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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호의 법으로 세상읽기

한·일관계 해법, 징용공 소송 하급심 판결에 귀기울여야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1-06-16 11:03:18

 
▲ 이동호 변호사
/대법원 다수의견 뒤집은 하급심 판결 나와
/대법원 소수의견에 국제법 논리 새로 추가
/법대로만 외치다 우리가 다급한 신세 초래
/과거문제 후대로 넘기지 말란 경고적 성격
/차기 정부, 반일선동 아닌 외교로 해결해야
 
필자는 4월 21일자 ‘외교는 사라지고 법대로만 남은 한일 관계’ 칼럼에서 한일 관계를 외교적으로 풀려는 노력 없이 국내 정서나 대법원 판결에만 기대어 ‘법대로’를 외친 결과 방사능 오염수를 방류하려는 일본으로부터 대놓고 무시당하는 결과가 초래됐음을 지적한 바 있다. ‘법대로’ 밀어붙이는데 큰 명분이 되었던 2018년 징용공(강제징용 피해자) 소송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내용도 간단히 소개했다. 그러면서 피해자인 우리로서는 일본의 손해배상책임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겠지만 국가 간 조약인 한일 청구권협정의 문구나 체결 경위를 살펴보면 징용공의 손해배상청구권도 청구권 협정의 대상이어서 소송으로는 청구할 수 없게 되었다고 본 소수의견에 더 공감한다고 피력했었다.
 
그런데 마침 필자의 생각에 들어맞는 하급심 판결이 나왔다. 이달 7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34부가 징용공 피해자 본인과 유족 85명이 16개 일본 기업을 상대로 제기했던 손해배상청구를 각하한, 쉽게 말해 패소시킨 판결이 그것이다. 이 판결을 두고 여당 중진들은 또 다시 토착왜구 선동을 했다. 추미애 전 법무장관은 “대한민국이 아니라 일본 판사처럼 보인다”며 재판장의 실명까지 거론했고 송영길 민주당 대표도 “조선총독부 경성법원 판사 판결이냐”며 맹비난을 퍼부었다.
 
그러나 필자는 이런 비난에 전혀 동의할 수가 없는데 이번 하급심 판결이 단순히 대법원 소수의견만을 앵무새처럼 좇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판결은 국가 간 조약의 문제이니 국내법보다는 국제법적 논리로 해결되어야 한다는 새로운 시각을 추가해서 진지하고 용기 넘치는 고민이 보였기 때문이다. 일본이 안중에도 없는 여당 정치인들이야 이런 고민을 무시하겠지만 상식 있는 시민들은 한번쯤 귀를 기울여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지면을 빌어 징용공 소송을 다시 되짚어 보고자 한다.
 
징용공 소송은 처음에 6명의 징용공이 직접 일본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데서 시작되었는데 2007년 11월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최종적으로 패소하고 말았다. 손해배상채권의 소멸시효 10년이 훨씬 지나버려서 청구권이 인정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징용공들은 일본 소송 진행 도중에 우리나라 법원에도 똑같은 소송을 냈었는데 2009년 선고된 우리나라 고등법원 판결도 일본 판결과 똑같이 소멸시효 완성을 이유로 패소판결을 내리고 말았다. 소멸시효 규정에 있어서는 사실 두 나라 법이 별로 다를 바가 없기 때문에 일본 판결의 패소 이유를 수용했다고 해서 부당하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이 일본 판결문에는 일본의 한국병합이 조약을 통해 이뤄진 것이고 징용도 국민징용령이라는 법률로 이뤄진 것이라서 불법행위로 볼 수 없다는 판단이 들어 있던 것이 화근이었다. 이 부분이 아마 고등법원 판결의 상고심 주심 김능환을 비롯한 재판장 이인복과 안대희, 박병대 등 당시 대법관들의 눈에 거슬렸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본 판결이나 한국 고등법원 판결이나 소멸시효 완성을 이유로 패소시킨 것이라서 식민 지배의 불법성 여부는 사실 패소의 이유가 되진 않았다. 그럼에도 대법원은 2012년 5월 고등법원 판결을 파기시켰다. 그 논리는 불법행위자인 피고 미쓰비시중공업이 소멸시효 완성을 구실로 채무를 거절하는 것은 우리 민법의 대원칙인 신의성실에 반하고 권리남용에 해당된다는 것이었다.
 
사실 대법원이 신의성실 원칙을 들어 소멸시효 주장을 배척한 판결은 그 전에도 여러 번 사례가 있었으므로 이 법리를 적용하지 않았던 고등법원 판결이 아무래도 성의가 부족하지 않았냐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대법원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사실상 월권을 했는데, 패소의 이유가 아니었던 한일협정의 해석 문제를 직접 판단해 버렸던 것이다. 한일협정은 식민지배의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협상이 아니라 재정ㆍ민사적인 채권ㆍ채무 관계를 정치적 합의에 의하여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나 식민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여전히 살아 있고 대한민국 정부의 외교적 보호권도 포기되지 않았다고 봤던 것이다.
 
