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마지막 공주와 왕자의 운명
백제가 멸망하면서 왕족은 뿔뿔이 흩어졌지만 후손들은 당나라와 일본 등에 정착했다. 한편 부여융의 직계 중 한반도에 정착한 후...(2021.05.06 09:10)
부여융과 김법민의 엇갈린 운명
백제 멸망의 소용돌이 속에는 백제 의자왕의 아들 부여융과 김춘추의 아들인 신라 30대 문무왕 김법민의 엇갈린 운명이 있다. 부...(2021.04.29 09:30)
백제수복운동의 알파와 오메가
서기 660년 9월 흑치상지(黑齒常之)가 임존성(任存城·현 충남 예산)에서 백제 수복운동의 시작을 알렸지만 3년 뒤 그가 당군을 ...(2021.04.20 08:30)
백강구 전투와 주류성의 눈물
서기 663년 지금의 전북 새만금간척지구인 백강구전투에서 당이 승리하면서 사실상 백제 수복운동은 종지부를 찍게 된다. 이후 야...(2021.04.13 12:05)
재건백제의 수도 피성
백제 멸망 이후 야마토에서 귀국한 부여풍이 왕에 즉위하며 백제 수복운동은 전기를 맞는다. 그는 성공을 자신하며 평지인 피성(...(2021.04.08 09:20)
‘백제 부흥운동’ 용어의 아쉬움
백제 멸망 후 이뤄진 일련의 군사활동을 가리켜 ‘백제 부흥운동’이라고 부른다. ‘부흥’이라는 단어는 쇠잔해진 상태에서 다시...(2021.03.31 09:07)
백제 멸망은 스스로 선택한 자살
백제는 적극적인 방어전을 펼치지 않은데다 사비도성 방어에서 당군을 먼저 공격했다가 병력손실을 입자 의자왕이 도망치는 등의 ...(2021.03.25 09:35)
660년 여름, 백제 멸망의 시간들
서기 660년 6월, 김유신과 소정방의 나당연합군이 백제의 수도 사비성 인근에 나타나자 계백은 5천 결사대를 이끌고 4번 싸워 모...(2021.03.17 10:05)
의자왕과 삼천궁녀의 진실[2]
의자왕하면 흔히 ‘삼천궁녀’가 몸을 던졌다는 낙화암의 전설을 떠올리지만 이는 많다는 의미일 뿐 역사적 사실은 아니다. 조선 ...(2021.03.10 11:18)
백제 망조현상의 미스터리
『삼국사기』<백제본기>를 보면 백제 멸망을 앞두고 소위 망조(亡兆)현상이 집중해서 나타나는데 이는 김유신이 기획한 고도의 심...(2021.03.04 09:25)
의자왕의 친위쿠데타
의자왕은 계모인 사택태후와 대좌평 사택지적이 사망하자마자 친위쿠데타를 일으켜 반대파를 대거 숙청했다. 이것이 바로 백제 멸...(2021.02.24 09:53)
대야성에 묻힌 불행의 씨앗
백제 의자왕은 성왕의 복수를 위해 대야성을 함락하고 김춘추의 딸과 사위를 죽인다. 이후 딸의 복수를 위한 김춘추의 움직임은 ...(2021.02.18 09:52)
‘해동증자’ 의자왕의 비애
백제 마지막 왕인 의자왕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의 우애를 다한 일로 ‘해동증자(海東曾子)’라고 불렸다. 그러나 이는 단순...(2021.02.11 13:13)
무왕과 서동설화의 진실
‘서동요’는 훗날 백제 무왕이 되는 서동이 신라 진평왕의 딸 선화공주를 얻기 위해 퍼뜨린 노래다. 최근 무왕의 왕비가 백제귀...(2021.02.04 11:45)
일본에서 죽은 위덕왕의 왕자
백제 27대왕인 위덕왕은 서기 554년 관산성(현재의 충북 옥천) 전투에서 신라군에 잡혀 전사한 성왕의 아들이다. 위기에 빠진 백...(2021.01.28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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