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백화점은 올해 상반기 외국인 매출 5800억원을 기록하며 반기 기준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 고물가와 온라인 쇼핑 확대로 오프라인 유통업체가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거둔 성과다. 내국인 소비자가 가격뿐 아니라 시간과 만족까지 따져 소비처를 고르는 상황에서도 백화점은 선택을 받았다. 여행 일정이 제한된 외국인 관광객은 이동 거리와 구매 실패 가능성까지 계산해야 해 기준이 더 까다롭다. 신세계는 쇼핑부터 식사와 휴식, 문화 체험까지 한곳에서 만족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며 고객들의 발걸음을 붙들었다.
고물가가 이어지면서 소비자는 물건 하나를 살 때도 가격을 다시 본다. 온라인 쇼핑과 배달이 일상이 되면서 최저가를 찾는 일도 방 안에서 끝낼 수 있게 됐다. 굳이 매장에 가서 둘러보고, 고르고, 들고 돌아올 이유는 줄었다.
산업 구조가 바뀌면서 대형마트 같은 오프라인 유통업체는 타격을 받았다. 산업통상부의 2026년 5월 주요 유통업체 매출 동향에 따르면 조사 대상 주요 유통업체 매출에서 온라인 비중은 58.6%까지 높아졌다. 같은 달 대형마트 매출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5.1% 줄었다.
그런데 백화점은 예외였다. 같은 달 백화점 매출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24.5% 늘었다. 외국인 관광객이 늘고 소비심리가 살아난 데다 해외유명브랜드와 패션의류, 잡화 매출이 함께 뛰었다.
가성비 기준 넘은 백화점…비싸도 제값으로 선택받아
백화점에서는 고가 상품 매출도 크게 늘었다. 5월 해외유명브랜드 매출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37.3% 증가했다. 가성비를 따지는 시대에도 소비자는 소비를 포기하지 않았다. 대신 그만한 값을 하는지 더 꼼꼼하게 따졌다. 소비자는 정품인지 직접 확인하고, 브랜드의 응대와 사후관리를 받을 수 있다. 식사와 전시, 각종 체험까지 한곳에서 즐길 수 있다는 점도 비싼 가격을 받아들이는 이유가 된다.
외국인 관광객은 가성비 계산에 더 깐깐하다. 한국을 찾은 외국인이 비싼 물건만 사는 것은 아니다. 올리브영과 다이소, 무신사처럼 K뷰티와 생활용품, 패션을 비교적 싼값에 살 수 있는 매장은 관광객의 쇼핑 코스에 들어간다.
다만 여행객에겐 시간과 이동 거리도 중요하다. 이미 항공권과 숙박비를 냈고, 짧은 일정 안에 되도록 실패 없이 물건을 골라야 한다. 한곳에서 명품을 직접 보고 패션과 화장품을 산 뒤 식사와 휴식까지 해결할 수 있다면, 비싸더라도 백화점을 찾을 이유가 생긴다.
제한된 여행 시간 안에 한국에서만 할 수 있는 소비를 얼마나 만족스럽게 끝낼 수 있는지도 중요하다. 백화점 소비도 마냥 비싼 물건 선호가 아니라 이동을 줄이고 여러 소비를 한곳에서 끝내기 위한 가성비 소비에 가깝다.
까다로운 외국인도 지갑 열었다…반년 만에 지난해 매출 90%
외국인 관광객 증가로 외국인 쇼핑의 ‘신세계’가 열렸다. 문체부에 따르면 2026년 1분기 방한 외래관광객은 476만명으로 1분기 기준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K콘텐츠 확산과 민관의 관광객 유치 노력도 외국인을 한국으로 끌어들였다. 백화점에는 새 손님을 맞을 기회가 열렸다.
신세계백화점은 늘어난 관광객을 실제 매출로 끌어온 사례 중 하나다. 올해 상반기 외국인 매출은 5800억원으로 반기 기준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0% 늘었다.
지난해 신세계백화점의 연간 외국인 매출 약 6500억원의 90%에 달하는 수치다. 신세계는 지금 흐름이 이어지면 연간 외국인 매출 1조원도 넘어설 전망을 냈다.
2019년과 비교하면 중국인 고객 비중은 줄어들고 미국과 동남아시아 등 기타 아시아 고객 비중은 늘어났다. 단체관광보다 각자 쇼핑 코스를 짜는 자유여행객도 늘었다. 찾는 나라와 움직이는 길이 달라지자 명품만 내세워서는 부족해졌다.
신세계는 명품뿐 아니라 다른 상품군에서도 매출을 늘렸다. 올해 상반기 신세계백화점 외국인 고객의 명품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9.3% 늘었다. 남성패션은 110.0%, 여성패션은 89.4%, 화장품은 87.3%, 식음료(F&B)는 62.9% 증가했다. 외국인 소비는 명품뿐 아니라 패션과 화장품, 식음료 등으로 넓어졌다.