결론만 놓고 국민적 관점에서 본다면 속시원한 결정이었다. 하지만 법률가의 관점에서 볼 때는 매우 아쉬운데 이 복잡한 사안의 판단이 딱 21줄에 불과했고 아무리 읽어 봐도 논증은 없고 결론만 제시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주심을 맡았던 김능환 전 대법관도 “독립운동을 하는 심정으로 판결문을 썼다”고 해서 민족적 감정이 개입되었음을 부정하지 않았다.
 
하여튼 이 판결부터는 한일협정의 해석 문제가 본격적인 쟁점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한 또 다른 징용공 소송이 2013년 대법원에 올라오자 자칫 한일 간 외교적 마찰까지 우려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재판부를 전원합의체로 확대하고 신일철주금 대리를 맡은 김앤장 변호사까지 불러서 외교부 자문을 받아달라고 요청했던 것이 사법농단 시비마저 낳고 말았다.
 
그 후폭풍인지 김명수 대법원장이 취임한 후인 2018년 10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압도적인 다수 의견으로 2012년 대법원 판결을 재확인했던 것이다. 물론 이 판결은 한일협정의 체결 경위, 그 이후 보상 경위, 한일협정의 내용 등을 장문에 걸쳐서 치밀하게 논증했었다. 그래서 이 자체가 한일 관계에 대한 좋은 텍스트라고 생각되지만 매우 아쉬운 점이 있었다. 헌법상으로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 국제조약인 한일협정이 국내법적인 법해석, 사실은 식민통치의 불법성이라는 실정법을 초월한 민족 감정에 치우쳐 무시되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한일협정 제3조는 협정의 해석에 관한 양국 간 분쟁은 우선 외교 경로를 통해 해결하고 이게 안 되면 중재를 거치도록 되어 있는데 이마저도 외면되었던 점이다.
 
그런데 이번 하급심 판결은 청구권 협정의 해석에 관해서 대법원의 소수의견, 즉 이미 한일협정으로 해결되어 소송으로 다시 청구할 수 없다는 의견을 견지하면서도 대법원 다수의견에 부족했던 국제법 논리를 새로이 추가했던 것이다.
 
‘국내 법원이 국제법을 다룰 때에는 국내사회와는 성격을 달리하는 국제사회를 규율하는 법체제에 합당한 해석과 처리를 하여야 한다‘고 포문을 연 판결은, 조약의 불이행을 정당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국내법 규정을 원용해서는 안 된다는 비엔나협약을 근거로 제시했다. ’조약의 당사국이 국내법 사정으로 조약에서 이탈하는 것을 허용하면 국제질서를 혼란시키고 국제평화를 위협‘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대법원 판결이 터 잡은 식민지배의 불법성과 징용의 불법성은 용감스럽게도 모두 국내법적인 법해석이므로 이를 근거로 조약에 해당하는 청구권협정의 불이행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일갈했다.
 
또한 국제법상의 ‘금반언’과 ‘묵인’이라는 변호사인 필자에게도 생소한 원칙도 들었는데 청구권 협정 이후에 우리나라가 취했던 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련의 보상 조치나 일본이 취했던 일본인의 한국 내 재산에 대한 청구권을 소멸시키는 법 제정 등이 청구권 협정에 의한 개인청구권 소멸을 승인, 묵인한 행위였으므로 이제 와서 이에 배치되게 청구권을 인정할 수는 없다고 보았다.
 
필자도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일제 식민통치에 당연히 울분이 있다. 우리나라 최고 법원의 판결은 당연히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조약에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부여하는 것도 약육강식의 국제사회를 그래도 평화롭게 만들기 위한 현대 국가들의 공통된 법규이다. 일본도 막대한 재정을 투입했고 한국에 남겨진 소위 ‘적산’에 대한 청구권을 완전히 포기하면서까지 체결하고 이행했던 한일협정이 무려 50년이 흘러 뒤집히면 한일 관계가 파탄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정부와 여당은 2018년 대법원 판결 즉시 일본에 외교적 해결을 제안했어야 했지만 오히려 판결을 구실로 반일 선동에 불을 붙였고 이번 하급심 판결도 격하게 공격하고 있다. 그러나 대법원 판결 이후 지금 우리에게 무엇이 남아 있는가. 필자가 보기엔 일본에 무시만 당하고 오히려 우리가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 더 매달리는 초라한 형국이 된 것 같다. 최근 열린 G7 정상회담에서 일본이 한국을 정식 멤버로 가입시키는 것에 반대 입장을 표시하기도 했지만 일본은 관심조차 없는데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 총리와 회담하지 못한 것에 아쉬움을 표시했다가 스가 요시히데 총리로부터 한국이 약속을 안 지켜서 만날 상황이 아니라고 한마디로 면박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판결을 단순히 하급심의 반란으로만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최근에 야당 당대표로 30대가 선출되기도 했지만 식민지배의 기억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신세대들이 구세대들에게 과거 문제를 더 이상 신세대에 넘기지 말아 달라고 경고한 것으로 좋게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본다. 물론 이제 임기가 일 년도 안 남은 이 정부에서 해결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그러나 내년에 출범할 차기 정부는, 여든 야든 외교적으로 해결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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