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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싸의 세계] ‘천신만고 99년 삶’ 오롯이 정리한 유고집
1924년 함북 무산 출생 … ‘상록수’같은 교육자 삶 실천
6·25 전쟁 중 동남아에 오징어 수출한 사실 새로 알아
임요희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3-07-11 09:10:56
 
▲ 남윤덕 선생 99년의 삶을 기록한 ‘나의 겹 인생’ 표지.
“아버지와 함께한 기억이 많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학교일, 바깥일로 늘 바쁜 분이셨습니다. 쉬는 날도 없이 일하셨어요. 아버지가 왜 그렇게 바쁘게 사실 수밖에 없었는지 회고록을 읽고 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둘째 아들 남호(68) 씨는 아버지를 이렇게 추억한다. 고 남윤덕 선생은 100살에서 한 살 모자란 99년을 살았다.
 
99년의 삶을 직접 기록한 ‘나의 겹 인생’(토담미디어, 555쪽)이 최근 유작으로 출판됐다. 고인은 책이 출판되기 직전인 2023년 3월 지병으로 눈을 감았다. 이 책은 선생이 50년 가까이 교직에 몸담는 동안 교육계의 인싸로 살았던 기록이다.
 
“아버지는 1994년 고희를 맞던 해 폐암으로 한쪽 폐를 들어내는 큰 수술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규칙적인 식사와 운동, 무엇보다 강인한 정신력으로 암을 극복하셨습니다. 죽음을 이겨낸 후로 아버지는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남 선생은 평생에 걸쳐 여러 번의 죽을 고비를 겪었다. 그런 만큼 여려 겹의 삶을 살았다. 1924년 함경북도 무산군 백두산 기슭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선생은 11세 되던 해 100일간 가사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모두 죽을 것이라 믿었지만 한의사였던 외할아버지의 지극한 보살핌으로 기적적으로 소생하게 된다.
 
▲ 남윤덕 선생은 어릴 적 살던 함북 무산군 상평창 산골마을 지도를 여러 차례 그렸다. 토담미디어
 
이후 일본인이 세운 경성공립농업학교에 진학했으나 졸업을 앞두고 일제로부터 입대 통지서를 받게 되었다. 전쟁터에 끌려가 개죽음을 맞나 싶은 찰나 광복의 날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나 함경도 일대는 점점 좌경화되어 가고 단 하루도 공산 치하에서 살 수 없었던 선생은 목숨을 걸고 고향을 탈출했다.
 
▲ 경성공립농업학교 2학년(1940년) 재학 시절 학우들과 함께. 토담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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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 후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교사가 됐으나 당시 좌익계 남로당에서 교육자협회를 만들어 세력을 넓히는 것을 보고 이에 대항하기 위해 국민교육추진회를 결성하기도 했다. 6.25 전쟁이 터지자 좌익세력은 보복을 위해 그를 찾아다녔다.
 
“아버지는 3개월간 두더지 같은 생활을 했습니다. 위장 환자가 되어 모 병원에 입원해 있었는데 공산군이 이를 알고 병원을 급습해 의사건 간호사건 모두 사살했다고 합니다. 그 전날 밤 꿈에 노할머니가 나타나 계시를 하는 바람에 다행히 아버지는 몸을 피할 수 있었죠.”
 
죽음의 위협은 계속되었다. 6·25전쟁이 터지자 선생은 같은 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하던 아내와 함께 피난길에 올랐다. 이때 갑자기 들이닥친 인민군이 총부리를 겨누며 선생을 산속으로 끌고 가더라는 것이다. 보통은 양민을 사살할 때 그렇게 하곤 했다. 이렇게 죽나보다 하는데 인민군이 어떤 마음이 들었는지 그를 죽이지 않고 놔주어 극적으로 목숨을 건지기도 했다.
 
부산 피난 생활 당시 남 선생은 휼병감실 부산분실에서 군속으로 일하면서 강원도 정라진에서 범선 80척을 이끌고 오징어잡이에 나섰다. 당시 한국군은 동남아에 건어물을 수출하는 사업을 벌였는데 이 책으로 인해 전쟁 중에도 한국이 수출업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전쟁이 끝나 학교에 복직한 선생은 대파된 교실을 미8군 사령부의 자재를 이용해 완벽하게 복구해 놓기도 했다. 선생의 삶에 있어 이때가 가장 바쁠 때였다. 서울 M국민학교 6학년 담임으로 있으면서 불같은 열정을 발휘해 소위 명문으로 분류되던 경기·서울·경복 중학교에 학생들을 대거 진학시켰다.
 
▲ 전쟁으로 대파된 서소문 M국민학교 교사를 선생은 미군 자재를 이용해 말끔하게 복구시켜 놓았다. 토담미디어
 
“당시 명문중학교에 진학한 제자들이 모두 훌륭하게 성장해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날까지 찾아와 주셨습니다. 그분들도 팔순 연세인데 정말 한결같으셨죠. 그분들 말씀으로 아버지는 선생의 표상 같은 분이었다고 합니다. 누구보다 청렴하였고, 열정이 넘치셨습니다.”
 
선생은 교사로 재직하면서 호구지책으로 과외교사·무역업을 병행했다. 그 외에도 한강 모래채취업·대입학원·건축업·부동산임대업·광산업에 이르기까지 두루 섭렵했지만 한시도 교육자로서의 본분을 잊은 적이 없다.
 
1970년대까지 서울 시내 초등학교 시설은 형편없었다. 선생은 촌지를 거절하는 대신 부유한 학부모를 독려해 학교 앞 도로를 포장하고, 운동장의 담을 쌓는가 하면 사라진 교문을 새로 해 달기도 했다. 서울특별시장을 움직여 학교 앞 오거리에 신호등과 횡단보도를 설치해 등굣길 학생들의 안전을 도모했다. 
 
자전거 도둑으로 몰린 제자의 누명을 벗겨주고, 동료 교사의 폭력 행위를 바로 잡는가 하면, 토지대장을 뒤져 자칫 잃을 뻔했던 학교 소유의 땅을 되찾기도 했다,
 
“누가 보면 거짓말이라고 할 만큼 분주하게 살았다. 영부인부터 판사·검사·변호사·장성·의사·깡패 두목과 접촉했으며 대폿집 아낙네부터 요정의 기생들과 두루 술을 마셨다. 일생을 이렇게 허우적거리며 산 사람이 나 말고 또 있을까 생각하니 전설의 고향처럼 아득한 얘기 같기도 하고, 연극의 한 토막 같기도 하다.”
 
▲ 아버지가 왜 그렇게 바쁘게 살 수밖에 없었는지 회고록을 읽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는 둘째 아들 남호 씨. 임유이 기자
 
선생의 책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555페이지에 달하는 결코 만만치 않은 두께의 책이지만 글솜씨가 유려하고 내용이 흥미진진해 단숨에 읽어 내려가게 된다. 오히려 남윤덕 선생의 삶을 다 담기에는 이 책 한 권이 너무 얇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질곡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통과하며 100년에 가까운 생을 보낸 그는 역사의 산증인에 다름아니다. 남윤덕 선생 같은 분이 있었기에 우리는 이토록 유복한 세월을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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