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에는 여러가지 의성어, 의태어가 붙으면서 스토리를 풍부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어요. 다채로운 시점에서 무대를 만들어 인생의 희로애락을 원초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판소리의 매력이죠. 그 매력에 이끌려 올해로 26년째 1500회 이상의 공연을 해왔네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7월 여름날 스카이데일리가 만난 ‘인동초’의 주인공은 최근 개봉된 영화 ‘소리꾼’에서 주연을 맡은 국악인 이봉근 씨(38)다. 기자는 마침 남산골 한옥마을에서 국악축제 홍보 촬영을 진행하는 이 씨를 만났다. 바쁜 스케줄에서 잠시 틈을 내 그동안 국악인으로서 쉽지 않은 길을 선택해 오로지 한 길을 걸어온 자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의 모습에서 이제는 여유가 느껴졌다.
“어렸을 땐 발명가를 꿈꾸기도 하고 세계 정복의 꿈도 있었어요. 그런데 서예를 하시는 아버지께서는 제가 대를 이어 글씨 쓰기를 바라셨어요. 하지만 제가 왼손잡이이고 악필이어서 그 분야는 포기하시고 정통성이 있는 판소리를 해보라고 권유하셨어요. 제가 가수의 꿈도 있었지만 중2 때부터 국악을 배우기 시작했죠. 제가 자랐던 남원이 판소리의 고장이라는 점도 계기가 됐어요. 그 후로 줄곧 국악인으로서 살아온 셈이네요.”
국악인 이봉근씨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소리를 시작해 26년간 국악인으로 살았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명창 전인삼 선생 밑에서 가르침을 받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전통예술원에서 음악을 전공하며 3년 전 타계한 명창 성창순 선생과 명창 안숙선, 김일구 선생에게서도 사사했다. 지금은 국악계에서 정통 소리꾼으로 인정받고 있다. 2018년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표창, 2012년 KBS 국악대상 연주상(앙상블 시나위) 등 수상 경력이 이를 증명해 준다. 최근 들어 이 씨는 국악을 다른 장르와 접목하는 등 새로운 시도를 모색하고 있다.
“2019년에는 재즈밴드 적벽과 협업하는 등 전통음악과 대중음악을 넘나드는 시도를 했어요. 다양한 장르를 접목해 도전했고,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선보였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KBS ‘불후의 명곡’에 출연해서 두 번이나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죠. 그러면서 제 이름이 대중에 알려지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 다음으로 도전한 분야가 영화였어요. 판소리 뮤지컬 영화 ‘소리꾼’에서 첫 영화 데뷔인데 주연을 맡게 됐죠.”
26년간 피나는 노력 끝에 최고의 소리꾼이 되다… 경제적 어려움에 고비도
진정한 소리꾼이 되기 위해서는 누구보다 피 나는 훈련이 필요하다. 소리를 내고 또 내고 또 내며 감정을 다듬고 또 다듬은 끝에 비로소 득음을 하게 된다. 이 씨도 마찬가지이다. 최고의 소리를 내기 위해 오랜 기간 수련하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고 그는 말했다.
“어릴 때 수련방법은 예전의 선조 선생님들이 하시던 것과 똑같았어요. 아침 일찍 일어나 폭포에서 성량을 키우기 위해서 토굴에 들어가서 수련하기도 했어요. 요즘은 연습실에서 연습하고 있죠. 음악을 하면서 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하려고 했지만 아무래도 대중적인 인기와 거리가 멀다 보니 경제적인 어려움이 컸어요. 20대 때 1년 정도 활동을 쉬고 아르바이트를 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어요. 최근에는 코로나로 인해 지역축제들이 줄어들어서 무대에 설 기회가 적어지니 저뿐 아니라 다들 걱정이 되기도 하죠.”
코로나로 인해 언택트 공연이 유행하면서 이 씨는 무관중 공연을 했다. 그는 관중의 호응 없이 하는 공연이 힘들기는 했지만 동영상에 달린 댓글을 보면서 힘이 났고 오히려 보이지 않는 관객과의 소통을 통해 행복감을 느꼈다고 전했다. 또 ‘불후의 명곡’을 통해 대중과 가까이 갈 수 있었던 경험이 소중했다고 덧붙였다.
“2017년 우승을 차지했던 ‘불후의 명곡’ 출연 당시 제가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였어요. 그래서 더욱 절박함이 있었고 그래서 혼신의 힘을 다해 노래를 했던 기억이 나요. 그래서 우승을 할 수 있었지 않았나 생각해요. 이 때가 많은 사람에게 저를 알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죠.”
