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한국전력, 한국수력원자력, 환경부 에너지·기후 기능을 전격 통합하며 연간 예산 약 70조 원 규모의 거대 공룡 부처 ‘기후에너지부’가 출범했다.
하지만 탄소중립 실현과 국가 에너지망 재편이라는 막중한 명분을 내걸었으나 출범 1년여 만에 드러난 민낯은 정책적 청사진 대신 구태의연한 관치의 부활이다.
기후에너지부가 최근 인공지능(AI) 혁명과 데이터센터 확충으로 전력망 수급 불안이 가중되자 내놓은 해법은 상식의 궤를 벗어났다. 대한민국 첨단 반도체 산업의 양대 축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정조준해 향후 5년간 25조 원에 달하는 산업용 전기요금 추가 부담을 일방적으로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는 민간 대기업의 곳간을 정부의 쌈짓돈 취급하는 전형적인 행정 편의주의이자 치열한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의 생리를 도외시한 근시안적 발상이다.
정부의 이러한 무리수는 즉각적인 글로벌 역풍과 자본 이탈 위험을 초래하고 있다. 무엇보다 삼성전자(외국인 지분율 약 47%)와 SK하이닉스(외국인 지분율 52~53%)는 주식의 절반 안팎을 글로벌 투자자들이 보유한 국제화된 상장 기업이다.
이러한 지분 구조를 간과한 정부의 일방적 비용 전가는 곧바로 글로벌 투자자들의 거센 반발을 부르고 있다. 이미 블랙록(BlackRock), 싱가포르투자청(GIC) 등 유력 해외 기관투자자들은 특정 첨단 기업에만 과도한 인프라 청구서를 떠넘기는 한국 정부의 예측 불가능한 규제 리스크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며 한국 시장 투자 비중 축소를 경고하고 나섰다.
더 큰 뇌관은 법적 리스크와 대외 신인도 추락이다. 외국인 주주 권익 침해와 차별적 요금 부과는 대규모 투자자·국가 간 분쟁(ISDS)이나 주주 대표 소송 등 국제적 법적 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한전의 누적 적자와 에너지망 확충 책임을 민간 기업의 팔을 비틀어 메우려는 행태가 국제사회에 드러나는 순간 한국 자본시장 전체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심연으로 추락하게 된다.
AI와 반도체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지탱하는 국가 전략 자산이다. 70조 원의 예산을 쥔 초거대 공룡 부처라고 해서 글로벌 시장 원리와 법치를 뛰어넘을 수는 없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매서운 눈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관치 행정이 재발한다면 무너지는 것은 기업의 실적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대외 신인도 하락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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