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데일리 단독기사

 지하철로 보는 상권|빌딩|재건축 뉴스

뒤로 리스트 인쇄
news only email오류보내기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톡

[왕조·명문 후손 건물<41>]-고령박씨

박정희-박근혜 비운의 대통령 부녀 낳은 명문가

순수혈통 자랑…인구 4만3000명 불구 조선시대 명문가문 맹활약

길해성기자(hsgil@skyedaily.com)

기사입력 2017-05-05 00:03:35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 고령박씨의 종중은 화곡동 먹자골목 메인상권에 위치한 빌딩을 2008년 42억원에 매입했다. 현 시세는 59억원이다. 지하 1층, 지상 5층으로 지어진 건물에는 태국마사지, 베트남 쌀국수, 당구장 등이 입주해 있다. ⓒ스카이데일리
 
박 씨는 우리 민족의 여러 혈족 중에 귀화족이 없는 순수 혈통임을 자랑한다. 모든 박 씨가 신라 시조왕인 박혁거세에 근원을 두고 있다. 그 중에서도 고령박씨는 대통령은 2명이나 배출한 명문 가문으로 유명하다. 고령박씨 성을 지닌 대통령은 바로 박정희·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고령박씨의 본관인 경북 고령은 조선 태종 때 고양군과 영천현의 지명을 따서 고령현이라고 불렀다. 고령박씨는 아직도 80% 이상이 경북에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박근혜 정권 때 최순실의 변호를 맡은 이경재 변호사와 탄핵 후 책임총리 내정자였던 김병준 국민대 교수가 고령 출신이다. 또 우병우, 최재경 전 민정수석은 처가가 고령이다.  
 
2015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고령박씨는 4만3774명이다. 박씨의 80%를 차지하는 밀양박씨(310만3942명인)에 비하면 인구가 1.4%에 불과하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58명의 문과 급제자를 배출해 박씨 64본 가운데 밀양, 반남에 이어 3번째 명문가로 꼽힌다.  
 
고령박씨 중 대표 인물은 암행어사 박문수(1691~1756)와 박정희·박근혜 전 대통령 등이 있다. 박문수는 고령박씨 사인공파이며 박정희는 사인공파에서 갈라져 나온 직강공파 후예다. 조선 중엽 성균관의 주임 교수 격인 직강공 박숙동의 후손이다.  
 
화곡동 먹자골목에 60억 빌딩 보유…월 임대 수입 1500만원 안팎 
 
고령박씨 감사공파 종중은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빌딩 한 채를 소유하고 있다. 화곡동 먹자골목 메인상권에 위치한 ‘더원빌딩’이다.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지난 2008년 종종 명의로 42억원을 주고 매입했다.  
 
빌딩맨 강기섭 대표는 “건물이 위치한 상권의 3.3㎡(약 1평)당 거래가액은 약 4000만원 선”이라며 “땅값 51억원과 건물값 8억원을 합하면 약 59억원으로 추산된다. 9년간 약 17억원의 시세차익을 얻고 있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 고령박씨의 대표 인물은 암행어사 박문수(1691~1756)와 박정희-근혜 부녀가 있는데 두 집안은 같은 파에 속한다. 박문수는 고령박시 사인공파이며 박정희는 사인공파에서 갈라져 나온 직강공파 후예다. 사진은 육영수 여사 사후 박정희 전 대통령 옆에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 [사진=뉴시스]

더원빌딩은 2004년에 대지면적 421.8㎡(약 128평), 연면적 1138.6㎡(약 344평)에 지하1층, 지상 5층으로 지은 건물이다. 1층에는 유명 요리 체인점이, 그 위층에는 태국마사지, 베트남 쌀국수, 당구장, BAR, 라이브 카페 등이 입주해 있다.
 
인근 부동산 관계자에 따르면 “화곡동 먹자 골목 중에서도 좋은 자리에 있는 빌딩이다”며 “1층 임대료는 월 500만원 안팎이고, 빌딩 전체는 월 1500만원가량의 수익을 임대료를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시조 박언성 박혁거세 29대손… 개혁가 박문수, 영조 앞에서 시종일관 독설 쏟아내  
 
고령박씨의 시조는 신라 54대 경명왕의 둘째 아들인 고양대군 박언성이다. 박혁거세의 26대손이기도 하다. 후대에 3파가 형성됐는데 그중에 박섬의 사인공파와 박환의 부창정공파에서 많은 인물이 배출됐다.  
 
