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열의 스파이 세계] <1> 스파이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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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열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1-09 06:31:20

작년 12월4일 미 법무부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중남미 국장·볼리비아 대사 등을 역임한 중남미 전문 외교관 출신의 마누엘 로차(74)를 40년간 쿠바 스파이로 활동한 혐의로 기소했다. 최고의 방첩망을 자랑하는 미국의 정보수사당국에게 발각되지 않고 미 연방정부에 침투하여 고위 외교관으로 활동하며 무려 40년간 암약한 스파이 사건은 매우 경악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스파이 활동의 세계가 ‘무제한(unlimited)’이라는 사실을 감안해 볼 때 그리 놀랄 만한 사안은 아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직업군 중 하나가 스파이(spy)이다. 지금 이 순간에서 전 세계에서는 스파이 활동이 왕성하게 전개되고 있다. 작년에 국내에서도 제주 간첩망(ㅎㄱㅎ)·창원 간첩망(자통 민중전위)·전북 간첩망·민주노총 침투 간첩망 등이 적발되어 충격을 준 바 있다.

21세기에 들어서 국제사회에서의 스파이 활동도 급격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첫째, 스파이 활동 대상의 변화이다. 전통적으로 스파이란 자국의 안보와 국익보호를 위해 적성국의 정보를 비합법적으로 수집·분석·역공작하는 활동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제는 적성국뿐만 아니라 제3국 및 우방국에 대해서도 스파이 활동을 수행하는 것이 일반화되고 있다.

2013년 에드워드 스노든(전 CIA 분석요원)은 미국 국가안보국(NSA)이 기밀감시 프로그램을 통해 특정 대상뿐만 아니라 유럽연합(EU) 본부 및 우방국의 대사관 등을 상시적으로 도·감청했다고 폭로해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바 있다. 21세기 무한 경쟁의 시대에 세계 각국은 적성국과 우방국을 가리지 않고 국익을 위해 다양한 스파이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둘째, 스파이 활동 주체의 다양화이다. 종래에는 스파이 활동은 국가가 주체가 되어 적성국 및 타국에 대한 스파이 활동을 전개하였으나, 이제는 비국가행위자(Non-State Actors)들에 의한 스파이 활동도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즉 국가 이외에도 특정한 목적을 위해 활동하는 비정부기구(NGO)·산업스파이·알카에다 등과 같은 테러 단체, 마약·해적·불법무기 거래 등 국제범죄 단체 등이 스파이 전선에 대거 나서고 있다.

셋째, 스파이 활동 영역의 확대이다. 냉전 시기의 스파이 활동은 국가안보를 위해 군사정보를 수집·분석하고 역공작을 전개하는 데 집중돼 있었지만 탈(脫)냉전 이후 군사정보뿐만 아니라 정치·경제사회 및 과학·문화 정보의 획득으로 영역이 넓어졌다. 21세기에는 주요 산업기밀을 획득하는 산업스파이·사이버 영역 등으로 활동 반경이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향후 우주공간에서의 스파이 전쟁도 조만간 현실화될 것으로 보인다.

넷째, 스파이 활동 수단의 변화이다. 초기에는 인간 정보(Humint)·공개출처 정보(Osint)에 의존했던 활동 수단이 이제는 과학기술의 급격한 발달에 힘입어 영상정보(Imint)·신호정보(Sigint)·계측정보(Mesint) 등의 활용이 일상화되었다. 최근엔 정보기술(IT)산업과 인터넷의 상용화로 사이버 공간을 활용한 스파이 활동도 확대되고 있다.

다섯째, 스파이 활동 수법의 정교화 및 고도화이다. 스파이 활동의 영역과 수단이 다양화되다 보니 이에 따라 활동 수법도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배합하는 등 점차 정교화되고 고도화되고 있다. 또한 세계 각국과 비국가행위자들은 합법 영역과 비합법 영역을 넘나들며 공세적인 스파이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에 맞서 세계 각국은 스파이 활동을 제어하기 위한 법적 근거를 확보하기 위해 방첩 법제를 신설·보완하고, 방첩기관의 역할을 확대하며 방첩요원을 전문화하려는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이의 대표적 사례가 미국이 9.11 테러 이후 정보개혁법(Intellingence Reform Acts)을 제정하여 국토안보국(DHS)과 국가대테러센터(NCC)를 신설하고 16개의 정보공동체를 총괄하는 국가정보장(DNI)을 신설하는 등의 국가 방첩·안보 체제를 전면 정비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이에 역행하여 스파이 활동의 핵심 억지력인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폐지하는가 하면 검거된 간첩들이 형사 법제의 허점을 악용하여 석방되어 대낮에 나보란 듯이 활보하는 ‘스파이 해방구’가 되어 가는 모습이다. 2회부터는 국내·외 스파이 사건을 통해 스파이 세계의 정교성과 심각성을 지적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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