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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교포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미나리(MINARI)’라는 영화가 연일 화제다. 국내보다 오히려 미국에서 더 뜨겁다. 이미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HFPA)가 주관하는 골든글로브상의 외국어영화상 등 90여개 상을 거머쥐었고, 조연 배우인 윤여정은 북미에서 주는 연기상만 36개나 받을 정도로 대호평이다.
이제 내달 25일 발표되는 아카데미 영화상에서 어떤 상을 받을 것인가로 관심이 쏠린다.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윤여정), 각본상, 음악상 등 6개 부문 후보에 노미네이트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해 작품상 등 4개 부문을 석권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수준을 웃돌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전망마저 나온다.
특히 배우들의 연기상까지 포함돼 있어 시선이 집중된다. 기생충과 유사하게 미나리, 화투, 고춧가루 등 토속적 한국 소재를 비롯해 한국계 이민들이 초기 단계에 미국 사회에 적응해 가는 메타포가 신선하다. 이민 국가인 미국에서 다양한 종족 중의 하나인 한국계가 어떤 시행착오와 지혜로 정착해 가는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잔잔한 여운을 준다.
코로나가 아직 기승을 부리는 중인 이달 3일 개봉한 미나리의 누적 관람객 수가 500만명을 훌쩍 추월하면서 이달 전체 관람객 수의 30%를 넘어선다.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면서 한국에서도 인기가 대단한 것으로 평가된다. 영화 관계자들은 미나리를 기화로 2분기부터 영화 시장이 다시 활기를 띨 것으로 기대한다. 다만 미나리라는 영화의 내용이 충분히 한국 관객에게 전달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우리와 정서와 비슷한 한국계가 만들고 연기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크게 부담감은 없는 것 같다. 연기자들의 섬세한 대사와 감정 표현이 돋보이면서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스토리가 충분히 어필되고 있는 듯하다.
미국 사회에서 여전히 비주류이지만 최근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아시아계, 그중에 한국계 이민 1〜2세들의 내면세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논쟁거리가 되기 충분하다. 특히 미국 영화의 산실인 LA가 한국계 이민의 본거지이고, 현지에 미치는 이들의 영향력을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영화에서 보여주듯 초기 이민자들의 미국 사회 정착 과정이 참으로 고달프고 험악하다. 한국에 있는 사람들이 감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한국인들의 미국 이민은 그 이전에도 있었지만 대체로 1970년대부터 본격화됐다. 미국에 발을 디딘 사람들의 사유도 각기 각색이다. 근본적인 이유는 한국에서 먹고살기가 어렵고, 미국에서 더 많은 기회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2세 교육을 비롯해 미래에 대한 희망을 크게 가질 수 있다는 점도 작용했다.
또 민주화 운동 세력이나 범죄 경력이 있어 한국에서 설 자리가 좁아진 부류들까지 적극적으로 이에 합류하였다. 브라질 등 남미나 광부 혹은 간호사로 독일에 파견되었던 사람들도 미국으로 건너오면서 한국계 이민 사회가 점차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다. 한동안 미국 이민이 계속되었지만 2000년대 이후부터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기한이 끝나도 한국에 들어가지 않고 현지에 눌러앉는 일부 현지 주재원 혹은 유학생들을 제외하곤 수적으로 급감했다. 급속한 경제 발전으로 한국에서의 삶이 남부럽지 않게 획기적으로 바뀌어버렸기 때문이다.
요즘같이 세태 각박해지면 이민 환상 다시 꿈틀, 역설적으로 조국(祖國)의 중요성 부각
한인들의 미국 내 삶이 절대 평탄치 않다. 과거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 기회가 큰 만큼 경쟁 또한 치열하다. 소위 말하는 ‘아메리칸 드림’도 환상에 불과하고 시간이 갈수록 현실과 타협하는 길로 들어선다. 영화에 나오는 병아리 감별사와 같은 전문 직종으로 출발하는 경우를 포함해 하나의 가정을 지탱하려면 부부가 공동으로 직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한다. 혼자 벌어서는 기본적으로 생활 자체가 되지 않는다. 조금 여유 있는 부류들은 세탁소나 주류 가게 등을 운영하지만 이런 업종에도 타 인종이 진입해 시장 구도가 어려워지는 모양새다.
흔히들 이들의 삶을 ‘대출(Loan:론) 인생’이라고 한다. 주택이나 자동차 등의 유지비용을 은행으로 돈을 빌려 쓰고 갚는 데 급급하다. 일하지 않으면 하루도 살 수 없는 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종 간의 지역 상권 장악을 위한 물밑 다툼도 점입가경이다. LA 도심의 일본계 상권 일부를 한인들이 치고 들어가고, 오렌지카운티의 가든그로브의 한국계 상권은 베트남계에 의해 빠르게 잠식당하고 있다. LA 카운티에 크게 조성된 코리아타운도 예전 같지 않게 활기가 시들어가고 있는 판이다.
아메리칸 드림의 달성에 대한 평가가 분분할 수 있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크게 성공을 거둔 한인들이 타 인종에 비해 적다. 인도계, 중국계 혹은 다른 아시아계에 비해서도 괄목적이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부를 축적한 인사들이 있긴 하지만 소수이고, 그렇다고 내세울 만한 부자도 거의 없다.
미국 주류 정치권에의 입성도 속도가 빠르지는 않지만, 고무적인 소식은 들려온다. 현재 연방 하원의원으로 4명이 활약하고 있으며 주 의원이나 시장 등의 선출직을 유지하고 있거나 역임했던 인물들이 나오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2세들로 향후 더 많은 주류 정치인이 등장할 수 있는 발판이 구축되고 있기도 하다. 어떤 위치에 있든지 2세까지는 고국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거친 이국땅에서 살면서도 한국에 대한 걱정을 더 많이 한다. 안타까운 점은 한국에 대한 정보가 미흡한 한인들의 경우 한국에 대한 인상이 이민 간 시점에 머물러 있는 점이다. 1970년대에 이민하였으면 한국이 아직도 그 당시처럼 못사는 것으로 착각한다. 반면 자주 왕래하는 부류들은 한국의 발전상에 익히 잘 안다.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미국의 한인들은 암담하고 절박한 현장에서 끈질기게 살아남아 주변에 긍정의 힘을 심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의 상징물로 미나리라는 한국적 소재를 끌어온 것은 절묘한 신의 한 수다. 고난을 타개하기 위해 현지의 관습을 외면하고 ‘한국인은 머리를 써야 해’하는 대사에서는 한국적 DNA가 물씬 풍긴다. 이민 초기 단계에 막연한 큰 꿈을 안고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지만 큰 벽에 부딪히면서 점진적으로 그 꿈은 작아지고, 팍팍한 일상의 삶에 매달리게 된다. 한국인이 종종 내세우는 이 머리 좋다는 것이 장점이기도 하지만 단점이 되기도 한다.
타 인종과 비교해 미국 주류사회에 동화되는 속도가 늦은 원인이 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와 다르게 미국을 포함한 어떤 이민에도 파라다이스는 없다. 해외에 이민 나간 일본인들이 일본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이 목격되지만 한인들은 국내 부동산이나 물가가 너무 올라 역(逆)이민은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요즘같이 한국 내에서 살기가 각박해지면 다시 이민에 관한 관심이 증가하지만, 지구촌 어디를 가더라도 만만한 곳이 없다. 그게 미나리의 줄거리고, 한 발 더 나가면 조국(祖國)의 중요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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