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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며칠 전 한국형 추진체 누리호가 우주를 향해 성공적으로 비상했다. 세계 일곱번째 성공 국가라는 점, 특히 불과 두번 만에 거둔 성공이라니 자랑스럽기가 한량없다. 그것도 우리 독자적 기술이라는 것, 사실 처음 알았다. 우리 과학기술이 여러 분야에서 거둔 눈부신 성장과 발전의 결과물일 것이다.
흔히들 첨단 과학기술 입국의 마지막 퍼즐이 바로 우주항공 분야라 한다. 현대문명에서 로켓과 인공위성은 산업면에서나 정보면에서 필수적이기에 어느 나라나 자체 기술로 우주를 누비는 꿈을 꾼다.
우주산업의 발전은 군사적으로도 커다란 자산이 된다. 물론 국력 과시나 체제 선전을 위해 쏘는 나라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우주를 향한 원대한 꿈을 자국민에게 심어줌으로써, 국민의 자긍심과 창조적 상상력을 무한히 키워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영화 ‘천문’의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간다. 세종대왕과 장영실이 함께 열망했던 ‘우리 하늘’이 이제 열리고 있는 것이다.
누리호의 비상과 쾌거에 비상한 관심을 쏟고 있는 작가가 있다. 시각예술 작가 이돈아이다. 그의 다양한 서사들에서 우주가 빠지지 않는다. 한민족의 정체성에 대한 대목에서도 우주가 등장한다. 그만큼 작가에게 우주는 우리 현실만큼이나 큰 비중을 갖는다. 이는 재현적이면서 관념적이기도 하고, 신화적이기도 하다. 물론 독립적이기보다는 다른 대상들과의 융·복합적 상호작용의 것이기도 하다.
작가는 비디오 및 회화·미디어 파사드·렌티큘러 등의 다채로운 조형세계를 망라한 크로스오버를 작업의 특징으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 주요 랜드마크 빌딩의 미디어 파사드에는 작가의 작업이 거의 빠짐적이 등장한다. 지난해엔 수원시 광교에 신축된 경기도청사 로비 라운지의 미디어 작품 공모에 당선돼 설치된 바 있다. 마치 10폭 병풍을 분리하여 벽에 붙인 것 같은 작업으로, 높이가 240cm나 되는 화면마다 회화·영상·렌티큘러 등이 하나로 결합된 컴바이닝 혹은 옴니버스 양식의 영상이 실렸다.
수원 화성을 중심으로 경기도 역사와 철학의 근간이 되는 실학과 정조 등에 대한 서사와 다양한 지역의 도상들이 결합된 작품으로 쉽게 소통하면서도 흥을 돋우는 구성이 압권이다. 특히 역사나 철학에 대한 서사를 다루면서도 그의 화면은 언제나 밝고 화사하며 다이너믹한 특징을 띠고 있어 관람자들에게 힘찬 에너지를 심어주는 효과를 가진다.
다양한 서사가 결합되어 있지만 작가가 주로 강조하는 것은 ‘우리’다. 단청·민화·고건축·공예품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통 이미지들이 오늘과 내일을 기술하는 장면에 두루 편재한다.
가족의 이민으로 미국에서 오래 살았던 작가는 누구보다 ‘우리’에 대한 이해와 감각이 남다르다. 우리가 우리 안에서 ‘우리’를 파악하는 것보다는 타국에서 파악하는 것이 더 날카롭고 정확할 수 있다.
작가는 우리 문화의 신명나는 흥과 긍정의 세계관 등이 투영된 밝고 화사한 디자인들을 채집하는 감각이 누구보다 탁월하며, 또 그 정체성 아이콘들을 적절히 재구성, 여러 요소들과 접목시켜 친근하고도 참신한 화면들을 창출해 내는 그야말로 미디어 마이스터적 재능을 갖췄다.
작가의 크로스오버는 ‘공간과 시간’에서도 이루어진다. 작가에게 중요한 배경 공간은 우주다. 그의 우주는 우리의 문화유산 아이콘이 행성이나 인공위성처럼 궤도를 달리는 공간이다.
우주는 바로 우리·나(현실)와 맞닿아 있으며, 나(현실) 역시 우주라는 거대한 공간과 상호작용하는 것이다. 시간 개념 또한 ‘과거와 현재, 미래’의 크로스오버로, 과거에서 미래를 발견해 내고 미래는 과거의 그림자로 상호작용하는 것이 그의 작업이다.
“나는 과거·현재·미래를 넘나들고 공간을 초월하는 시공초월(時空超越)적 경험과 이상향(理想鄕)을 향한 오딧세이(여정·旅程)를 다양한 매체 복합에 의해 표현한다. 과거 조상들의 소망을 담은 길상화의 이미지들을 현재의 우리를 상징하는 기하도형과 같이 배치하여 현재와 미래에 싱크로나이즈 시키고, 연속과 혼재·해체·재구성으로 미래에 대한 변치 않는 인간의 소망을 이야기하고 있다.”(작가 시놉시스 중)
작가는 자신의 복합적 양식을 옴니버스라 부르고 있다. 여러 가지가 두루 망라되었다는 의미에서라면 ‘Omnibus’일 수 있지만, 그는 ‘Omni-Verse’로 부르고자 한다. 현실 세계 너머의 보다 초월적인 광대무변의 우주를 컨텍스트에 끌어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과 가상의 경계조차도 초극하고자 하는 융복합의 미학을 구현하고 있음이다. 작가의 복합적인 융합 양식은 어찌 보면 섬세한 서사이면서도, 보기에 따라서는 원대한 서사이기도 하다.
작가의 주된 작업 양식은 융복합이지만 비교적 단조롭고도 간결하면서 관조적인 양식도 병행되고 있다. 정적인 구조 속에서 조용한 변환이 역동적 비트를 압도하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복잡한 것과 단조로운 것의 공존 역시 작가다운 것이다. 렌티큘러 작업이 그 예다. 렌티큘러 기법은 상업적으로 많이 활용되고 있지만 작가 손을 거치면 고상하고 우아하며, 심지어 강렬하기조차 한 느낌을 만들어 낸다. 관찰자의 위치 이동에 따라 양안(兩眼)의 차에 의해 이미지가 변환되는 것이 개성적인 예술적 텍스트로 활용된다.
작가는 최근 10점의 독립적이면서도 하나가 되는 ‘To be continued’(2022)를 발표한 바 있다. 황홀한 은하수를 배경으로 보름달이 떠 있는데, 발걸음을 옮겨 가면서 보면 점차 달항아리로 변환되는 것이다. 이는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지만, 작가에게는 이것이 우리의 신화와 꿈·정체성을 담은 대상으로의 동일시 과정이다.
작가는 이 연작에 이어 세종대왕을 비롯 장영실·이순지 등이 꿈꾸었던 ‘우리 하늘’의 서사를 담은 작업에 착수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타블로로는 구현하는 데 한계가 있었던 이러한 주제와 서사가 우리의 출중한 미디어 작가에 의해 성취되고 있음이 참으로 기쁜 일이다. 밀도와 완성도 높은 융복합의 양식으로 우리의 얼과 열정을 증폭시키고, 아울러 고유의 흥과 끼를 마음껏 발산하면서 신명나게 하는 영상 아티스트 이돈아. 그의 다음 작품이 더욱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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