우을(牛乙)이 내응하며 마침내 난이 평정됐다.’
 
달문은 박씨왕조 아달라왕의 아들이다(『삼국사기』는 아달라왕이 아들이 없어 벌휴왕이 왕위를 승계했다고 기록함). 석씨 벌휴왕에게 왕위를 빼앗긴 달문은 조문국에 들어가 난을 일으킨다. 오로지 박씨왕조의 왕위를 되찾기 위해서다. 그러나 벌휴왕이 파견한 구도에 의해 달문의 난은 평정되며 달문에 동조한 조문국은 유탄을 맞아 멸망했다.
 
구도를 경계한 벌휴왕
  
▲ 경북 의성군에 위치한 조문국사적지 비석. [사진=필자제공]
    
구도는 조문국 정벌에 기여한 공로로 승승장구한다. 파진찬(4등)에 봉해진 구도는 이후 백제와 벌인 모산성(충북 진천·188년)과 구양성(충북 괴산·189년) 전투에서 연거푸 승리하며 정치적·군사적 입지를 확고히 다진다. 그러나 구도는 와산성(충북 보은·190년) 전투에서 백제에 패하며 지방의 성주로 좌천된다.
 
『삼국사기』 기록이다. ‘가을 8월, 백제가 서쪽 국경에 있는 원산향을 습격하고 또 진군해 부곡성을 포위했다. 구도가 굳센 기병 500명을 거느리고 그들을 공격하니 백제의 병사가 거짓으로 달아났다. 구도가 뒤쫓아 갔다가 와산에 이르러 백제에게 패했다. 왕은 구도가 실수했다해 부곡성주로 좌천시켰다(秋八月 百濟襲西境圓山鄕 又進圍缶谷城 仇道率勁騎五百擊之 百濟兵佯走 仇道追及蛙山 爲百濟所敗 王以仇道失策 貶爲缶谷城主).’ 구도는 단 한 번의 패배로 부곡성주(경북 군위)로 좌천되는 쓴 맛을 본다.
 
그렇다면 벌휴왕은 무슨 연유로 구도를 가혹하게 처벌하였을까? 이는 지극히 구도를 경계한 정치적 조치다. 벌휴왕 스스로가 박씨왕조를 무너뜨리고 석씨왕조를 출발시킨 마당에 혹여 구도로 의해 석씨왕조가 무너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앞섰기 때문이다. 더구나 구도의 딸 옥모가 벌휴왕의 장자인 골정태자의 비이다. 벌휴왕 입장에서 보면 구도는 외척이기도 해 얼마든지 석씨왕조를 직접적으로 위협할 수 있는 무서운 존재다.
 
그러나 벌휴왕의 두려움은 두려움으로 끝나지 않고 현실의 역사가 된다. 옥모가 낳은 아들, 즉 구도의 외손자가 11대 조분왕과 12대 첨해왕이 되기 때문이다. 벌휴왕으로서는 자신의 손자가 석씨왕조를 이었으니 그나마 다행이지 않을까.
 
벌휴왕은 13년간 재위하고 서기 196년 사망한다. 『삼국사기』는 ‘궁궐 남쪽의 큰 나무와 금성 동문에 벼락이 쳐서 왕이 죽었다(震宮南大樹 又震金城東門 王薨)’고 기록한다. 또한 『신라사초』는 이렇게 적고 있다. ‘월궁(月宮)의 남쪽 수왕(樹王)이 벼락을 맞았다. 왕이 걱정하며 말하길 ‘짐에게 그 조짐이 있다’고 했다. 이에 도산(桃山)으로 들어가서 처벌을 기다리니 다음날 금성(金城) 동문에 또 벼락이 쳤다. 왕이 신당(神堂)에 자리를 마련하라 명하고 몸을 깨끗이 한 후 반드시 누워 조용히 죽었다.’
 
두 차례 벼락이 실제 자연현상인지 아니면 어떤 세력의 군사행동인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적어도 벌휴왕이 이를 순수히 받아들이며 죽음을 맞이한 대목은 왠지 씁쓸하기조차 하다.
 

 [스카이데일리 / skyedaily__ , skyedaily@sky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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