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의 시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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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이의 도시인문학

경험·소유를 소셜네트워크에서 공유·인증하는 시대
유럽 그랜드 투어, 딜레탕티 사회 등 모임의 역사
가공된 이미지 속 진정성 파악 기준과 철학 중요

유영이 필진페이지 + 입력 2022-02-16 10:00:10

집중해서 전시 작품을 관람하고 있는데 갑자기 소음이 들려온다. ‘찰칵’ 한번이 아닌 스마트폰 연사 기능의 화려한 소리가 등장한 탓이다. 작품을 감상하러 왔다기보다는 사진을 찍으러 온 것이 목적이 더 큰 관람객들이 종종 보인다. 예쁜 꽃을 사진에 담는 사람들처럼 촬영 또한 작품을 감상하는 방식일 수 있다. 소장이든 공유이든 사진으로 남기는 것이 문화생활에서 핵심 요소가 된 것은 아닐까. 아름다운 작품과 함께한 사진 속 모습은 소셜 네트워크 안에서 하나의 기록이 된다. SNS는 기억의 수장고로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기 위한 목적으로 운영되며 활발한 사회 활동의 무대가 된다.

공유 문화가 활발해진 이유는 인터넷의 발전과 SNS의 확산 때문일까. 대체 언제부터 공유하기 위한 삶을 살아왔을지 의문이 이어졌다.

▲Portrait of Francis Basset, 1st Baron de Dunstanville and Basset, 18세기 초상화로 그려진 그랜드 투어리스트의 모습. 한 장소에 공존하지 않는 유명 건축물들을 배경으로 한다. ©Prado Museum, Wikimedia commons

유럽에서 17세기부터 유행한 그랜드 투어와 함께 여행을 주제로 한 초상화 작업이 활발했다는 이야기는 지금의 SNS와 비슷한 결을 갖는다. 그랜드 투어는 영국 귀족 자제들이 교양을 쌓기 위해 개인 교사와 하인들과 함께 몇 년간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 유럽 대륙을 순회한 여행을 말한다. 이들은 역사적 유적과 박물관 등을 여행하며 현장에서 직접 보고 배우는 기회를 누렸다. 책으로 만나는 것보다 더욱더 생생한 문화 체험이었다. 당시 그랜드 투어는 귀족 자제들의 특권이었기 때문에 투어의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여행지에서 방문했던 장소를 배경으로, 자신의 초상화를 그렸다. 콜로세움과 피사의 사탑이 한데 어우러진 그림을 보며 ‘나 여기 다녀왔어요’라고 말하고 있는 그림 속 사람들의 모습에서 오늘날 우리의 SNS를 보는 듯하다. 300년 전 사람들이나 지금의 우리나 인증을 향한 욕구는 그리 다르지 않았다.

나아가 공통된 경험을 바탕으로 특정 모임이 만들어지는 현상도 오늘날과 비슷하다. 프랑스 혁명 이후 루브르는 영국에서 온 여행객들 만남의 장소로 유명해졌다. 루브르의 작품을 감상하기보다 사람을 만나는 일에 더 관심 있었다는 비난조 섞인 기사도 있다. 같은 나라에서 여행을 온 사람들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은 쉽게 친해질 수 있었고 이미 프랑스로 여행을 왔다는 것 자체가 그들의 사회적 배경이 어느 정도 유사함을 입증함으로 나름의 연대가 형성되었다. 영국으로 돌아간 후 이들의 만남은 계속되었다.

18세기 초반부터 그랜드 투어를 하고 온 영국인들 사이에서 딜레탕티의 사회(Society of Dilettanti)라는 모임이 생겼다. 각자의 경험을 나누며 그들만의 사회적 무대가 생겨났다. 물건을 수집한 것이 아니라 같은 경험을 수집한 그들의 공통점을 바탕으로 하나의 커뮤니티가 탄생했다. 그뿐만 아니라 ‘살롱’도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갤러리와 마찬가지로 살롱은 방을 뜻하는 프랑스 단어에서 유래했다. 공간을 의미하는 말이 모임이 되어버린 이유는 이 공간에서 주로 여성을 중심으로 모임이 개최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곳에서 문화·예술이나 사회 전반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어떤 살롱에 불리느냐는 당대 사교계에서 어떠한 위치에 있는가를 대변하는 지표와도 같았다. 경험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모임과 모임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모임은 사회적으로 서로 영향을 주며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공연을 본다’는 행위를 소셜 네트워크 시대에 다시 해석한다면 촬영과 공유가 빠지지 않을 것이다. ©Gian Cescon

하나의 유사성을 기반으로 생기는 모임은 400년이 지난 지금 이 땅 한국에서도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단순히 여행 중 만난 사람들이나 같은 학교나 고향 출신의 사람들을 너머 같은 취향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이고 있다.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적지 않은 돈을 내고 모이는 이들도 있다. 자신의 취미를 공유하기 위해 집으로 몇몇 낯선 이들을 초대하여 시간을 보내는 플랫폼도 생겨났다. 모르는 사람이어도 괜찮다. 나와 같은 취향을 가진 이라면 엄청난 경계의 대상은 아니다. 낯선 이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서 우리는 같은 책을 읽고도 같은 장소를 방문하고도 서로 다른 생각을 품어낸 이들의 기억을 공유한다. 비슷한 옷을 입고 같은 사회에서 살아가는 각자의 시선이 얼마나 다른지 서로의 말을 통해 접할 수 있다. 말을 통해 보이는 생각의 전시장을 만나는 느낌이다.

같은 독서 모임에 참석했던 말이 없는 한 친구가 이야기했다. ‘전 여기 들으러 와요. 나와 다른 생각을 듣는 게 너무 재미있어요.’ 기억을 공유하기 위해 모임에 참석한다는 나의 선입견이 무너졌다. 정말 감상만을 위해 오는 분도 있었다. 각자의 생각을 포장하고 살기 때문에 너무 좋은 것만 보이는 SNS 세상에 지쳐 진짜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는 누군가의 이야기에 많은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서로의 삶을 잘 보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활발한 SNS 세상은 오히려 보고 보이는 세상에 대한 다른 호기심을 낳았다. 그리고 이미지 너머 진정성에 대한 기준과 이슈를 낳았다. 어디까지가 진짜이고 어디까지가 만들어진 이미지일까. 매일 수없이 쏟아지는 이미지와 정보의 세상에서 우리는 진짜를 보는 눈과 철학을 가져야만 진실을 볼 수 있다. ‘무엇을, 어떻게 보는가’라는 질문에 성숙한 답을 찾아 나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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