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그림이라곤 모르다가 치매 예방에 좋다고 해서 75세에 난생처음 문화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87세 되던 해에는 첫 개인전 ‘내가 사랑하는 말들’(6월28일~7월4일, 인사1010)을 가졌다. 이제는 작가라는 호칭에 제법 익숙해질 만도 하건만 윤오순 할머니는 부끄러운 미소를 입가에 올린다.
단아한 자태며 고운 미소에서 남다른 내공이 느껴진다. 젊어서 어떤 일을 하셨을까, 궁금해 조심스럽게 여쭈었더니 간명한 대답이 돌아왔다.
“밥했어요.”
정말이지 평생 직업 한 번 안 갖고 전업주부로 살면서 남편과 자녀 뒷바라지에 ‘올인’했다고 한다. 평생 붓 한 번 잡아보지 않은 분이 어떻게 이런 성취를 이뤄낼 수 있었을까?
작가를 처음 만난 곳도 인사1010 갤러리였다. 길을 가다 독특한 질감의 말 그림이 눈길을 끌어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곳에 할머니 화가가 있었다.
갤러리를 채운 작품 대부분이 온화한 느낌의 말 그림이었는데 놀랍게도 전부 색연필 작품이었다. 털 한 올 한 올을 곱게 그어 완성한 말이 금방이라도 앞발을 들어 올리며 화면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생동감이 넘쳤다.
정말 살림만 하시던 분이 맞을까 싶어 다시 여쭈었더니 진짜 자녀들 그림 숙제해 갈 때 옆에서 도운 것 말고는 붓 한 번 잡아본 적이 없단다. 다만 중년에 꽃꽂이 사범 자격증을 따서 88올림픽에 꽃꽂이 자원봉사를 한 적이 있다.
야생화 가꾸기는 할머니의 오래된 취미다. 자연석에 야생화를 활착시켜 돌과 식물을 하나의 작품으로 만드는 석부작 제작에 전문가급 식견을 갖고 있다. 눈썰미며 솜씨가 남다른 분인 건 맞는 사실이다.
윤오순 할머니는 6·25전쟁이 마무리되던 이듬해 수도여고를 졸업하고 이화여대 국문학과에 진학했는데 학비를 대주던 형부가 지원을 끊어 2학년까지만 다니고 졸업은 못 했다고 한다.
“남편이 완벽주의자여서 집안이 조금이라도 어지러운 것을 못 봤어요. 여자가 밖에 나다니는 것도 아주 싫어했고요. 다른 수가 있나요. 하루 종일 집에 붙어 앉아 쓸고 닦을밖에요.”
바깥어른은 75세가 되던 2002년 지병으로 작고했다. 곁을 지키고 있던 따님 박경화 씨가 거들었다.
“엄마는 제가 봐도 참 아까운 분이에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그나마 이렇게 그림도 그리시는 거예요. 아버지가 국가유공자라 대전 현충원에 모셨는데 나중에 엄마가 돌아가시면 합장을 하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엄마 말씀이 아버지 곁에 묻지 말고 훨훨 돌아다니게 무조건 유골을 뿌리라고 하시는 거예요.”
윤오순 할머니가 그림을 시작하고 개인전까지 연 것은 우연이 아니라 정말 일어나야 할 일이었다. 지난 전시회에 걸었던 작품 가운데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하늘로 솟구치는 듯한 말 위에 카우보이가 앉아 있고 그 옆에는 성조기가 펄럭이는 그림이다. 환한 햇살을 등지고 뛰어오르는 말과 카우보이를 색연필 하나로 표현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생동감이 넘친다.
이 작품은 외국에서 사업 확장 계획이 있는 지인이 딱 당신 모습이라며 바로 사 갔다. 전시장에 걸린 할머니의 그림 대부분은 새 주인을 찾아갔다.
“개인전을 열면서 정말 고민을 많이 했는데 이렇게 많은 분들이 이렇게 좋아해 주실 줄 몰랐어요. 여러분에게 많이 감사합니다. 딸이 동대문에서 주얼리 도소매를 하는데 밤에 일하거든요. 저도 피곤할 텐데 제 옆에 꼭 붙어서 이것저것 참 많이 도와주었어요.”
할머니는 슬하에 2녀 1남을 두었다. 자식들이 아니었으면 전시를 못했을 거라며 두 딸과 아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특히 직장에 다니는 큰 손자와 그 여자친구가 발품을 팔아가며 도록도 만들고 현수막도 설치하는 등 애를 많이 썼다. 윤 할머니의 전시회는 온 가족이 참여하여 일궈 낸 뜻깊은 가족행사였던 셈이다.
“가장 고마운 분은 갤러리 인사1010 대표님이에요. 원래 이곳이 대단한 분들만 전시를 하는 곳이라고 하는데, 저 같은 아마추어 작가에게 이런 기회를 주시니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전시회 시작한 뒤에도 몇 번이나 방문해서 격려해주셨어요. 제 그림을 진심으로 좋아해 주시는 모습에 제가 더 감동을 받았답니다.”
윤오순 할머니를 보니 미국의 국민화가 안나 메리 로버튼슨 모지스(Anna Mary Robertson Moses)가 생각난다. 모지스 할머니(Grandma Moses)라는 애칭으로 더 많이 알려진 분이다.
평생 농부의 아내로 살다가 75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80세가 넘어 첫 개인전을 연 것까지 윤오순 할머니와 모지스 할머니는 판박이다. 모지스 할머니는 101세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1600점의 그림을 남겼다. 심지어 250점은 100세 이후에 그린 것이라고 한다. 모지스 할머니도 그렇지만 윤오순 할머니를 보면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너무 늦은 나이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윤오순 할머니는 입안이 허는 베체트병으로 투병 중이다. 식사도 제대로 못 해 따님 경화 씨는 늘 마음이 안타깝다. 할머니의 눈부신 그림 뒤에는 이런 말 못 할 아픔이 있었다. 몇십 킬로미터를 뛰고도 새 기운이 넘쳐나는 말처럼 할머니가 툭툭 털고 일어나 더 많은 작품활동을 펼쳐주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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