국악인 이봉근, 영화 ‘소리꾼’의 주연으로 생애 첫 스크린 데뷔
영화 ‘소리꾼’은 영화 ‘귀향’을 연출한 조정래 감독의 신작으로 소리꾼들의 한과 해학의 정서를 조선팔도의 아름다운 풍광과 민속악의 아름다운 가락으로 빚어낸 음악영화이다. 조정래 감독이 ‘서편제’를 보고 나서 충격을 받아 1998년 쓴 단편 시나리오를 ‘소리꾼’으로 완성시켰다.
이 영화에서 주연을 맡은 이 씨는 사실 연기가 처음이 아니다. 한예종 시절 연극을 했고 졸업 후에는 국악뮤지컬집단 타루의 창단 멤버로서 공연에 참여했다. 연극 ‘서편제’에서는 영화에서 김명곤이 연기한 유봉(아버지) 역할을 맡기도 했다.
“영화로서는 ‘소리꾼’이 제 인생 첫 데뷔 영화예요. 저로서는 부담도 없지는 않았지만 그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서 연기했고 무엇보다 제가 잘 아는 소리꾼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라서 더 애착이 가기도 했죠. 제가 할 수 있는 혼신의 힘을 다하려고 노력을 쏟은 영화예요.”
이 씨는 영화에서 맡은 역할을 소화하기 위해 사극을 많이 봤다고 한다. 특히 ‘허준’의 전광렬 배우의 연기나 ‘관상’ ‘광해: 왕이 된 남자’ ‘왕의 남자’를 보고 대사를 많이 따라 하기도 했다. 역할에 몰입하기 위해서 두 달 만에 12kg 이상 감량하기도 했다. 그 당시는 되도록 안 먹고 운동을 많이 했는데 에너지 소모가 많은 소리를 하면서 잘 먹지 못하니 죽을 정도로 힘들었다고 밝혔다.
“‘소리꾼’에서 연기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죄인으로 몰린 학규가 목숨을 걸고 ‘심청가’에서 심 봉사가 눈을 뜨는 대목을 부르는 장면이었어요. 이 장면에서 가장 중요한 8분을 원테이크로 촬영했어요. 여기서 모든 것을 쏟아내면서 정말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나요. 영화를 보신 분들도 좋다고 평을 해주시네요.”
이 씨는 주연을 맡은 영화 ‘소리꾼’이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을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어 주연배우로 안타까움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코로나로 인해 개봉 무대 인사를 정식으로 갖지 못한 게 아쉬워서 소규모로 감독 및 출연 배우들이 게릴라 무대인사를 진행했다. 또 영화가 개봉한 지 얼마 안 됐는데도 불구하고 벌써 스크린이 많이 줄었다며 주연배우로서 아쉬움을 나타냈다.
“영화가 평일 낮 시간에만 상영하면 직장인 등이 보기 어려운데 그나마 저녁시간대 상영도 적어요. 저희 작품은 가족끼리 볼 수 있는 영화라서 많은 분이 보실 수 있는 시간에 상영시간을 주셨으면 정말 좋을 텐데, 주말에도 시간대가 많이 줄어서 주연배우로 안타깝기도 하죠.”
이 씨는 최근 남원을 방문해 무대인사를 했다고 소개했다. 남원은 이 씨가 자라난 고향이다. 그의 아버지가 아들을 응원하는 현수막을 붙이는 등 따뜻한 환영을 받았다고 그는 소개했다.
“감독님과 배우들이 함께 남원에서 무대인사를 하고 있으니 입신양명한 것 같이 남원 주민들이 저를 반겨주시고 축하도 많이 해주셔서 많이 감사했고 개인적으로 뿌듯했었죠. 연기 잘한다고 칭찬도 해주셔서 힘이 많이 났었고요. 부모님께서도 제가 출연한 영화를 보시고 저에게 연기하느라 고생한다고 해주시고 슬프고 애잔한데 영화가 재밌었다고 말씀해주셨어요. 고향 사람들과 가족에게서 따뜻한 응원을 받으니 힘이 났죠.”
이 씨는 올해 목표는 영화가 잘되는 것이고 다음 행보로 연기를 다시 하고 싶다고 밝혔다. 영화를 통해 새로운 활로가 열리면 더 열심히 활동하겠다는 다짐도 했다. 물론 그의 기반인 음악 활동도 함께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는 국악인으로서 후배들에게 전하는 조언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앞으로 우리의 전통음악인 판소리가 각광받을 시대가 올 것으로 봐요. 현재 대중매체에서 조명을 받고 있고, 또 영화 ‘소리꾼’ 이후 대중에게 우리의 전통음악이 더 알려지고 사랑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국악을 하는 후배들이 많이 힘내고 앞으로 더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희망을 가지고 노력해줬으면 해요.”
[정동현 기자/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