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위상을 드높인 중흥군주 무령왕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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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수의 新삼국사 산책

스다하치만 신사의 청동거울과 무령왕

정재수 필진페이지 + 입력 2020-11-18 18:02:01

일본 와카야마(和歌山)현 하시모토(橋本)시에 ‘스다하치만(隅田八幡) 신사’가 있다.

1834년 신사 인근 고분에서 진기한 고대 유물 하나가 발견된다. 이 유물은 ‘스다히치만 신사’의 수장고에 보관되어 오다가 1910년경 일본 역사학자 다카하시 겐지(高橋健自)에 의해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진다. 고대 한일관계의 비밀을 오롯이 담고 있는 5~6세기경 제작된 청동거울 「인물화상경」이다. 현재 원본은 동경국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으며 일본 국보 2호이다.

인물화상경 명문

이 청동거울 뒷면에 새겨진 48자의 명문은 다음과 같다. ‘계미년 8월 10일 대왕년에 남제왕이 의자사가궁에 있을 때 사마가 장수를 염원하며 개중비직과 예인 금주리 등 두 사람을 보내어 최고급 구리쇠 200한으로 이 거울을 만들다(癸未年八月日十大王年男弟王在意柴沙加宮時斯麻念長寿遣開中費直穢人今州利二人等取白上同二百旱作此竟).’

여기서 사마(斯麻)는 무령왕을 가리킨다. 남제(男弟)왕은 「일본서기」가 남대적(男大迹)으로 기록한 야마토(왜)의 계체(繼體)왕이다. 계미년은 503년으로 무령왕 즉위 3년이며 또한 계체왕 즉위 원년이다.

▲ 「인물화상경」 원본(왼쪽) 및 스다하치만(隅田八幡) 신사에 위치한 모사본 모습. [사진=필자제공]

「인물화상경」은 백제 무령왕이 야마토 남제왕의 즉위 축하와 아울러 장수를 염원하며 보낸 일종의 기념품이다. 개중비직(開中費直)과 예인 금주리(今州利)는 무령왕의 명을 받고 청동거울을 직접 제작한 인물로, 이중 예인 금주리는 청동거울을 만든 예족출신 장인(匠人)이다.

‘개중(開中)’은 ‘하내(河內-가와치)’의 백제식 표기로 개중비직은 야마토 가와치(하내)지방의 수장으로 무령왕이 직접 임명한 관리다. 당시 가와치 일대는 무령왕의 아버지 곤지왕 일족의 영지였다. 참고로 「일본서기」<흠명기>에는 ‘하내직(河內直)’을 ‘가부지비직(加不至費直)’으로 설명한 부분이 있다. 가부지는 일본말 가우치이며 가와치(하내)와 통음(通音)이다. 「인물화상경」의 개중비직은 가부지비직이며 이후 하내직이 된다.

무령왕과 야마토의 친연성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목관의 파편 재질은 금송(金松)이다. 금송은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적이 없다. 더구나 목관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다년생 나무가 필요한데, 이러한 다년생 나무는 통상 군락지에 서식한다. 대표적인 금송 군락지는 일본 와카야마(和歌山)현 고야산(高野山)이다. 무령왕릉 목관은 일본에서 가져와 만든 것이다. 고야산은 「인물화상경」이 발견된 스다하치만 신사 남쪽에 위치한다.

무령왕과 야마토 왕실의 친연성은 매우 높다. 스다하치만 신사의 「인물화상경」과 무령왕릉의 목관은 이를 증명하는 고고학적 증거이다. 또한 두 유물은 무령왕이 일본에서 태어나 성장하며 줄곧 야마토 왕실과 돈독한 우의를 다진 사실을 입증한다.

돌이켜보면 백제 부여씨왕조의 역사는 ‘비운(悲運)의 역사’ 그 자체였다. 부여씨왕조의 창업자 비유왕(20대)은 흑룡의 출현과 함께 왕비에게 암살당했고, 개로왕(21대)은 고구려 장수왕에게 목숨을 잃었으며, 문주왕(22대)은 실권자 해구에게 살해됐다. 삼근왕(23대)은 15살에 의문의 죽음을 당했고, 동성왕(24대)은 최측근 백가에게 피살됐다. 모두 천수를 다하지 못한 불운한 왕들이다. 그러나 무령왕은 다르다. 아버지 곤지왕의 비통한 죽음은 평생의 자극제였으며 배다른 형 동성왕의 굴곡은 스스로에 대한 채찍질이다.

무령왕은 군주로서 철저히 준비된 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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