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이 미국에 총 3500억달러를 투자하는 초대형 전략 패키지가 공식화되면서, 투자금이 향후 어떤 방식으로 미국 경제·안보 전략에 투입될지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미국은 이미 일본으로부터 확보한 5500억달러와 한국의 3500억달러를 더한 7500억달러 규모의 투자금을 에너지·원전·조선·반도체·핵심광물 등 주요 산업 기반 재건에 지출하겠다는 구상을 내놓았다. 미국은 이 가운데 2000억달러를 ‘현금 투자’로 수령하며, 사실상 한국 자금이 미국의 전략 인프라 재건에 직접 활용되는 구조다.
문제는 이 2000억달러가 한국 정부의 최종 승인 없이 미국 단독으로 집행되는 결정 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투자위원회 위원장을 미 상무장관이 맡고, 최종 승인도 미국 대통령 권한으로 남겨졌다. 다만 한국은 사전에 산업부 장관이 위원장인 협의위원회를 통해 ‘상업적으로 합리적인’ 프로젝트만 추천할 수 있는 제어 장치를 확보했다. 또 연간 투자 금액 상한을 200억달러로 설정하면서 외환시장 충격을 최소화하는 장치도 마련했다.
이번 투자 구조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SPV 기반 리스크 풀링’이다. 개별 사업이 손실을 내더라도 전체 포트폴리오 수익으로 상쇄되는 구조로, 원리금 상환 전에는 미·한이 5대5로 나누고 이후에는 1대9로 배분된다. 정부는 “20년 내 상환이 지연될 경우 한국 몫을 늘리는 조항도 명시했다”며 리스크를 통제할 여지를 확보했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투자 처분 권한이 미국 측에 압도적으로 몰려 있다는 점은 계속된 논란 거리다. 실제로 미국은 일본 투자금을 이미 대규모 원전·전력 인프라에 배정하고 있다. 일본의 5,500억달러 중 3320억달러가 대형 원전(AP1000), SMR 건설, 송전망 구축에 투입되는 방식이다. 미국의 에너지 인프라는 AI·반도체 산업의 급증으로 ‘전력 부족’이 구조적 문제로 떠오른 만큼, 한국에서 조성되는 2000억달러 역시 상당 부분 원전·전력 프로젝트에 배치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이재명 대통령은 “원전·조선·에너지·AI 등 한미 간 전략 산업의 외연이 크게 확대된다”고 평가했지만, 투자 규모에 비해 한국 기업이 실제로 확보할 운신 공간이 얼마나 되느냐가 성패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이번 MOU에서 한국 투자금이 투입되는 프로젝트의 경우 한국 기업을 우선적으로 선정하고, 프로젝트 매니저 역시 한국의 추천 인사를 우대한다는 점을 명문화했다. 이에 따라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의 송유관 건설, 미국 원전 건설 기자재 공급, 미국 내 조선소 신·증설 등에서 한국 기업이 수십조원의 사업 기회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관세 인하 효과도 주목된다. 이번 협상에서 미국은 한국산 자동차·부품에 부과해온 25% 고관세를 15%로 낮추기로 하고, 반도체·장비 분야에 대해서도 대만보다 불리하지 않은 조건을 보장했다. 의약품·항공기·철강·구리 등 전략 품목에 대한 관세 인하도 뒤따른다. 수출 기업 입장에서는 불확실성이 크게 줄어드는 효과가 있는 셈이다.
다만 ‘상업적 합리성’이라는 기준이 양국 간 충돌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미국이 판단하는 합리성과 한국이 보는 합리성은 다르고, 한국이 특정 투자 집행을 반대할 경우 미국이 추가 관세를 부과할 수 있어 사실상 거부권 행사가 쉽지 않은 구조라는 지적도 있다. 더구나 트럼프 행정부의 임기가 3년 남짓인 상황에서 실제 납입 가능한 금액은 600억달러 수준에 그칠 수 있다는 회계적 전망도 나온다.
한편, 이번 투자 패키지는 안보 협력과도 맞물려 있다. 미국은 공동 설명자료(팩트시트)에서 한국의 핵추진잠수함(K-SSN) 개발을 공식 언급했다. 미국은 한미원자력협정 내에서 한국의 농축·재처리 절차를 지원하겠으며, 핵잠 선체는 한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릴 커들 미 해군참모총장은 “한국 핵잠은 중국 억제에 핵심적 역할을 할 것”이라며 한국 조선·조선기술에 대한 신뢰를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미국 조선 역량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한국 기술과 공급망을 미국 조선소에 이식하는 MASGA(미 조선업 재건) 협력이 가속화될 가능성도 커졌다.
결국 한국의 3500억달러 대미 투자는 향후 10년간 한국 기업의 막대한 공공 인프라 시장 참여 여부를 결정짓는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미국이 추진하는 초대형 원전·전력·조선 프로젝트가 한일 투자금으로 굴러가는 구조인 만큼, 한국 기업이 얼마나 큰 몫을 확보하느냐가 ‘돈을 내는 나라’가 아닌 ‘돈을 벌어오는 나라’로 전환할 수 있는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후원하기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좋아요
감동이에요
화나요
슬퍼요
추천해요0
좋아요0
감동이에요0
화나요0
슬퍼요0
기사제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