사인공파의 대표 인물로는 어사 박문수(1691∼1756)를 들 수 있다. 소론의 영수인 이광좌에게 수학한 그는 1723년 33세의 나이에 과거에 급제했다. 강직한 성품으로 민생 구제 등에 숱한 일화를 남겼다. 특히 함경도 홍수 때 빈민 구제로 함흥 만세교 앞에 공덕비가 세워졌다.  
 
영조가 세자였던 시절에 스승이었던 박문수는 병조, 호조판서, 우참찬 등 조정의 요직을 두루 지냈다. 하지만 영조와 박문수는 조선시대를 통틀어 가장 불가사의한 관계로 꼽힌다.
 
사소한 말실수나 자세를 문제 삼아 신하를 파면하기도 했던 영조에게 박문수는 독설에 가까운 막말을 쏟아부었지만 끝내 총애를 받았다.  
 
어전에서 유일하게 고개를 꼿꼿하게 세우고 말했다는 박문수는 탕평 군주를 자처한 영조에게 “이것은 가짜 탕평이다”, “신하들 손바닥 안에 놀아난 꼴이다”, “때론 작은 일에 빠져 큰 줄거리를 놓친다”,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사소한 일까지 관여하면 실무자는 무슨 일을 하냐” 등 왕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간언을 서슴지 않았다. 
 
때문에 넌더리를 낸 조정 인사들이 많았다. 그가 죽은 후 시호를 내리도록 하자 조정에선 ‘직간공’이라 지어 올리자 영조가 껄껄 웃으며 ‘충헌’으로 바꿨다는 게 마지막 일화다. 두 사람의 성품은 상극이었지만 영조는 박문수를 ‘보검의 손잡이’라고 높이 평했다는 기록이 있다.  
 
역사 속의 박문수는 구휼을 담당하는 일반어사로 파견된 적은 여러 차례 있지만 탐관오리를 조사하는 암행어사를 맡은 적은 없다. ‘암행어사 박문수’는 일제 때 발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소설에서 유래했다. 박문수를 잘 아는 저자가 암행어사의 자질에 가장 적합한 실존 인물인 그를 내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 조선 5백년간 최고 천재 시인으로 꼽혀온 박은(1479~1504) 등이 유명하다. 연산군 때 박은이 사형당했고 재산까지 빼앗겼다. ‘임금이 사냥하는 것을 삼가라’는 상소가 올라왔지만, 발의한 자를 끝내 찾아내지 못하자 연산군이 평소 바른말을 잘 하던 박은을 지목했다. 누명을 쓰고 죽게 된 박은은 하늘을 쳐다보고 세 번 크게 웃었다고 한다. 그의 나이 26세였다. 
 
부친 박성빈 동학혁명 가담, 항일운동… 일본군 장교 택한 박정희와 다른 길  
 
▲ 박정희 전 대통령은 슬하에 박근혜·박근령·박지만 2남 1녀를 뒀다. 장녀인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제19대 대통령이 되면서 고령박씨는 두 명의 대통령을 배출했다. 하지만 부녀 대통령 모두 임기 도중 하차했다. [사진=뉴시스]
 
박정희 전 대통령(1917~1979)은 경북 구미에서 출생했다. 구한말 경북 성주지역 동학 접주를 지내고 동학혁명에 참여했던 박성빈(1871~1938)의 5남 2녀 중 막내이자 5째 아들로 태어났다. 부농 집안의 장남이었던 아버지 박성빈은 동학에 가담한 이후 소작농 신세로 전락했다. 처가가 있던 선산으로 옮겨 힘겹게 살다 갔다.  
 
부친 박성빈과 셋째 형 박상희는 항일 운동에 뛰어들었지만 박정희는 일본군 장교를 선택했다.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한 박 전 대통령은 교사 생활을 하다가 만주군관학교와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수료했다.
 
당시 그는 일본식 이름인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으로 개명했는데 ‘高’는 ‘고령’에서, ‘木’은 ‘박(朴) 씨’의 나무 목(木)에서 따왔다.  
 
국군 창설에 참여했던 그는 육사 2기생으로 졸업한 뒤 육군 소장으로 5·16 군사쿠데타를 통해 집권했다. 대통령에 오른 후 수출주도형 국가경제 발전계획을 수립하고, 새마을 운동을 전개하는 등 대한민국 국가 발전의 초석을 닦았다.  
 
