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밤에 피는 꽃’은 15년 차 수절과부 ‘여화’와 잘생긴 종사관 ‘수호’의 아슬아슬한 사랑을 다룬 코믹 액션 사극이다.
시대의 히어로 종사관 나으리는 밤이면 밤마다 한양도성에 출몰하는 도적을 잡기 위해 동분서주하는데 달덩이처럼 훤한 얼굴이 장안을 밝게 비추니 여인들이 그 모습을 보기 위해 밤마다 거리를 배회하였다고 한다.
종사관은 조선 후기 수도 한양을 지키던 최정예 부대 훈련도감 내 실무책임자로 종6품에 해당한다. 드라마에서는 종사관이 한 명뿐인 것처럼 비치지만 훈련도감에는 총 6명의 종사관이 있었다.
광화문에서 서대문역으로 향하는 길목 새문안교회 부근에 훈련도감 터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현 크레센도 빌딩이 있는 자리로 오래전 이곳에는 조선 후기 수도 방위를 담당하던 훈련도감(訓鍊都監)이 있었다.
훈련도감은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1593년 조총으로 위세를 떨치던 왜군에 대응하기 위해 류성룡의 건의로 설치되었다. 류성룡을 도제조로 포수(조총수)·사수(궁수)·살수(창·검수)의 삼수병으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징병이 아닌 장기근속의 직업군인이었다. 구성원도 유생부터 노비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무술 실력만 뛰어나다면 누구나 훈련도감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월급이 있었을 뿐 아니라 공을 세울 경우 노비에게는 면천의 혜택이 주어졌다.
조선은 훈련도감을 창설한 후 어영청·금위영·총융청·수어청 등을 차례로 설립해 이를 오군영이라 칭했다. 훈련도감·어영청·금위영은 따로 삼군영이라 하여 수도 방위 외에 근위대 역할도 맡았다. 최근 경복궁 수문장 교체 행사를 복원하여 진행 중인데 궐 주변을 순찰하는 ‘순라’ 역시 훈련도감의 주요 업무 가운데 하나였다.
훈련도감은 다른 군영의 두 배에 이르는 규모로 군인의 수가 5000명에 이르렀으며 반란군을 진압하거나 북벌에 투입되는 등 최정예 부대라는 평판에 걸맞게 중요한 임무를 처리했다.
조선 후기 왕권이 쇠락하여 금위영과 어영청의 규모가 대폭 줄어드는 와중에도 훈련도감만은 그 규모를 유지했다. 하지만 1881년(고종 18년) 신식 군대인 별기군이 창설되면서 이듬해 훈련도감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별기군 역시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임오군란의 발단이 되는 등 우왕좌왕하다가 1년 만에 해체의 길을 밟았다. 그리고 조선은 망했다.
한편 훈련도감의 분영 중 하나인 하도감에서는 군사훈련과 무기 제작을 담당했다. 하도감은 현 동대문디자인플라자·동대문역사문화공원 일대에 자리했다. 이곳 하도감 터에서는 훈련도감에서 사용하던 다양한 무기가 발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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