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여자들’을 연기하려면 말라야 한다? 편견을 버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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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8일 두산아트센터서 ‘마른 여자들’ 공연
여성의 몸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과 편견 소재

임요희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5-09-14 10:37:49

연극 ‘마른 여자들’은 뉴질랜드 출신 작가 다이애나 클라크가 쓴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거식증을 소재로 하지만 무대 위 배우들은 흔히 ‘거식증 환자’ 하면 떠오르는 외모와 거리가 멀다.

거식증 환자들을 보면 마르다 못해 뼈만 앙상하지만 ‘마른 여자들’을 연기하는 배우들은 조금 통통한 모습이다. 심지어 통통한 배우들은 천연덕스럽게 영양실조로 쓰러지기까지 한다. 그런데 이 모습이 우습지가 않다.

박주영 연출이 10일부터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이 작품은 거식증 환자 수용시설에 갇힌 여성들의 이야기를 통해 여성의 몸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과 편견을 다룬다.

박 연출은 “단순히 거식증 등 섭식장애 증상을 다루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가 여성의 몸을 어떻게 바라봐 왔는지에 대한 연극”이라고 말한다.

박 연출이 배우들에게 주문한 한 가지가 있다. 절대 살 빼지 말라는 것이다. 연습실 화이트보드에도 ‘절대로 마르지 마시오’라고 써 놓았다.

박 연출은 “배우들이 배역에 맞춰 자기 몸을 바꾸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다. 그런 연극은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 오히려 크고 작고 길고 짧은 여러 연령대의 몸들이 무대에 올라 마른 몸의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관객 입장에선 날씬하지 않은 배우들의 마른 몸 연기를 보고 의아해할 수도 있다. 자칫 몰입에 방해를 받을 수도 있는 문제다.

이에 대해 박 연출은 “배우와 배역 간의 위화감은 연극적 상상을 통해 충분히 메울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여기에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가 작품 전반에 설득력을 부여할 것이라는 계산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박 연출은 “다행히 우리가 하는 것은 연극이고, 연극적 상상은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한다. 저와 함께 고립과 결핍·욕망에 대해 많은 고민을 나눈 배우들이 자기만의 방법으로 배역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고 했다.

이런 파격적인 무대를 구상하는 데는 박 연출의 개인적 경험이 바탕이 됐다. 박 연출 역시 상실을 경험한 뒤 3개월간 먹고 토하기를 반복한 적이 있다. 그때 만난 게 소설 ‘마른 여자들’이다.

박 연출은 “거식증은 스스로를 지워 버리겠다는 자기 파괴적인 욕망인 동시에 존재를 인정받고 싶다는 몸부림이다. 이 문제에 대해 여성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고 말했다.

연극 ‘마른 여자들’은 28일까지 공연된다.

임요희 기자 lye@skyedaily.com 기자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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