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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불가리스’ 논란으로 18년만에서 회장에서 물러난다. 그는 4일 대국민사과 기자회견에서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고 두 아들에게도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했다. 홍 회장에 앞서 이광범 남양유업 대표도 사퇴 의사를 밝혔다. 사태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다만 홍 회장의 대국민사과와 사퇴 결심에도 여론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한 분위기다. 대국민사과에 ‘알맹이’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홍 회장이 2선으로 후퇴해도 지배력에 문제가 없고, 이런 만큼 남양유업의 고질병처럼 지목돼 왔던 하향식 의사결정구조가 유지될 것이라는 관측 등이 근거로 제시됐다.
낙농업계 등에 따르면 홍원식 회장은 지난 4일 기자회견에서 “모든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며 “자식에게 경영권도 물려주지 않겠다”고 밝혔다. 불가리스가 코로나19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지 22일 만이다.
홍 회장은 “온 국민이 코로나19로 힘든 시기에 당사의 불가리스와 관련된 논란으로 실망하고 분노했을 모든 국민과 현장에서 더욱 상처 받고 어려운 날들을 보내는 직원, 대리점주 및 낙농가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광범 대표는 3일 오전 사임 의사를 밝혔다. 이 대표는 임직원에게 메일을 보내며 “최근 불가리스 보도와 관련해 참담한 일이 생겨 임직원 여러분께 깊이 사과한다”며 “남양 가족에게 커다란 고통과 실망을 줬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모든 것이 저의 잘못이고 불찰이다. 저의 실책에 대한 비난은 무엇이든 달게 받겠다”며 “이번 사태 초기부터 사의를 전달했다. 모든 책임은 제가 지고 절차에 따라 물러날 것이다”고 강조했다.
앞서 남양유업은 지난달 13일 서울 중림동 LW컨벤션에서 불가리스를 공동개발한 한국의과학연구원(KRIBS)과 함께 ‘코로나19 시대 항바이러스 식품 개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한국의과학연구원에 따르면 불가리스 항바이러스 효과를 분석한 결과 감기 바이러스인 인플루엔자바이러스(H1N1)를 99.999%까지 사멸했다. 충남대 수의대는 불가리스가 중증급성호흡기 증후군인 코로나19 억제 효과 연구에서 77.8% 저감 효과를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남양유업은 동물·인체가 아닌 세포 실험 결과라고 밝혔다. “국내 최초로 소재 중심이 아닌 완제품 형태로 항바이러스 효과를 규명해 의미가 있다”고 판단하기도 했다. 그러나 제대로 된 검증을 거치지 않고 발표하면서 논란이 커졌다.
이후 식약처는 남양유업을 ‘식품표시광고법’ 위반 혐의로 행정처분·고발조치했다. 남양유업 세종공장 관할 지자체인 세종시에 영업정지 2개월도 요청했다.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는 지난달 30일 남양유업 본사와 세종연구소 등 총 6곳을 압수수색했다. 남양유업은 세종시에 “구두로 소명할 기회를 달라”며 의견서를 제출한 상태다. 세종시는 24일께 청문회를 개최, 남양유업 의견을 듣고 영업정지 명령을 확정할 계획이다. 과징금은 약 8억원대로 예상됐다.
일련의 사건이 진행되던 중 홍 회장의 첫째 아들인 홍진석 상무는 보직해임됐다. 기획마케팅총괄본부장을 맡았던 홍 상무는 지난달 불가리스 사태와 회삿돈을 유용한 의혹으로 보직 해임됐다. 홍 상무는 회사 비용으로 고급 외제차를 빌려 자녀 등교를 시키는 등 개인적 용도로 사용한 의혹을 받는다.
남양유업 측은 홍 상무의 보직해임에 대해 현재 조사 중이라며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보직해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홍 회장을 필두로 남양유업은 일련의 사태에 책임을 지겠다는 입장이나 업계 안팎 및 여론의 시선이 마냥 곱지만은 않다. 사퇴의사 외에는 구체적인 사태 해결 방안을 제시하지 못한 점 등이 그 이유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남양유업 세종공장에 영업정지 2개월 처분이 확정되면 지역 낙동가에 큰 피해가 예상된다. 남양유업 등에 따르면 세종-충남지역에서 세종공장에 납품하는 낙농가는 모두 201곳이다. 이들은 하루 공장에 약 232t을 납품하고 있다. 금액으로는 한 달 기준 74억원인데 착유된 우유가 유통되지 않으면 비용을 들여 폐기해야 한다.
여기에 착유기, 사료 등 비용까지 고려하면 영업정지 2달간 피해금액은 2000억원이 넘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지역 낙동가는 남양유업 불가리스 파동으로 애꿎은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셈이다. 낙농가 뿐만 아니라 남양유업 대리점들도 일정 수준의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홍 회장의 사과문 등에는 이들에 대한 구체적인 보상, 지원 계획 등이 빠져있다.
홍 회장의 사퇴, 두 아들에 대한 경영승계 포기 선언과 별개로 오너일가의 지배력이 여전하다는 점도 비판을 사는 대목이다.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홍원식 회장 외 일가족의 남양유업 지분율은 53.08%다. 홍 회장 지분만 해도 51.68%다. 홍 회장 외 다른 모든 남양유업 주주가 뜻을 모아도 홍 회장의 의사에 반하는 결정을 할 수 없다는 얘기다.
게다가 남양유업 사내이사 4명 중 3명이 홍 회장의 가족이다. 이광범 대표를 제외하면 홍 회장과 그의 아들 홍 상무, 홍 회장의 어머니인 지송죽 여사 등이 등기임원으로 이사회를 이끌고 있다. 이사회 내에 별도의 위원회가 없다보니 사외이사가 2명 있지만 이마저도 이사회에서 추천한다. 오너경영진을 감시·견제하는 인물을 홍 회장 일가가 뽑는 셈이다.
이렇다보니 남양유업의 고질병처럼 여겨졌던 하향식 의사결정 구조가 앞으로도 유지될 가능성이 남는다. 홍 회장이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는다고 해도 두 아들에 지분을 넘겨준다면 사실상 경영권을 넘겨주는 것과 다름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남양유업은 새로운 사장 선임 및 지분 처분 방식 등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은 상태다.
[강주현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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