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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 폭탄주 창시자라고 주장하는 박희태 전 국회의장은 문재인정부 시절 가장 많이 사용된 용어 ‘내로남불’을 조어한 분으로도 유명하다.
박 전 의장은 기억에 남는 또 한가지 말을 남겼다. 소속 정당이 대선에서 패하고 난 다음날 당사에 출근해선 낭보를 전했다고 한다.
“여러분,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귀 기울이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X정권의 임기가 하루 줄어들었습니다.”
5년간 참고 살았건만
하루하루 그 말을 새기며, 마음 편히 살 날이 오길 5년 기다렸다. 그런데 5년이 될 때쯤 전에 봤던 안 좋은 장면들이 다시 나오려고 한다.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 말에서 그런 냄새가 났다.
“조국 문제하고 이거하고 비슷한 거 있으면 얘기를 해 보시오. 조작했냐 위조했냐.”
조국 전 법무부장관 딸 조민 씨의 ‘동양대 총장 표창장 위조’ 같은 위법 사항은 드러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지지자들은 멋진 정치를 기다렸는데, 딱딱한 재판을 하려 한다.
필자를 포함해 윤 당선인 지지자들이 그리 꽉 막힌 사람들은 아니다. 5년 동안 한숨 나오는 일을 봐 왔으니 이제부턴 감동적인 세상을 보고 싶을 뿐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상류층의 도덕적 책무)’ 같이 엄청 감동스러운 걸 원하는 게 아니다. ‘사방 100리에 굶어죽는 사람 없게 하라’는 가훈을 통해 이웃 사랑과 배려를 실천에 옮겼다는 경주 최 씨, 서울에서 고향 나주까지 찾아온 5년 고향 후배에게 “내려온 건 사적인 일인데 왜 공무용 말을 타고 왔느냐”며 사헌부에 통고해 처벌받게 한 최부 같은 조선시대 선비를 장관 후보로 찾아내라는 것도 아니다.
많은 걸 원하지 않는다
기원전 1세기 로마의 영웅 줄리어스 시저는 ‘시저의 아내는 의심조차 받으면 안 된다’는 명언을 남겼다고 한다. 아내의 불륜 소문을 들었을 때 진위를 확인하는 대신 전격 이혼한 데서 나온 말이다. 그후 공직자 가족은 어떤 부정한 의혹에 휘말려서도 안 된다는 엄격한 공직기준이 생겼다는데, 국민이 그런 어려운 걸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고위 공직을 지내신 분이 장관 후보의 조건을 장황하게 내건 걸 봤다. ‘투철한 철학적 확신, 청렴성, 다부짐과 열성, 역량과 실력, 팀플레이 정신, 애국심, 자유주의 이념과 세계관이 확고한 인재, 동료로부터 존경받는 해당 분야 최고의 전문가, 조직 관리 경험, 나라의 흥망성쇠를 고민하고 대한민국 건국 과정을 꿰뚫고 기업의 본질과 기업가 정신을 이해하는 사람.’
‘내가 못 하면 남도 못 한다”
죄송하지만 이런 사람은 본 적이 없다. 그게 쉽겠는가. 입각한 언론사 선배와 얘기한 적이 있었다. 30대 혈기로 정부의 잘못을 지적했더니 자기는 철학이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죽어도 못 하는 일은 남도 죽어도 못 한다.”
그때는 그분이 비겁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나이 들어 ‘라떼’가 되고 보니 조금은 이해가 간다. 그리고 위에서 고위 공직자가 언급한 장관 자격을 갖춘 사람은, 지구상에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역사는 되돌아보며 살자
하지만 한두 가지 소박한 충고는 잊지 말았으면 한다.
첫째 바쁘고 어려운 세상이지만 헷갈릴 때는 역사를 보자는 말이다. 멀리 갈 것 없다. 10여년 전을 보자.
2010년 11월 여론조사에서, 집권 3년이 안 된 이명박(MB)정부에 대해 61.6%가 ‘다른 정당으로 정권이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응답했다. MB정부 출범 직후 ‘보수를 지지한다’는 응답은 60%였는데, 3년 후 ‘보수가 싫다’는 응답이 70.8%였다.
당시 분석가들은 “정치는 기본적으로 최대의 감동 서비스인데 국민에게 어떤 감동을 주었는가”라고 물었다. 감동이 줄어든 이유는 MB정부가 ‘그들만의 리그’였기 때문이다. 정권 초 “교수 부부가 재산 30억원이면 양반 아니냐” “자연의 일부인 땅을 진정으로 사랑했기 때문” “그 오피스텔은 신체검사 결과 암이 아닌 것으로 판명돼 남편이 축하 선물로 사준 것” 등의 말이 나왔다. MB가 장관 후보자로 뽑은 사람들 입에서 나온 말들이다.
국민이 좋아하는 도덕·윤리·공정·상식
둘째 이명박 대통령, 김황식 국무총리,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 원희룡 한나라당 사무총장, 원세훈 국정원장, 윤증현 재정부 장관, 정종환 국토부 장관, 이만의 환경부 장관의 공통점은 병역면제자이자, MB정부 추락의 주인공이란 점이다. 당시 ‘한국사회에서 성공한 사람은 연줄과 인맥을 통해서’라고 대답한 사람이 79.1%란 여론조사가 나왔다. 지금이 자꾸 그때하고 비슷해지려 한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니 역사를 봐야 한다.
둘째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 국민은 도덕·윤리·공정·상식, 그리고 감동을 매우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내로남불 좌파의 역겨운 위선 덕분에 대선에서 승리했으니 윤석열정부는 도덕적 윤리적으로 “그러면 안 된다”고 국민은 말한다.
‘법이나 국회 청문회’ 대신 5년 사이 한껏 높아진 눈높이로, 또 도덕·윤리·공정·상식으로 장관 적임자인지 판단해야 한다. 법률만 다뤄온 분이니 억울할 수 있겠지만 대통령 위에 있는 것이 국민이고, 투표하는 것도 국민인데 어쩌겠는가.
감동스러운 세상 좀 봅시다
5년을 참았다. 문 정부의 허다한 실정이 보기 싫었지만 좋은 날이 오리라 고대하며 5년 참았다. 그러니 이제는 감동스러운 세상 좀 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동안 좌파가 자기들 것이라고 주장했던 ‘정의'를 모처럼 되찾아 왔으니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는가.
라떼 세대는 ‘잊지 말자 6·25’라고 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많다. 우리 국민은 사촌이 땅 사는 걸 배 아파하고, 우리 국민은 도덕적인 걸 좋아하고, 우리 국민의 정당 선호도는 쉽사리 바뀌고, 윤 당선인은 사랑하고 존경하는 국민과 알콩달콩 5년을 보내야 한다는 점. 그걸 잊으면 안 된다. 그런 특성은 잘 안 변한다. 어느 교수는 “5년 후에 과거보다 더 거센 물결로 좌파 세력이 정권을 되찾는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위로삼아 한 말씀하자면 공정함은 5년 통치를 편안하게 해 줄 ‘카리스마’라는 것을 만들어 준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 개인의, 그리고 아마도 국민 다수의 꿈은 소박하다. 그저 감동스러운 장면을 많이 보며 앞으로 5년, 공정 속에 편하게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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