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혁거세는 백마신화, 왕비 알영은 용신화를 낳았다
박혁거세 신화는 5대 파사왕 시절 정립된 ‘백마신화’에 ‘난생신화‘가 후세에 추가된 ’백마청란신화‘이다. 박혁거세와 석탈...(2021.07.29 09:20)
신라 건국 시조 박혁거세거서간의 이름에 담긴 의미 [1]
신라 건국 시조인 박혁거세의 정식명칭은 ‘박혁거세거서간(朴赫居世居西干)’이다. 이는 혁씨 부계혈통을 가진 한(漢)의 유민집...(2021.07.21 16:33)
신라 건국의 모체 파소여왕
신라를 개국한 박혁거세의 어머니 파소는 북부여 왕실 출신이다. 그는 백제의 소서노와 마찬가지로 실질적으로 신라 건국을 이끌...(2021.07.15 18:20)
신라의 천년수도 경주에 대한 오해와 진실
박혁거세는 경기도 북부지역에 건국해 변한 낙랑 등과 다투며 남하한다. 이후 5대 파사왕 때 경주에서 자리잡으며 천년 왕조의 기...(2021.07.07 17:59)
백제 마지막 공주와 왕자의 운명
백제가 멸망하면서 왕족은 뿔뿔이 흩어졌지만 후손들은 당나라와 일본 등에 정착했다. 한편 부여융의 직계 중 한반도에 정착한 후...(2021.05.06 09:10)
부여융과 김법민의 엇갈린 운명
백제 멸망의 소용돌이 속에는 백제 의자왕의 아들 부여융과 김춘추의 아들인 신라 30대 문무왕 김법민의 엇갈린 운명이 있다. 부...(2021.04.29 09:30)
백제수복운동의 알파와 오메가
서기 660년 9월 흑치상지(黑齒常之)가 임존성(任存城·현 충남 예산)에서 백제 수복운동의 시작을 알렸지만 3년 뒤 그가 당군을 ...(2021.04.20 08:30)
백강구 전투와 주류성의 눈물
서기 663년 지금의 전북 새만금간척지구인 백강구전투에서 당이 승리하면서 사실상 백제 수복운동은 종지부를 찍게 된다. 이후 야...(2021.04.13 12:05)
재건백제의 수도 피성
백제 멸망 이후 야마토에서 귀국한 부여풍이 왕에 즉위하며 백제 수복운동은 전기를 맞는다. 그는 성공을 자신하며 평지인 피성(...(2021.04.08 09:20)
‘백제 부흥운동’ 용어의 아쉬움
백제 멸망 후 이뤄진 일련의 군사활동을 가리켜 ‘백제 부흥운동’이라고 부른다. ‘부흥’이라는 단어는 쇠잔해진 상태에서 다시...(2021.03.31 09:07)
백제 멸망은 스스로 선택한 자살
백제는 적극적인 방어전을 펼치지 않은데다 사비도성 방어에서 당군을 먼저 공격했다가 병력손실을 입자 의자왕이 도망치는 등의 ...(2021.03.25 09:35)
660년 여름, 백제 멸망의 시간들
서기 660년 6월, 김유신과 소정방의 나당연합군이 백제의 수도 사비성 인근에 나타나자 계백은 5천 결사대를 이끌고 4번 싸워 모...(2021.03.17 10:05)
의자왕과 삼천궁녀의 진실[2]
의자왕하면 흔히 ‘삼천궁녀’가 몸을 던졌다는 낙화암의 전설을 떠올리지만 이는 많다는 의미일 뿐 역사적 사실은 아니다. 조선 ...(2021.03.10 11:18)
백제 망조현상의 미스터리
『삼국사기』<백제본기>를 보면 백제 멸망을 앞두고 소위 망조(亡兆)현상이 집중해서 나타나는데 이는 김유신이 기획한 고도의 심...(2021.03.04 09:25)
의자왕의 친위쿠데타
의자왕은 계모인 사택태후와 대좌평 사택지적이 사망하자마자 친위쿠데타를 일으켜 반대파를 대거 숙청했다. 이것이 바로 백제 멸...(2021.02.24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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