명동 K팝·강남 미식·부산 체험…점포마다 다른 유인책
관광객이 많이 온다고 백화점 매출이 반드시 늘진 않는다. 올리브영과 다이소, 무신사와 차별화되는 경쟁력을 갖추고 찾아온 관광객이 실제로 지갑을 열게 하려면 매장도 그만한 준비를 해야 한다.
신세계는 지역별로 특화 전략을 달리했다. 명동 본점은 명동 한복판에 있다는 이점을 살려 신세계스퀘어의 K팝 콘텐츠를 앞세웠다. 현재 본점 고객 3명 중 1명은 외국인이다. 신세계는 명동 관광과 K팝 콘텐츠를 매장 내 명품·패션 쇼핑으로 연결했다.
강남점의 장점은 한강과 먹거리다. 반포한강공원과 세빛섬, JW메리어트 호텔이 가까운 데다 하우스 오브 신세계 푸드홀과 스위트파크를 갖췄다. 한강 관광과 백화점 쇼핑·식사를 한 동선에서 즐길 수 있도록 했다. 강남점에는 120여개국 고객이 찾는다.
센텀시티는 부산을 찾은 관광객을 겨냥했다. 부산항 크루즈 관광과 해운대·광안리 관광 수요를 스파랜드와 매장 이용으로 연결했다. 부산에서 가장 큰 백화점이라는 점도 관광객을 끌어들였다. 올해 상반기 외국인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30% 늘었다.
이처럼 점포마다 손님을 끌어오는 이유는 달랐다. 본점은 명동과 K팝을, 강남점은 한강과 먹거리를, 센텀시티는 부산 관광과 체험시설을 앞세웠다. 들어온 뒤에는 쇼핑과 식사, 팝업과 체험을 한곳에서 이어갈 수 있게 했다.
결제는 쉽게, 머물 이유는 더해…고객 다시 보기 위한 노력
신세계는 한 번 찾은 외국인이 회원으로 남도록 전용 멤버십도 운영했다. 현재 120여개국에서 30만명 이상이 가입해 쇼핑 할인과 사은 혜택, 각종 편의 서비스를 받고 있다.
계산할 때 생기는 불편도 줄일 계획이다. 신세계백화점은 하반기 유니온페이와 알리페이, 라인페이, JCB 등 글로벌 결제업체와의 협업을 강화한다. 관광객이 평소 쓰던 결제 수단으로 편하게 물건값을 치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멤버십과 결제 편의를 갖춘 뒤에는 매장에 더 오래 머물 이유를 붙였다. 신세계는 물건만 파는 데 그치지 않고 고객이 쇼핑하고 밥을 먹고 쉬면서 매장을 둘러볼 이유를 붙였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문화 콘텐츠다. 신세계는 주요 점포에 갤러리와 문화홀을 두고 전시와 공연, 체험 프로그램을 열고 있다. 광주신세계는 1996년부터 광주신세계미술제를 열어 지역 작가를 발굴해왔다. 대전신세계 Art & Science에서는 카이스트와 함께 만든 신세계 넥스페리움에서 과학과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강남점에 문을 연 ‘어나더 팜’은 미술 작품과 캐릭터·서브컬처 지식재산권(IP), 식품과 생활용품을 한 공간에 엮었다. 매달 새로운 콘텐츠를 선보이는 드롭존과 대형 미디어 파사드도 마련했다. 한 번 둘러보고 지나치는 매장이 아니라 새로운 경험을 기대하며 다시 찾는 공간을 만들었다.
강남점에서 열린 인공지능(AI) 캐릭터 ‘정서불안 김햄찌’ 팝업은 4일간의 사전예약분이 10분 만에 마감됐다. 매장에는 직장인 유형을 분석하는 키오스크와 스트레스 해소 파쇄기, 메시지존 등을 마련했다.
식품 매장에는 전문적인 설명과 비교 체험을 더했다. ‘올리오올리바’ 팝업에서는 주요 산지의 올리브오일 60여종을 맛보고 소믈리에에게 용도별 추천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가격 비교만으로는 얻기 어려운 정보와 선택 경험을 오프라인 매장의 강점으로 내세웠다.
신세계는 하반기에도 관광기관과 글로벌 결제업체, 패션기업 등과 협업해 외국인 고객과의 접점을 넓힐 계획이다. 점포마다 다른 관광·문화 콘텐츠를 강화하고 국가별 맞춤형 프로모션도 확대한다.
박주형 신세계 대표이사는 “신세계백화점은 K-쇼핑과 K-미식, K-콘텐츠를 한 곳에서 경험할 수 있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관광 목적지로 자리 잡았다”며 “세계 최고 수준의 강남점과 명동의 본점, 부산의 센텀시티점 등 차별화된 점포경쟁력과 압도적인 브랜드 차별화로 K-쇼핑 랜드마크 위상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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