특히 국가 주도형 경제성장 성공사례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눈부신 업적이었지만 18년에 걸친 장기 집권은 민주화 투쟁을 불러일으켰고, 끝내 부인인 육영수 여사와 그 자신이 총격으로 생을 마치는 불행을 맞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전 대통령은 1952년에 대구시에서 태어나 서강대 전자공학과를 나왔다. 75년 어머니의 죽음으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대신했다. 1998년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통해 정계에 입문한 후 5선 의원의 경력을 쌓았고, 대한민국 첫 여성 대통령이 됐다. 
 
하지만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지난 3월 10일 대통령직에서 파면 당했다. 이후 592억원대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돼 구속 수감 중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셋째 형인 박상희의 사위가 김종필 전 총리다. 박정희의 첫째 부인의 딸은 박재옥이며 사위는 최근 별세한 한병기 전 UN 대사다. 부친 박성빈이 친구의 딸과 18살 때 조혼시켰지만 1950년 12월 육영수 여사와 재혼 1달 전에 이혼했다.  
 
큰형 박동희의 아들이자 조카인 박재홍은 32살에 동양철관 회장이 됐고 4선 여당 국회의원을 지냈다. 육영수 여사의 오빠인 육인수는 5선 의원을 역임했다.  
 
한편 경북 성주군 성원리에는 고령박씨 집성촌이 있는데 사드 배치 확정 후 마을 회관에 있던 박근혜 전 대통령 사진을 떼냈고 상경 시위 등을 이어가고 있다.
 

박근혜 주택 67억에 팔고 28억에 매입… 박지만 연봉 6억8000만원
 ▲ 박근혜 전 대통령의 내곡동 주택 ⓒ스카이데일리
최근 박근혜 전 대통령은 27년간 소유했던 삼성동 자택을 팔고 내곡동에 새집을 마련했다.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박 대통령 명의로 지난 3월 13일 매매계약이 이뤄졌고, 4월 20일 잔금 납부를 완료했다. 매입가는 28억원이다.
 
박 전 대통령이 출소하면 입주할 것으로 보이는 내곡동 주택은 2008년 7월 준공됐다. 해당 주택은 영화배우 신소미 씨가 거주했던 곳으로 알려졌다. 이 주택은 베이지색의 2층 단독 주택이며 삼성동의 박 전 대통령의 집과 외관이 닮았다.
 
대지면적은 406㎡(122.82평), 건물 연면적은 570.66㎡(172.62평)에 이른다. 내곡동 국가정보원에서 약 1㎞ 정도 떨어져 있으며, 이명박 전 대통령의 옛 내곡동 사저 부지와는 500~600m 정도 떨어져 있어 눈길을 끈다. 현재 내부 리모델링이 진행되고 있으며, 공사가 끝나는 데로 짐을 옮겨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통령이 기존하던 서울 강남구 삼성동 집은 지난 3월 28일 홍성열 마리오아울렛 회장(62)에게 67억5000만원에 팔렸다. 박 전 대통령이 매입한 내곡동 집과의 차액은 39억5000만원에 달한다.
 
1990년 박 전 대통령은 삼성동 자택을 약 10억원에 매입해 2013년 2월 25일 청와대에 들어갈 때가지 약 23년간 이곳에서 살았다.
 
박 전 대통령의 남동생인 박지만 EG 회장은 지난해 6억8000만원을 연봉으로 받았다고 공시됐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코스닥 상장기업인 EG는 박지만 회장의 지난해 보수총액이 급여 4억8000만원과 성과급 2억원 등 총 6억8000만원이었다고 밝혔다.
 
박 회장의 연봉은 2013년까지 6억7000만원이었다가 이듬해 6억8000만원으로 오른 뒤 3년 연속 같은 금액을 유지했다. EG는 전자기기의 주요 부품 원료인 산화철과 복합재료를 생산하는 업체로, 지난해 영업이익 8억7770만원으로 흑자 전환했다.
 
반면 다른 실적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최근 3년간 EG의 실적(연결)은 △2014년 매출액 1562억, 당기순이익 32억 △2015년 매출액 1516억원, 당기순손실 49억원, △2016년 매출액 1468억원, 당기순손실 1억원을 기록했다.

<저작권자 ⓒ스카이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뒤로 리스트 인쇄
email오류보내기 트위터 페이스북 밴드 카카오톡
독자의견 총 0건의 댓글이 있습니다.
등록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