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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쓰는 아빠 엄마 이야기…추억의 책장을 넘기며
80년 전 추억책장을 넘기며 듣는 인생 공부
독립적으로 당당하게 살아온 세상…할아버지 세대를 이해할 수 있어
대통합 필진페이지 + 입력 2017-07-23 20:4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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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국민대통합위원회]
 
“우리 처음 만나는 자리여서 약간은 어색할 수도 있는데 자기소개부터 해 볼까?”
 
첫 만남이라 조금은 어색할 수도 있을 것 같은 염려를 덜어주기 위해 환한 웃음으로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시는 할아버지. 강서구에 있는 화곡경로당에서 회장직을 맡고 계신 이재열 할아버지와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올해 79세이신 할아버지의 첫인상은 매우 차분하고 단정해 보였습니다. 깔끔한 옷차림에 환한 얼굴로 밝게 웃고 계시던 모습. ‘첫 만남이다 보니 어색해서 인터뷰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을까’하는 염려도 있었지만 그런 걱정과는 달리 할아버지께서 먼저 말씀을 이어가셨습니다. 인터뷰가 시작되고 우린 할아버지의 일생 속으로 푹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경기도 부천에서 7남매 중 넷째로 태어나셨어요. 어릴 때부터 성격이 워낙 활발하셨는데 이런 자신의 성격은 유전적으로 타고난 것 같다며 수줍게 웃으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처럼 할아버지의 학창시절 이야기가 궁금했기에 첫 질문을 학창시절 이야기로 시작했습니다.
 
학창시절 할아버지께서는 대략 6km 정도의 먼 거리에 있는 학교까지 걸어서 다니셨습니다. 먼 거리의 학교를 열심히 다니셨지만, 당시 할아버지의 가정형편은 한 끼 끼니를 해결하기에도 벅찼기에 교과서를 준비할 수도 없을 정도의 상황이셨습니다. 할아버지가 사시던 지역 근처는 갯벌이 무척 좋아서 매립하지 않았다면 머드 축제를 열어도 됐을 정도였답니다. 그래서 질 좋은 소금도 많이 생산됐는데 할아버지의 어머니께서는 그 소금을 사다가 되팔아 가정을 꾸려 나가셨습니다. 16살 때 할아버지는 소금 2말 20kg, 어머님은 4말 40kg을 사다가 다시 팔아서 돈을 버셨다고 하니 그 고생이 어땠을까요?
 
고생하신 어머니 이야기를 할 때는 할아버지의 눈가가 촉촉해지셨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지금 저희가 너무나 풍요로운 가운데 살고 있어서 부모님의 고마움을 잘 모르고 산다고 하셨습니다. 공부에 지쳐서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정신적으로 피곤한 삶을 살고 있어서 그런다고 말씀하실 때는 저희를 알아주시는 것 같아 위안이 되기도 했습니다.
 
할아버지가 어린 시절에는 빈부 격차가 눈에 띌 정도로 확연히 났기 때문에 할아버지는 항상 가정형편이 좋은 친구들을 보면 부러운 마음이 많이 드셨답니다. 가난한 가정형편 때문에 할아버지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늘 일을 해야만 하셨지요. 할아버지 또래의 모든 분이 그렇듯 할아버지에게도 6·25전쟁의 기억은 또렷이 남아 있었습니다.
 
6·25전쟁이 시작될 당시 할아버지는 지금의 저희처럼 어린 소년이었습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평범한 일상생활을 하고 있던 6월, 논에서 일하고 있는데 갑자기 비행기가 날고, 군인들이 탄 군용차가 다니고 했는데 처음에는 전쟁인 줄도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군대에서 휴가를 나왔던 큰 형님께서 전쟁이 일어났다는 소식과 함께 곧바로 부대로 복귀하셨습니다.
 
