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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반환점을 돌아선 2020도쿄올림픽이 불안함은 상수이지만 지구촌에 잔잔한 감동을 전해준다. 관중이 없어 열기는 다소 식었지만, 극한 환경 속에서도 불굴의 인내와 의지로 대회를 준비한 각국 선수들이 최선을 다하는 모습과 뛰어난 기량에 박수갈채를 보내기에 충분하다.
팬데믹이 성행하고 있어 개최 자체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비등했지만, 역경을 이겨낼 수 있다는 긍정적 자신감이 더 힘을 얻고 있는 분위기다. 한국을 대표하고 있는 태극전사들의 활약도 눈부시다. 메달의 색깔과 관계없이 그들이 보여주고 있는 투혼이 델타 변이 바이러스와 무더위에 허덕이고 있는 국민적 사기를 충전시키고 있다. 이번에도 세계 10대 스포츠 강국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올림픽 9연패라는 위업을 달성한 여자단체 양궁의 숨은 비결은 감동적이다. 오직 능력으로 평가하고 독보적 기술력 유지와 리스크 관리 등을 위한 ‘초격차’ 전략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 번 1등 하는 것보다 어떻게 그 위치를 유지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힌 위대한 업적으로 한 수 배워야 한다는 열풍까지 불 정도다.
일본에서 들려오는 낭보와 더불어 또 하나 위안이 되는 것은 우리 경제의 젖줄인 수출의 가파른 회복세다. 코로나 장기화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지만 경제의 버팀목인 제조업이 살아날 기미를 보인다는 점에서 상당히 고무적이다. 7월 수출이 65년 만에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고, 9개월 연속으로 폭발적인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다. 글로벌 교역량이 빠르게 확대되는 추세를 고려하면 올해 수출이 코로나 이전인 2018년에 이어 다시 6000억달러를 넘어설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반도체·석유화학·자동차 등 주력상품의 수출 호조세가 이어지고 있고, 중국·미국·유럽연합(EU)·아세안(ASEAN )등 4대 수출 주력시장에서 두 자릿수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연간 영업이익이 1조원 이상이 되는 ‘1조(兆) 클럽’ 제조기업의 수가 작년 11개에서 29개로 늘어났다. 위기 중에도 과감한 선제적 투자와 신사업 확대, 포트폴리오 다변화라는 3박자 경영으로 글로벌 경기 슈퍼 사이클에 올라탐으로써 기회로 반전시켰다. 포스트 코로나 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선전이 실로 눈부시다.
문제는 경제 주체 간의 명암이 여전히 대조적이라는 점이다. 내수는 꾸준히 반등 추세를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불안하다. 코로나 4차 대유행과 원자재 가격 급등에 따른 물가상승이 부정적인 요인으로 상존한다. 코로나 이전에는 수출 제조업이 돈을 많이 벌면 내수 시장으로 연결되는 선순환 작용을 했다. 그러나 거리두기 단계가 강화되면 내수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글로벌하게 보더라도 백신 접종이 빠른 선진국의 경우 교역과 내수가 동시에 살아나고 있지만, 후진국은 교역이 살아나고 있기는 하나 내수는 상대적으로 부진하다.
제조업도 유사하다. 호황을 누리고 있는 업종이 있지만 부진한 업종 또한 수두룩하다. 완벽한 경기 회복세라고 평가하기에는 아직도 그늘진 구석이 많다는 의미이다. 정치가 반(反)시장 포퓰리즘과 선거에 올인하고 있는 중에도 한국 경제의 최선봉에 서 있는 수출 제조기업이 기업가 정신을 발휘하면서 미래에 대한 희망의 불씨를 밝혀주고 있다는 점은 참으로 다행스럽다. 경제 활력을 부추기는 첫 단추가 제조업이라는 점에서 긍정적 시그널임은 분명하다.
글로벌 가치사슬 재편과 비대면 경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면 더 큰 기회로의 반전 가능
이렇듯 겉은 화려하지만, 수출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불편한 시각도 있다. 과거와 같이 양질의 일자리가 크게 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 제조업 분야에서 크게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는 이유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제조업 혁신이 사람 대신에 디지털 기술로 대체되고 있는 것이 부인할 수 없는 현상이다. 여기에 강성 노조가 버티고 있는 것도 신규 일자리 창출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상당수 제조 대기업이 인력보다 AI 등에 더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일자리를 만들려면 대기업과 협력해 내수에서 수출로 전환하면서 파이를 키우는 중소기업의 수를 더 늘려야 한다. 한편으로는 기업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묶어 두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며, 이는 해외에 나가 있는 기업을 국내로 다시 끌어들이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거둘 수도 있다. 우리 산업현장을 보면 중소기업의 사업자 수, 종사자 수, 생산액 등의 비중에서 경쟁국보다 압도적으로 높으나 수출 비중은 매우 낮다. 더 많은 중소·중견기업이 해외시장에 발을 들여놔야 한다.
한편, 제조업의 회복을 우리 경제 생태계의 복원으로 연결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중소벤처 기업이 획기적으로 늘어나고 이들이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의 스타트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유연한 사다리를 구축하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고용 창출 효과를 보면 전통 산업보다 신(新)산업에서 훨씬 더 많은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기존 제조업의 경우 노동자 해고 어려움,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으로 인해 공장자동화나 해외 진출로 내몰리고 있는 구조다. 이에 비해 매년 수백 명 이상 고용하는 벤처기업의 수는 지속해서 증가하는 추세다.
세계적으로 보더라도 코로나발(發) 디지털 혁신으로 유니콘 기업의 수가 많이 늘어나고 있다. 비대면 경제 활성화로 소프트웨어, 핀테크, 물류 등을 중심으로 한 기업 생태계에 일대 혁신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원인이다. 아시아권에서는 자체 거대 배후시장을 가진 중국·인도에 이어 한국이 3번째로 많은 유니콘 기업을 배출하고 있다. 이는 제조업의 기반이 강하기 때문에 스타트업이 빠르게 자리를 잡는 배경이 된다. 다만 신생 스타트업들이 국내 시장에 한정되지 않고 해외로 뻗을 수 있는 진취적 환경 조성이 시급하다.
한국 경제가 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재도약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를 강하게 시사해준다. 전통적 먹거리의 제조업과 미래 먹거리인 신산업 부문에서 신생 벤처기업이 동시에 활력을 찾는 생태계 조성만이 살길이다. 전통 제조업과 신산업이 대체적이 아닌 보완적 관계로 같이 날개를 다는 쌍두마차로 돼야 한다.
포스트 코로나 대응 차원에서 미국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글로벌 가치사슬 재편도 우리에게 불리하지 않다. 중국의 모험적 독주에 제동에 걸리면 더 많은 기회가 생겨날 수 있다. 글로벌 정세를 제대로 읽고 산업과 교육 현장의 대대적인 수술을 할 수 있는 혁신적인 리더십의 등장은 시대적 필연이다.
이 시점에 세계적 경영사상가로 ‘히든 챔피언’이라는 개념을 처음 제시한 독일의 헤르만 지만이 “수출로 먹고사는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라는 경고는 새겨들을 만하다. 우리나 독일과 같이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가에는 청천벽력이다. 하지만 글로벌 최고 기업이 많으면 얼마든지 버텨낼 수 있다. 사업·기술에 월등한 강소기업이 많아야 한다. 상속세를 낮추어서라도 강소기업의 영속성을 보장해야 한다. 이러한 경고가 기우라는 것을 증명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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