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형의 만사만감(萬事萬感)] AI에 너무 마음까진 주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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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형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2-01 06:31:00

얼마 전 학교에서 챗GPT 활용을 위한 연수가 있었다. 교육개발센터가 진행하는 연수로 몇 년 만에 오프라인으로 진행되었다. 신청자가 많았지만 초보자 순서로 추려 준 덕분에 운좋게 나도 챗GPT 실습자 명단에 올랐다. 맹추위에도 아랑곳없이 참석자들의 열기는 뜨거웠다. 챗GPT의 발전 속도는 엄청나서 수개월 단위로 새로운 버전과 기능으로 업그레이드된다. 영어로 구축된 데이터가 많으므로 영어로 묻고 답하는 것이 훨씬 풍부한 자료를 얻을 수 있지만, 영어와 한국어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니 언어 장벽은 존재하지 않는다.

관건은 그들과의 대화법을 익히는 것이다. ‘프롬프트’라고 일컫는 명령어를 넣어 주어야 인공지능(AI)이 알아듣고 우리가 원하는 요청에 부응할 수 있으므로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지시해야 한다. 친한 사이에 오갈 수 있는 “그걸 꼭 말을 해야 알아?”라는 식은 하나도 먹히지 않는다. 그들은 나의 마음을 읽을 수 없으니까. 따라서 이 똑똑한 AI를 곁에 두고 함께 일하려면 그들이 알아듣게 말할 수 있는 언어 능력이 필수다. 프롬프트는 신선한 외국어 같고 우리를 새로운 세상으로 인도하는 듯했다.

친한 친구 커플에게 발생하는 문제가 있다. 남편이 머리가 비상한 천재라서 문제 상황을 의논하면 챗GPT 수준의 답이 정확하게 나온다.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 주는 남편이다. 하지만 아내가 속상하거나 마음이 복잡한 것은 알아주지 못한다. 공감을 요구해도 불가능이다. 지내다가 서운함이 쌓여서 얘기해 보았는데 남편의 대답이란 게 본인은 감정과 정서 문제로 마음 상한 일이 매우 드물고, 또 어쩌다 그런 일이 있어도 이성적으로 바로 해결하고 넘어간다고 했단다. 불가능한 것을 바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친구는 남편과의 공감 문제는 포기하고 감성의 언어가 아닌 이성의 언어(프롬프트)만 사용하여 소통하게 되었다.

챗GPT 프롬프트를 실습하면서 그 친구 생각이 나서 혼자 빙그레 웃었다. 개성과 성향이 다른 다양한 사람들이 연이어 떠올랐다. 사람이란 게 각양각색이니 그 사람에게 딱 들어맞는 프롬프트를 마음속에 작성해 두고 사용하면 좋을 것이다. 아주 이지적인 사람에게 쓸 수 있는 프롬프트가 있고 감성 풍부한 이에게 먹히는 프롬프트가 있다. 아내가 편안하게 알아듣는 프롬프트가 있고 초등학생 아이들이 납득할 프롬프트가 있다. 그것을 구분하고 지정하여 잘 활용하면 불만 없고 평화로운 친구 관계와 가족 관계가 되지 않을까.

프롬프트를 소통 방법이라 해도 무난할 것이다. 우리 부서에서 쓰이는 프롬프트·우리 회사에서 통용되는 프롬프트·우리 동네 사람들이 인지하는 프롬프트를 구분해야 하고 지역구 국회의원 자리를 노리는 예비출마자라면 그곳에서 환영받을 프롬프트를 찾아내야 한다. 아무리 AI가 발달했다 해도 그것을 만든 사람의 지능이 한 수 위다. 따라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활용할 아주 미세한 수준의 프롬프트 개발이 가능하다. 실현된다면 개인적으로는 인생의 크나큰 무기가 될 것이고 사회적·국가적으로는 합의가 원활해질 것이다.

함께 연수를 받은 후배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AI 사만다가 주인공인 영화 ‘Her’(2013)를 보고는 정말 저런 세상이 올까, 온다면 언제나 경험할 수 있을까 했는데 벌써 ‘눈 달린’ 챗GPT까지 나왔으니 놀라워요”라고 후배가 말했다. 그렇다. ‘Her’는 국경과 나이를 불문하고 전 세계 남성들을 ‘후린’ AI 사만다가 주인공인 2025년 배경의 미래 영화다.

음성으로만 존재하는 그녀는 이메일을 요약해 주고 스케줄을 챙겨 주고 남자 주인공 테오도르의 침대 속 대화 상대까지 되어 준다. 시·공간의 제약이 없으니 언제 어디서나 호출할 수 있다. 졸립다고 하지도 않고 밤새 얘기 나눌 수 있는 아주 똑똑한 여자친구다. 이런 친구가 곁에 있다면 정말 편할 것이다. 남자 입장에서는 별별 기념일을 챙기지 않아도 되고 데이트 비용도 들지 않는다. 이성적인 친구이니 제대로 납득만 시키면 삐지지도 않는다.

영화 속 사만다는 현재의 챗GPT보다 발전된 버전이다. 테오도르의 감정에 일일이 공감해 주고 외로움을 달래 주니까. 남자는 사만다와 함께하면서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누린다. 그런데 이 장점은 단점이 되어 그들이 헤어지는 이유가 된다. 전 세계 남성의 마음을 손에 넣은 사만다는 매우 바빠지고 주인공 남자와 대화할 시간이 줄어든다. 최고의 연인이자 친구인 사만다를 독점하지 못하는 남자는 괴로움에 빠지고 결국 그들의 관계는 파국을 맞는다.

“사랑에선 언제나 독점욕이 문제지요. 사람 사이나 AI와의 관계나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그래도 사만다가 내게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후배가 말했다. “사만다는 벌써 스마트폰에 들어와 있잖아? 앞으로 사람들은 결혼도 안 하고 AI랑 살게 될까? 로봇 강아지를 기르면서?” 내가 물었다. 후배가 끄덕였다. “있잖아, ‘Her’는 이 말을 하는 영화 같아. 아무리 살갑고 똑똑하고 다정한 친구라도 너무 의지하진 말라. 너의 가장 친한 친구는 너 자신이니!”

AI의 현란함에 지나치게 자신을 맡기지는 말자. 그들도 인간을 닮아서 은근슬쩍 거짓말(AI hallucination)을 하고 때로는 능청도 떠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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