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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이 경기침체와 민심 악화를 타개하기 위해 가계대출 부실 가능성을 차단하고 금융 소비자의 이자 부담을 완화한다면서 '대환대출 플랫폼'을 주문하고 나섰다.
이를 두고 전통 금융권과 신흥 빅테크는 서로 다른 반응을 내놓고 있다. 전통 금융권은 대환대출 플랫폼이 도입되면 빅테크나 IT 기반 금융서비스 기업에 시장 주도권을 뺏길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반면 빅테크는 금융권의 과도한 ‘이자 장사’를 겨냥해 비판 여론이 고조된 상황에서 대출 절차를 간소화할 수 있는 대출플랫폼이 소비자에게 나쁠 게 없다며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금융당국은 대환대출 플랫폼 도입에 긍정적인 분위기다. 국회 인사청문회도 거치지 않고 취임한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11일 기자간담회에서 금융시장 안정, 취약계층 지원, 금융산업 혁신 등을 강조하며 고금리 대환대출 등을 속도감 있게 시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치권 대환대출 플랫폼 추진 급물살
대환대출 플랫폼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여러 금융사 대출상품의 금리를 한눈에 비교 조회하고, 그 중 낮은 금리로 갈아탈 수 있도록 하는 금융서비스를 가리킨다.
비대면으로 기존 대출금 해지와 신규 대출 실행이 이뤄지도록 하는 금융결제원의 ‘대출 이동 인프라’와 각 금융회사의 대출 상품을 한데 모아 비교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핀테크 업체의 ‘대출 비교 플랫폼’이 결합된 형태다. 이 서비스가 도입되면 금융소비자들은 은행을 직접 방문하지 않고도 플랫폼에서 가장 저렴한 대출상품으로 갈아탈 수 있게 된다.
여야는 한 목소리로 전통 금융권의 고금리 이자 장사를 비판하고 경기침체에 따른 민심악화를 지적하며 금융권에서 대환대출 플랫폼을 도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치권은 고금리 대책 중 하나로 대환대출 플랫폼을 거론하며 지난해 하반기 이후 중단됐던 대환대출 플랫폼 논의를 본격적으로 재개했다.
국민의힘은 이달 초 금융위원장이 임명되면 대환대출 인프라 구축을 위한 당정 간담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이 11일 김주현 금융위원장 임명을 국회청문회 없이 강행한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앞서 야당인 더불어민주당도 대환대출 플랫폼 ‘원스톱 대출이동제’ 도입 간담회를 열고 플랫폼 구축을 검토했다. 정치권이 대환대출 플랫폼 추진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이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5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대환대출 플랫폼이 지난해 추진됐으나, 금융권 상황으로 중단됐다”며 “하지만 당시보다 상황이 더 악화된 지금과 같은 금리 상승기에 무엇보다 필요한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성 정책위의장은 “지금도 고금리 상품을 저금리로 대환해주고 있지만 행정적 번거로움이 크다”며 “고금리상품에서 저금리상품으로 소비자들이 더 쉽게 대출을 옮겨갈 수 있는 비대면 플랫폼 구축을 위해 금융업권의 의견을 신속하게 수렴하고 신속하게 시스템 구축에 나서달라”고 금융당국에 요청했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도 다음날 금융위원회와 금융결제원, 은행연합회, 여신금융협회, 저축은행중앙회, 핀테크산업협회 관계자를 불러 ‘상환부담 완화를 위한 원스톱 대출이동제 도입 간담회’를 열고 “원스톱 대출 이동제(대환대출 플랫폼)를 시급히 도입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전통 금융권과 빅테크 기업 간 이견 첨예
대환대출 플랫폼은 지난해 금융위원회가 추진했으나 기존 금융권의 반대로 도입이 무산된 바 있다. 당시 전통 금융권은 플랫폼을 제공하는 빅테크 기업들에 종속되면서 금융 상품만 납품하는 ‘하청업체’가 될 수 있다는 불만을 제기했다. 또한 빅테크 기업들이 과도한 수수료를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는 주장도 폈다.
최근 정치권에서 논의를 재개하면서 다시 화두로 부상했지만 전통 금융권은 대환대출 플랫폼에 여전히 회의적이다. 은행권에서는 이번에도 대환대출 플랫폼 사업이 원활하게 추진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2금융권도 우량 고객 이탈 가능성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카드사들은 대환대출 플랫폼 도입 시 고객 이탈이 발생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카드론 등 카드사 대출은 중도상환 수수료가 없어 주로 단기 이용이 많은데 대환대출 플랫폼을 통해 한눈에 금리를 비교할 수 있게 되면 낮은 금리를 찾아 빈번하게 대출을 갈아타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김광수 은행연합회 회장은 대환대출 플랫폼에 대해 올해 초 기자회견에서 “은행 내부에서 거래 실적 등을 반영한 자체 신용평가를 이용해 신용대출 금리를 산출하고 있다”며 “이런 것까지 고려하면 금리 산출 정확도가 떨어져 플랫폼 이용에 대한 실효성이 높지 않을 것”이라고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 바 있다.
시중은행, 저축은행, 카드사 등 관계자들은 지금도 가격 경쟁 심화, 중개수수료 부담, 핀테크 종속 심화 등을 이유로 플랫폼 참여에 주저하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반면 빅테크 업계는 전통 금융권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고객 편의성을 무시한 ‘밥그릇 지키기’라고 비판했다. 또한 금융당국이 전체 금융권의 금리를 비교할 수 있는 업체를 선정해 고객 계좌·대환·상황 정보 등을 조회하는 데 발생하는 비용을 낮춰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빅테크 업체 관계자는 “현재 낮은 금리의 대환대출로 갈아타려면 상담, 서류제출 등을 위해 수차례 이상 영업점에 방문해야 한다”며 “각 금융기관을 아우르는 플랫폼 도입으로 소비자의 선택권을 확대하고 소비자 권익을 높이기 위한 당국의 획기적인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고금리인 카드론을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의 은행 신용대출로 바꿔주는 서비스를 시장에 내놓은 것은 토스뱅크가 처음이었다. 토스뱅크의 카드론 대환대출 서비스를 이용한 고객은 평균 7.75% 금리로 대출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카드론 이용 시 금리와 비교하면 평균 6.83%p 인하된 수준이다. 일각에서는 토스뱅크가 시범 운영을 거쳐 이달부터 카드론 대환대출 서비스를 확대 운영할 것으로 전망했다.
금융권에 따르면 서비스가 중단된 배경에는 고객 이탈을 우려한 카드사들의 거센 반발이 있었다. 카드업계는 토스뱅크가 카드론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사용하는 ‘웹 스크래핑’ 방식이 보안상 취약할 수 있다고 공격한 바 있다.
금융당국은 신임 금융위원장이 취임한 후 중단됐던 대환대출 플랫폼 도입과 관련한 논의를 다시 본격적으로 재개하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정치권에서 논의가 나온 만큼 대환대출 플랫폼 문제를 다시 추진할 것”이라며 "은행권 뿐만 아니라 2금융권, 핀테크 등 업권별 이해관계가 다 다르기 때문에 우선 의견을 들어볼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대환대출 플랫폼은 금융권 업계의 자발적인 참여가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다만 실제 도입까지 가는 길에는 적잖은 난항이 예상되기도 한다. 전통 금융권과 빅테크 간 근본적인 갈등의 원인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제기된 금융업권간 문제점들을 조율하는 게 쉽지는 않다”며 “실제 도입이 이뤄지려면 당국의 업권간 규제 형평성을 갖추고 참여 금융사들에게 인센티브를 부여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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