그렇게 전쟁소식을 들은 할아버지 가족 분들은 워낙 도시의 삶과는 거리가 멀었기에 피난을 멀리 가지 못하고 앞 동네 이모 집으로 간 것이 다였습니다. 할아버지 가족들이 피난을 가지 못한 이유는 충분한 돈도 없었을 뿐더러 아버지께서 고향 땅을 두고는 어디도 가지 못한다고 하신 이유도 있었습니다.
 
결국, 앞 동네 피난도 할아버지의 아버지는 집을 지켜야 한다고 안 가시고 다른 가족들만 가셨답니다. 그곳은 산을 등지고 있었기 때문에 안전했는데 며칠 동안 여러 식구가 같이 있다 보니 먹을 것이 없어 배가 고팠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보니 아버지께서는 인민군 복장을 하고 계셨는데 후퇴하며 도망치던 인민군이 아버지 옷을 바꿔 입고 갔기 때문이라고 하셨답니다. 인민군이 옷을 빼앗았으면 다른 옷을 입으면 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만큼 할아버지네 형편이 어려웠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할아버지의 어린 시절 이야기에 빠져들던 우리는 문득 할아버지께서 바라보시는 현재 우리 학생들의 생활 모습은 어떤 느낌이 드시는지가 궁금해져서 여쭤보았습니다.
 
“내가 보냈던 학창시절과는 확실히 다르지. 할아버지 세대는 하루 끼니를 해결하기에도 바빴기 때문에 공부보다는 일을 더 중요시했었어. 그러나 요즘 젊은 학생들은 너무나도 유복한 삶 속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한단다. 학업에만 열중하는 너희들의 모습을 보면 일과 공부라는 서로 다른 임무(?)가 주어졌지만 바꿔서 생각하면 할아버지가 살던 시대와 공통점도 존재한다고 생각한단다”
 
우리는 과연 공통점은 뭘까? 하고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분명 먹을 것 입을 것 걱정 없이 사는 것은 맞지만, 할아버지 때 육체적인 고통을 받았더라면 현대를 살아가는 너희들은 정신적인 고통을 그에 못지않게 받는다고 생각한단다. 공부라는 틀 안에 갇혀 살다 보니 일이라는 틀 속에 갇혀 살던 할아버지 세대와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이지”
 
“만약 10kg의 짐을 질 수 있는 사람에게 20kg의 짐을 지라고 강요한다면 얼마나 힘들겠니? 사람마다 할 수 있는 능력치가 모두 다른데 오직 공부만을 강요한다면 그건 분명 잘못된 일이겠지. 누구든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만 행복할 수 있단다”
 
우리의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시는 할아버지의 말씀을 들으니 왠지 가슴속이 찡해졌습니다.
 
“그렇다면 젊은 청년들에게 어떤 말씀을 해 주고 싶으세요?”
 
할아버지는 우리의 질문에 한숨을 내쉬시면서
 
“요즘 젊은 청년들은 돈의 가치를 모르고 한 푼 두 푼 저축할 줄을 몰라. 낮과 밤이 바뀐 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단다. 젊은이들이 좀 더 돈의 가치를 알고 저축하는 습관을 들였으면 하는 바람이구나”
 
더불어 할아버지께서는 옛날에는 여가를 즐긴다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시대였지만 정작 여가를 마음껏 즐기고 사는 우리는 풍요로움의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고 덧붙이셨죠.
 
할아버지는 자신의 인생 가운데 가장 행복했던 시간은 운전기사 일을 하실 때이셨습니다. 예전에는 자가용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교통수단으로 버스나 택시를 타야 해서 운전을 하면 대우도 좋고 잘 살 수 있었답니다. 할아버지는 부모님이 가난하셔서 어렵게 사셨지만, 운전해서 돈을 버시면서 부터는 풍요롭게 사실 수 있었습니다. 기사로 일하시면서 자식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먹이고 좋은 옷을 입혀주며 가장 행복했다고 활짝 웃으시는 모습을 보면서 부모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자식들에게 좋은 것을 해주고 싶은 마음은 세상 모든 부모님의 마음이겠지요.
 
