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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언의 문화방담(放談)

선진적 문화예술 제도를 열어준 선각자 김영중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1-09-03 11:43:48

 
▲이재언 미술평론가
/문예진흥법, 건축물미술장식품법, 미술저작권 등 정책 제안
/광주비엔날레-디자인비엔날레 개최 아이디어 제시 및 연구
/독립기념관 ‘불굴의 한국인상’조작 등 품격 높은 작품 제작
/오늘의 선진문화강국 기틀을 마련해준 불후의 업적을 남겨
 
1995년 가을, 첫 회 광주비엔날레가 열리던 기간 중 필자는 시민강좌를 위해 광주를 방문한 바 있다. 아침 일찍 출발은 했으나 수도권 지역 정체 때문에 제 시간에 도착하기가 어려워 과속운전을 했다가 그만 장성 인근 고속도로에서 단속에 걸렸다. 밑져야 본전이다 싶어 비엔날레 강좌 시간 늦어서 과속을 하게 되었다 했더니, 교통경찰 아저씨가 눈감아줘서 무사히 강연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주제가 세계미술의 추세와 비엔날레의 역할 등에 관한 것이었다. 500여 명이 강연장을 가득 메운 자리로서 비엔날레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을 느낄 수 있었다.
 
청중이 많다 보니 강의도 열심을 다했다. 1시간 남짓 강연을 마치고 질문을 받는 순서였다. 어떤 남자 분이 일어나 질문을 시작했다. 막 엊그제 발표된 대상작가 작품을 어떻게 생각 하냐는 것이었다. 쿠바 출신 크초 & 알 렉시스 레이바의 작품인 ‘잊어버리기 위하여’라는 작품을 말하는 것이었다. 맥주병들 위에 낡은 보트가 놓여 있는 아르테포베라 양식의 오브제 작품을 어떻게 생각하냐는 물음에, 필자는 ‘쿠바 난민들의 아픔을 오브제로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라는 말도 채 마치기 전에 갑작스러운 소동이 일어났다. 답변이 끝나기도 전에 ‘개판’ ‘사기’ ‘예술의 모독’ 등의 폭력적인 언사들이 난무하며 온 청중들이 일제히 비엔날레를 성토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세계적 명성으로 빛나는 광주비엔날레지만, 처음엔 시민들의 냉담한 반응과 불만 등으로 출발이 험난했다.
 
예상치 못한 돌발 사태로 강사였던 필자도 당황스러웠지만 주최 측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당시 광주의 모 대학 교수였던 사회자가 급히 강연을 종료한다는 폐회사로 막을 내렸고, 필자도 씁쓸한 마음을 달래며 올라온 기억이 있다. 처음 시작할 때 지역사회에서 난관이 많았던 광주비엔날레는 이제 명실공히 아시아를 대표하는 비엔날레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비엔날레의 원조 격인 베니스 비엔날레를 가보면 은근히 국가 간 경쟁을 유도하는 예술행사로서 예술적 기량의 경쟁이 다가 아니다. 광주는 이제 의제나 남농으로 대표되는 예향을 넘어 세계적 예술가들이 발길을 하는 예술도시로 각광을 받기에 이르렀다.
 
광주를 이렇게 발돋움시킨,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인물이 한 사람 있다. 조각가 우호(又湖) 김영중(1926 – 2005)이다. 그는 한국 1세대 조각가로서도 유명했지만 예술정책과 제도 구축에 관한 많은 아이디어를 내고 앞장서서 주창했던 예술계의 기념비적 선각자이자 어른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국가경제 발전에 문화예술이 얼마나 중요한 토대가 되는가를 입버릇처럼 역설하고 있지만, 그는 이미 50년 전부터 이러한 안목을 가지고 문화강국론을 설파하고 있었다. 그가 아이디어를 내서 정책으로 채택된 것만 해도 문화예술진흥법(1969)과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1989), 건축물미술장식품법(1997), 저작권법 등이다. 이밖에도 국내 첫 조각공원인 목포유달산조각공원(1982)과 제주조각공원(1986) 등을 조성하는 데 앞장서서 전국적으로 확산시켰고, 조각 및 공공미술이 시민들의 생활과 밀접하게 접근하는 기초를 놓은 장본인이다.
 
