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미국이 9.11테러를 당하자 캐나다는 테러 및 안보 위협으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기존의 정보보안법을 강화하여 재개정했다. 이 법에 의해 최초로 기소된 사람이 캐나다 해군 정보장교 제프리 들라일(Jeffrey Paul Delisle)이다.
들라일은 1971년 캐나다 노바스코샤주 핼리팩스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졸업 후 1996년 예비군으로 해군에 입대했고 2001년 정규군으로 전환했다. 2006년 이후 캐나다 군사정보국과 합동참모본부에서 근무하며 안보위협 분석을 다루는 중요 직책을 맡았다. 그런데 그는 돌연 2007년 7월 캐나다 주재 러시아 대사관에 들어가 자신의 해군 신분증을 보여 주며 러시아 군정보국(GRU)에 비밀 정보를 제공하겠다고 제안하며 경제적 보상을 요구했다. 이때부터 스파이 활동이 시작되었다.
그가 이러한 결정을 내린 배경에는 경제적 어려움이 있었다. 수년간 누적된 경제 파탄 상황에서 두 자녀의 교통사고가 발생하고 치료비 부담에 시달리던 중 결정적으로 부인의 외도를 직접 목격하게 됐는데 이 모든 것이 경제적 궁핍에서 비롯된 것이라 잘못된 판단을 내렸던 것이다. 그는 간첩 활동을 통해 경제적 궁핍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들라일은 2008년 캐나다 장교를 양성하는 왕립군사대학에 입학했고 그해 7월 소위로 임관한다. 그는 양심에 가책을 느껴 2009년 스파이 활동을 중단하겠다고 통보했으나 러시아 GRU 요원이 딸 사진을 보여 주며 협박하여 계속 스파이 활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 들라일은 2011년 8월 핼리팩스에 위치한 다국적 해군 정보 및 통신센터에 배치되었다. 이 센터는 5개국(캐나다·미국·영국·호주·뉴질랜드)의 정보공동체인 일명 ‘파이브 아이즈(Five Eyes)’의 정보 데이터뱅크 기지로 다국적 특급 군사기밀시설이다. 또한 위성·드론·수중 장치를 통해 캐나다 해역에 들어오고 나가는 선박을 추적하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의 비밀자료에도 접근할 수 있는 기지다.
이에 주목한 러시아는 들라일에게 브라질로 휴가 갈 것을 지시했다. 2011년 9월 들라일은 휴가를 가장해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로 가서 GRU 공작관 빅터와 접선하여 5만 달러(캐나다달러)라는 거액의 공작금을 수령하고 새 임무를 부여받았다. 그의 귀국 때 국경관리청(CBSA)은 검색과정에서 통상 장기휴양지인 브라질에서 수일 만에 귀국한 점과 거액의 달러를 소지하고도 신고하지 않은 점을 발견하고 이를 군 당국에 통보했다. 그러나 군 당국은 들라일의 변명에 넘어가 특별한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파이브 아이즈와 나토의 군사정보가 러시아 쪽으로 유출되는 것을 포착하고 추적 중 이의 발원지가 캐나다 해군 정보장교 들라일이라는 것을 특정했다. FBI는 즉각 캐나다 정보기관인 캐나다 보안정보국(CSIS)에 이를 통보했다. 그러나 CSIS는 이를 파악하고도 내부 절차를 이유로 캐나다 연방경찰인 왕립기마경찰(RCMP)에 사건을 이관하지 않고 지체했다. 캐나다뿐만 아니라 미국 등 파이브 아이즈의 1급 정보가 줄줄이 빠져나가는데도 캐나다 정보당국이 이를 신속하게 차단하지 않자 FBI는 분통을 터뜨렸다. 뮐러 당시 FBI 국장이 캐나다 CSIS 국장에게 항의할 정도였다. 차선책으로 미국은 들라일을 미국으로 유인하여 체포할 것을 고려하기도 했다.
결국 2011년 12월2일 FBI는 CSIS를 제치고 직접 캐나다 연방경찰 RCMP에 들라일의 스파이 관련 정보를 제공했다. 이러한 사실은 FBI 방첩국장을 역임한 프랭크 피글리우치의 언론 인터뷰로 알려졌다. 캐나다 CSIS 정보조사 시스템의 중대한 결함이 원인이었다.
들라일의 기밀 유출에는 첨단수법이 동원되었다. 그는 사무실에서 플로피디스크 사용이 중지되자 컴퓨터에서 플로피드라이브에 보안장치가 미설치된 점을 악용하여 보안 조치된 컴퓨터에서 플로피디스크에 기밀을 저장한 후, 일반 컴퓨터에서 플로피디스크 내 자료를 USB에 복사하여 외부로 반출했다. 들라일의 기밀 전달 수단은 사이버공간이었다. 러시아 GRU는 2007년 8월 중동지역에 서버를 둔 웹사이트(gawab.com)에 이메일 계정을 개설하고 들라일과 공유했다. ‘문서 임시저장’ 기능을 활용해 들라일이 작성한 기밀을 30일 단위로 접수 후 해당 내용을 바로 삭제하는 방식을 사용하며 이른바 ‘사이버 드보크’ 즉 온라인상 간첩 장비 매설 장소를 운영했다.
2012년 1월13일 캐나다 RCMP는 정보보안법 위반 혐의로 해군 중위였던 들라일을 체포했다. 이 사실이 보도되자 캐나다뿐 아니라 미국 등 파이브 아이즈 동맹국들은 경악했다. 자국의 핵심 정보가 동맹국에 의해 유출되었다는 사실에 경악하고 캐나다의 허술한 기밀 보안시스템에 분노했다. 2013년 캐나다 연방법원은 들라일에게 4년에 걸쳐 11만 달러(캐나다달러)를 받고 러시아에 비밀정보를 제공한 혐의로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2019년 3월 법원은 재범 가능성이 낮다며 들라일의 가석방을 허가하고 석방했다. 그는 20년 형기 중 겨우 7년만 복역하고 나온 것이다. 그는 현재 생존해 있다.
최근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서방세계에서도 국가안보보다 인권을 우선시하는 풍조가 만연하여 간첩 활동자들이 낮은 형량을 선고받거나 줄줄이 가석방이나 사면되는 현상이 난무하고 있다. 이는 스파이 활동에 관한 사법 시스템의 정비가 시급함을 보여 준다. 바야흐로 스파이 천국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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