할아버지께서는 지금까지 살아오시는 동안 후회되는 부분도 말씀해 주셨습니다. 시대상황이나 가정 여건상 많이 배우지 못해서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뚜렷한 목표를 설정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면서 목표는 있어야 하고 목표가 없으면 뛰어넘지 못한다고 하시는 말씀에 공감이 갔습니다. 누구든 살아가는 동안에 후회하고 반성할 일은 많지만, 결단과 의지로 고쳐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도 하셨습니다.
 
사실 저희 청소년들에게 따끔한 충고도 해주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아침 등굣길에 학생들 교통정리를 하시는데 보행 보도가 있어도 엉뚱한 곳으로 건너가고 자전거도 도로에서 타는 등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나 질서의식이 없는 것이 안타깝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것은 부모의 책임이 더 크다고 하셨습니다. 부모가 되고 안 되는 일을 분명하게 가르쳐야 하는데 공부만 잘하고 좋은 학교만 가면 된다는 식으로 가르쳐서 그렇다고 말이죠. 교통 지도를 하다 보면 아침에 차를 타고 학교 안까지 들어오는 경우가 10~20%가 되는데 그런 모습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드신답니다. 걷다 쓰러지면 혼자 일어날 줄도 알고 다치면 스스로 약도 바를 줄 알아야 하는데 자신의 할 일을 부모가 다 해주니 어른이 돼서도 스스로 할 일을 못 하고 모든 것을 부모에게 의존한다는 것입니다.
 
요즘은 모두 부모에게 돈을 타서 쓰고 직장을 다니면서도 부모에게 의존하는 캥거루족이 만
은데 이런 것이 꼭 젊은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고 정치적 교육적으로 사회 지도층이 지도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그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특히 요즘 사람들은 만족할 줄 모르고, 자신의 능력이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고 하셔서 할아버지의 자녀 교육에 대해 여쭤 보았습니다. 할아버지는 부모님으로부터 엄한 가르침을 받으셨기 때문에 자식 교육도 엄하게 하셨는데 그러다 보니 자녀분들도 부모에게 의지하려는 마음보다는 독립적으로 성장해 지금은 고맙게도 자신들의 할 도리를 잘하며 살고 있다고 하십니다.
 
지금은 흔해 빠진 사탕 한 개, 고깃국 한 그릇을 제대로 못 드셨지만, 할아버지는 독립적으로 당당하게 세상을 살아오셨습니다. 그래서 자녀들을 양육하실 때도 공부만 강요하기보다는 자녀들이 가장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하셨답니다.
 
특히 요즘 어머니들의 자녀 교육 태도 가운데 남편이 우선이 아니고, 아이들만 우선으로 하다 보니 자식들이 부모를 공경하지 않고 자기가 제일이라고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과잉보호, 고마움을 모르고 성장하는 것 등이 아이들을 망치는 것이라는 말씀에 저희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현재 할아버지께서는 학교 앞 교통정리 외에도 경로당에서 회장직을 맡고 계십니다. 경로당 회장 일은 할아버지께서 65세 이상이 되셔서 자격이 있으시고 또 더 시간이 지나면 일을 못 하게 되시니까 맡으셨답니다. 보수가 전혀 없으니 완전한 봉사직이고, 봉사 정신이 없으면 못 하는 일이라고 하시니 할아버지가 더 대단해 보였습니다. 경로당에 모이시는 분들은 나름대로 경력과 살아온 과정이 다 달라서 이끌어 나가기가 쉽지 않다고도 하셨습니다.
 
비록 오랜 시간은 아니었지만, 이재열 할아버지의 삶을 인터뷰하면서 어렵게만 느껴졌던 할아버지 세대를 이해할 수 있었고,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어서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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