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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예술가 머레투, 도시에 사는 우리 일상을 추상적으로 표현
/그녀의 그림을 보며 산책하듯 관객은 자신만의 이야기 만들어
/비대면 세상에서 우리는 과거 교류해왔던 무언가를 잃고 있어
/마스크 너머, 스크린 밖 도시를 적극적으로 상상하며 살아보자
요즘 어린 아이들이 안면인식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어른들도 서로 눈만 보고 감정을 알아채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이다. 마스크를 쓰고 보니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각적 정보가 필요한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마스크를 쓰고 한참을 대화하던 중, 상대방이 물이라도 마시게 되면 한없이 낯설어진다. 몇 시간 대화를 통해 친해진 것 같은데, 마스크를 벗고 마주하는 서로의 모습에 당황한 내색을 숨기는 것이 사회생활 능력에 포함되는 듯하다.
영어에서 “나는 본다(I see)”라는 말은 “나는 이해한다(I understand)”라는 의미이다. 보는 것이 곧 세상을 이해하는 과정인 것이다. 하지만 마스크를 쓰고 살아가는 지금, 우리는 이전보다 더 적은 시각적 정보를 통해 세상을 마주한다. 마스크에 가려 사람들의 표정이 보이지 않고, 거리 두기로 사람들의 활동이 체감되지 않는다. 휘황찬란한 조명을 자랑하던 거리는 일찍 불이 꺼지고 고요해진 도시에는 건조함이 감돈다. 누군가 코로나 이후 도시의 모습을 기록한다면 어떠한 모습일까. 마스크와 어두워진 거리 위, 팬데믹에 대한 불안과 사투를 담아 어떤 작품이 우리의 현실을 대변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눈에 보이는 물리적 도시 환경뿐만 아니라 도시의 일상을 담는 작품을 생각할 때면, 에티오피아 출신의 미국인 추상 예술가 줄리 머레투(Julie Mehretu, 1970~)의 작업이 떠오른다. 작가는 건축 도면과 투시도를 통해 도시의 모습을 그리고 그 위에 도시에서 벌어지는 일상을 추상적인 형태로 쌓아올린다. 사람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도시를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을 추상적인 드로잉을 적층하여 표현한다.
그녀의 작업 과정은 도시를 구성하고 그 위에 사람들이 살아가는 시간의 흐름과도 같다. 작업의 가장 첫 단계는 직접적인 형태를 알아볼 수 있는 투시도 기법으로 도시의 물리적 환경을 담는다. 그 후, 도시인의 일상, 도시에서 벌어지는 각종 논쟁 등 일상적인 맥락을 각종 도형을 캔버스 위에 그려나간다. 계속해서 움직이는 도시의 모습을 한순간을 포착해서 담아내지 않고 매 순간 변화하는 과정을 담는다.
따라서 작품은 정확한 소실점 하나로 우리의 시선을 끌어모으는 투시도법의 정석을 따르지 않는다. 머레투의 그림 안에는 점을 찍어 선택할 수 있는 지점이 없다. 머레투가 유년기를 보낸 디트로이트를 대상으로 한 작품 Black City를 보면, 건축적 드로잉 위에 흩뿌려진 각종 도형과 선이 오히려 눈이 멈출 곳을 안내하기보다 눈이 멈추는 것을 방해한다. 관람자는 오히려 계속 그림을 읽으며 그림 안을 산책하듯 움직인다.
특히 건축물 드로잉 위로 층층이 쌓인 각종 기호는 도시 공간 위에서 발생한 시공간적 사건들을 상징하며 각기 다른 조합과 해석을 가능케 한다. 그녀의 작품은 과거와 미래, 허구와 현실, 주관적 또는 객관적인 요소와 같은 절대적 공간의 이원론적 개념을 벗어나, 지도에 있는 공간을 상대적이고 개방적인 역동성으로 변화시킨다.
이는 실제 도시에서 발생하는 가속하는 혼종 경관들, 주체와 객체가 일대일로 대응할 수 없는 수많은 행위자의 존재를 상기시킨다. 한 장소에서 형성되는 수많은 공간이 여러 맥락에서 어떠한 모습과 느낌으로 가능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는 머레투 작품의 특징인 레이어 기법을 통해서 더욱 명확히 구현된다. 시간과 공간을 적층시킨 작품에는 물리적 공간 구조의 지형적 경관을 넘어 일상에서 벌어지는 도시의 상황적 맥락까지 포함된 사회적 경관이 함께 그려진다.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고 과거와 현재 사이의 경계를 넘나들며, 예술과 건축의 역사, 대중문화, 문화적 다양성, 이주, 사회적 갈등 등 그녀의 다양한 관심사가 공간의 요소로 함께 재현된다.
이와 관련하여 머레투가 한 인터뷰에서 관객들이 자신의 작품을 읽고 해석했으면 좋겠다고 언급한 점이 흥미롭다. 관객은 그녀의 작품 속의 풍부한 아이콘을 재해석하고 습득함으로써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며 새로운 공간을 구성해나간다. 이를 통해 관객은 머레투의 작품이 그려내는 유동적 공간 안에 거주하게 된다. 도시를 산책하듯 작품 안을 산책하는 경험이다.
이는 마치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의 공간이 형성되고 인지되는 과정과 유사하다. 모두 파악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요소들이 함께하는 도시에서 공간 인지란 매우 선택적이고 우연한 상황에서 복수의 대상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경험된다.
다양한 종류의 공간, 역동성, 존재 그리고 상상력. 줄리 머레투의 그림에서 도형으로 표현되는 이 수많은 도시의 다양성이 팬데믹과 함께 상상의 영역에 치중되었다. 웃으며 소풍을 떠나는 아이들, 고심이 가득한 벤치 위에 누군가, 열정과 호기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누군가의 패기도 마스크 너머, 보이지 않는 곳에 자리한다.
위드 코로나 시대 우리는 가능한 상상력 모두를 동원하여 도시를 읽어가야만 한다. 모든 것이 비대면의 세상으로 넘어가는 중에도 분명, 실제 공간에서 우리가 교류해왔던 그 무언가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하여. 보이지 않는 도시의 시대, 마스크 너머, 스크린 밖 도시를 상상하며 더욱 적극적으로 상상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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