▲인물, 화강석, 77x40x35cm, 1990.
 
▲ 인물상
 
▲ 광주비엔날레 상징조형물 무지개 다리.
 
▲불굴의 한국인
 
▲ 작가 김영중
 
그는 조각가로서도 절제된 조형미와 세련된 감각의 조각으로 국내 굵직한 조형물을 많이 제작했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독립기념관 내부의 15m 거대상 ‘불굴의 한국인’ 상이다. 그러한 조형물 작업으로 생긴 수익금은 대부분 자신이 아이디어를 낸 정책들의 연구에 쏟아 부었다. 실제 필자가 옆에서 직접 겪은 바가 있다. 필자와의 인연은 1996년 광주비엔날레 후속으로 광주시에 함께 제안한, ‘디자인비엔날레’ 개최 방안 연구를 함께 하지 않겠냐는 제의로 시작되었다. 더 정확히는 ‘광주지역 디자인산업 진흥방안 연구’였다. 광주비엔날레 개최를 주창하기 전부터 디자인비엔날레와 교차 개최에 대한 아이디어를 이미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광주시로부터 받은 연구용역비가 2000만원이 채 안 되는 금액인데, 연구진과 보조스탭까지 구성하다 보니 오히려 총경비가 받은 금액의 두 배를 훌쩍 넘었다. 하지만 고향을 위한 일이라면서 사비를 들여 수행 완료했으며, 후에 광주디자인비엔날레가 빛을 본 것이다. 그는 디자인 전공자도 아니다. 하지만 순수미술 중심의 광주비엔날레가 광주를 먹여살려주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순수미술과 디자인이 함께 유기적으로 협업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 대외적 간판이 디자인비엔날레이며, 그것이 행사로만 그치지 않도록 디자인진흥원이 함께 설립되어 지역의 영세업체 디자인까지도 지도‧자문하는 선순환이 그 연구의 목표이자 골자였다.
 
또한 그는 미술저작권이 법적으로 보장되고 작가가 작품 판매만이 아닌 저작권 수익 증대를 통해 경제적으로 윤택해지도록 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사재를 털어가며 연구를 진행하고 미술저작권협회를 창립하기도 했다. 조각 작품 가격 산정의 기준인 ‘중당가’ 도입도 그의 아이디어였다. 그림의 경우 가격 산정의 기준이 되는 ‘호당가’가 일반화되어 있지만 조각의 경우는 기준이 없다 보니 모호한 상태였다. 그래서 ‘중당가’라는 산출 공식을 도입하여 지금도 시행되고 있다. 육면체인 조각 작품의 바닥을 제외한 5면이 그림이라 생각하고 산출하는 방식으로서 그가 얼마나 예술계 전체를 깊이 있게 파악하고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해결사 역할을 수행하였는지를 알 수 있다.
 
2005년 그가 타계하고 나서 연구의 산실이자 최초의 미술도서관인 연희조형관이 유족에 의해 매각되었다. 그가 수많은 정책과 제도 아이디어를 위한 연구 등에 사재를 털어 진행하면서 누적된 부채만 아니었어도 기념관으로 존치했어야 할 건물이 매각된 것이다. 지금 우리는 주변국들과 선진국들조차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선진적 문화정책과 제도를 누리고 있다. 예술가들만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그 성과들이 국민들과 함께 공유하기 위한 피드백이 정책 전반에 들어 있다. 얼마 전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그래도 성과가 컸던 ‘우리 동네 미술’ 프로젝트의 경우도 지방의 소읍민들조차도 예술을 향유하도록 하는 정책적 배려가 내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세계가 주목하는 한류와 K-컬쳐, K-아트가 바로 그에게 빚진 바가 적지 않은데, 우리가 그의 지대한 문화예술 공로와 기여에 대해 너무 무관심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스카이데일리 / skyedaily__ , skyedaily@sky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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