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수장 자질론 은성수, 손태승의 책임경영 배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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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 거래소 규제안 내놓고 은행에 책임전가
은성수 “가상화폐 검증 은행이 할 일” 입장 피력
손태승, 기업·주주가치 제고 개인희생과 극명 대조

김신 기자페이지 + 입력 2021-07-12 00:02:08

최근 세계 각국 정부는 가상화폐 관련 부작용 해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대부분 중앙정부 관리 범주에 편입시켜 강력한 통제를 가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다만 그 과정에서 기존 투자자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라도 적지 않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후자에 가까운 모습이다.

가상화폐가 지닌 한계점을 인정하며 관리 범주 안에 편입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이면서도 책임문제 만큼은 피하려는 식이다 보니 무엇 하나 뚜렷하게 진행되는 일이 없다. 당장 가상화폐 실명계좌 문제를 대하는 태도만 봐도 그렇다. 3월 25일 시행된 특정금융거래정보법과 그 시행령 등에 따르면 가상화폐 거래소는 반드시 은행으로부터 실명을 확인할 수 있는 입·출금 계좌를 받고 신고 절차를 거쳐야 영업할 수 있다.

유예기간이 끝나는 오는 9월부터 실명계좌를 받지 못한 가상화폐 거래소는 영업 자체가 불법이 되므로 현재 영업하는 대다수의 가상화폐 거래소가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다. 가상화폐 거래소의 실명계좌 발급을 시중 은행들이 꺼려하고 있어서다. 실명계좌 발급 과정에서 은행은 가상화폐 거래소의 내부 통제 시스템, 자금세탁 방지를 위한 절차와 업무지침 등의 검증을 대신하게 되는데 문제가 발생할 경우 고스란히 검증책임을 뒤집어 쓸 가능성이 높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가상화폐 거래소들은 금융 당국의 개입을 촉구하고 있지만 금융위는 철저하게 책임질 일은 피하는 모습이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은행 스스로 판단해서 준비되면 신청하면 되고, FIU는 그 기준에 따라 등록을 받아주면 되는 것이다. (거래소 검증 책임을) 은행에 다 떠넘긴다고 하지 말라. 그게 은행이 할 일이다”고 못박았다.

가상화폐 실명계좌 발급 문제를 두고 불거진 은 위원장의 책임전가 논란은 가상화폐 거래소뿐 아니라 수많은 투자자의 공분을 사고 있다. 금융위가 통제 의지를 내비치면서도 정작 관련 문제 해결엔 미온적 태도를 보이는 탓에 가상화폐 시세가 과거에 비해 크게 떨어져 금전적 피해를 입었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더욱이 앞으로 가상화폐 투자 자체가 어려워지는 데다 지금까지 투자한 자금의 회수 여부도 불투명해 비판 여론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은 위원장의 무책임한 행태와 그에 따른 후폭풍 피해 확산은 자연스레 금융 당국 수장으로서의 ‘자질론’으로 이어지고 있다. 산업자본과 민간자본을 좌지우지할 만큼 금융자본의 영향력이 막강해진 현 시점에서 금융정책을 총괄하는 기관의 수장으로서 ‘책임감’이 아쉽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은 위원장에 대한 혹평은 그의 통제 범위 내에 놓인 금융사 오너·CEO에 대한 평가와 사뭇 다르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된다. 비교 대상이 되고 있는 인물은 우리금융지주 수장인 손태승 회장이다. 손 회장은 앞서 우리금융을 둘러싼 불미스러운 사건이 불거져 나올 때마다 가장 먼저 나서서 사태를 수습하는 모습을 보였다. 펀드사태 당시에는 책임 소지가 불분명한 상황에서도 피해자 구제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특히 손 회장은 코로나19 여파로 증권시장의 침체가 예상될 때마다 선제적으로 직접 사비를 들여 자사주를 매입해 이목을 끌기도 했다. 금융주의 경우 글로벌 금융시장 침체의 영향을 많이 받는 종목으로 꼽힌다. 우리금융은 손 회장의 자사주 매입 행보에 대해 “기업가치와 주주가치를 지키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다”는 입장이다.

가상화폐 투자자들의 경제적 피해 가능성을 외면한 은 위원장과 불가항력에 가까운 코로나19라는 악재 속에서 주주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손 회장의 태도는 달라도 한참 달라 보인다. 공직 사회가 지닌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은 위원장의 행보는 분명 국민적 지탄을 받을 만한 사안임이 틀림없다.

특히 스스로 벌인 일조차 책임지지 않는 태도는 금융 당국에 대한 국민 신뢰도에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힐 것으로 보인다. 금융 당국의 신뢰하락은 곧장 금융산업 전체에 대한 신뢰 하락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금융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최대 걸림돌이 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비록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지금이라도 은 위원장에게서 손 회장의 모습을 보고 싶다.

김신 skim@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