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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군사정부 시절부터 최근까지 역대 정권의 정보기관은 국내정치 개입 의혹을 샀다. 반정부 인사들에 대한 도‧감청부터 납치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정보기관들은 국내 정치에 개입했다는 의혹에 휩싸인 바 있다.
최초 중앙정보부에서 국가안전기획부를 거쳐 지금의 국가정보원까지 몇 번의 정권교체를 거치면서 국정원의 정치개입 의혹은 끊이지 않았지만 관련 법을 개정하는 등 해당 행위를 막으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새로 출범한 윤석열정부가 국정원의 해외‧대북 정보 업무를 강조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정원이 그간의 의혹에서 벗어나 새롭게 거듭날지 주목된다.
중정에서 안기부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 정치개입 의혹 지속
국정원의 전신(前身)은 5‧16 군사정변 세력들이 중심이 된 국가 최고 통치의결 기구인 국가재건최고회의 직속으로 발족된 중앙정보부였다. 이른바 중정은 한때 37만 명에 이르는 방대한 조직을 이용해 대공업무를 비롯한 각종 범죄수사와 정보업무를 담당했다. 하지만 반정부 인사에 대한 감시‧통제 등에도 중정 요원들이 동원됐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됐다.
대표적으로 중정이 논란의 핵심에 섰던 사건은 바로 김대중 납치사건이다. 1973년 재야 정치인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일본 도쿄의 그랜드팔레스 호텔에서 중정에게 납치당할뻔한 희대의 사건으로 인해 일본 내에서 ‘국권 침해’ 여론이 강하게 일어 한일정기각료회의 연기‧경제협력 중단 등 외교적 마찰로 번지기도 했다.
중정이 이 사건을 일으킨 이유는 김 대중 당시 야권 지도자의 유신 반대 운동 때문이었다. 1972년 선포된 유신 헌법을 피해 일본에 체류하던 김 대중 전 대통령은 미국과 일본을 오고가며 반정부 운동을 벌였고, 재미교포들의 반정부단체인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를 결성해 중정의 목표물이 됐다.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10‧26사건 이후 위상이 추락한 중정은 1981년 제5공화국에서 이름을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로 바꿨다. 이름이 바뀐 후에도 정보기관의 정치개입 의혹은 멈추지 않고 계속됐다. 전두환정부와 노태우정부를 거쳐 문민정부에 와서야 안기부법을 개정해 정치관여죄를 신설하는 등 개혁이 시도됐지만 잡음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대표적 의혹은 ‘북풍사건’이다. 1997년 대선 당시 김대중 후보가 북한에서 자금을 받았다고 폭로한 재미교포 윤홍준 씨 기자회견에 개입한 것 아니냐는 내용이다. 윤 씨는 기자회견에서 “국민회의 인사로부터 (북한) 김정일이 김대중 후보에게 자금을 지원할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안기부의 이모 과장이 조작한 것 아니냐는 의혹에 휩싸였다.
김대중 대통령이 집권 직후인 1999년 1월 안기부는 명칭이 오늘날의 국가정보원(국정원)으로 다시 변경됐다. 김 대통령은 본인이 지난 시절 정보기관의 피해자였다고 주장하며 혁신에 나섰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김대중정부에서도 국정원 정치개입 의혹은 끊이지 않았다.
특히 김대중정부의 국정원장들은 정치개입 혐의로 고초를 겪었다. 2002년 당시 정형근 한나라당(국민의힘) 의원의 폭로로 국정원이 1998년부터 2002년 사이에 야당 정치인과 민간인을 도‧감청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후 2005년 검찰 수사를 거쳐 당시 재직했던 임동원‧신건 국정원장이 국정원의 불법 도‧감청을 묵인한 혐의로 각각 징역 3년과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았다.
이후 출범한 정부들에서도 국정원이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정리한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거나 보수단체 등을 설립한 뒤 국정원 예산을 이용해 지원했다는 등의 정치개입 의혹들이 꾸준히 제기됐다.
文정부 때도 불거진 국정원 정치개입 의혹… 尹, 국정원 쇄신 여부 주목
이후 문재인정부는 가장 적극적으로 국정원 쇄신에 나섰다. 국정원법을 개정해 국내 정보 파트를 직무 범위에서 삭제하고 관련 부서도 해체하는 등 국정원의 정치개입을 막겠다며 전면적인 조직개편에 나섰다. 하지만 의혹을 막을 수는 없었다.
박지원 국정원장은 지난 11일 퇴임하면서 자신의 SNS를 통해 “제가 취임한 2020년 7월29일 이후 650여 일 동안 오직 국가와 국민만 바라보고 열심히 달려왔다”며 “국내 정보 수집 근절과 철저한 정치 거리두기, 완전한 정치 중립을 이뤘다”고 자평했다.
다만 고발사주 의혹과 관련해 이를 제보한 공익 신고자인 조성은 씨가 언론사에 관련 의혹을 제보한 직후 박지원 원장과 식사 자리를 함께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박 원장은 그후 당시 국민의힘 대선주자였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게 ‘잠자는 호랑이 꼬리 밟지 마라’ 등의 발언을 해 대선 정국에 대한 ‘정치 개입’ 논란이 일기도 했다.
국회 정보위원회 국민의힘 간사를 맡았던 하태경 의원은 지난해 9월15일 해당 논란에 대해 국정원을 항의방문해 성명서를 발표했다. 하 의원은 “박 원장이 국정원 60년 정치개입의 흑역사를 청산한 것이 아니라 다시 (정치개입을) 시작했다”면서 “최근 박 원장 발언을 보면 이성을 상실한 수준이다. 민주화 이후 국정원 역사상 대놓고 정치개입 발언을 하는 초유의 사건”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박 원장은 결국 지난해 10월28일 국회 정보위 국정원 국정감사에서 관련 논란에 대해 해명과 사과를 했다. 그는 “‘정치인 박지원은 잊겠다’고 맹세했던 원장으로서 저와 국정원 직원의 정치적 중립 노력이 이렇게 치부되는 것을 마냥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억울하고 괴로웠다”며 “당시 국정원과 직원의 명예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앞서 결과적으로 논란이 됐다”고 해명했다.
박원장은 이어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앞으로 유념하겠다. 정보위원 여러분의 많은 이해와 지도편달을 부탁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하태경 의원은 고발사주 관련 질문에 대해서는 박원장이 답변을 거부했다고 지적했다. 하 의원은 “고발사주 의혹 제보자인 조 씨의 발언이나 그의 페이스북 (게시물) 등에 대해 박 원장에게 사실관계를 질의했다”며 “(박 원장이) 답변 거부를 넘어서 질의를 방해하는 수준으로 강하게 반발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새 정부 초대 국정원장으로 김규현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을 지명했다. 김 전 비서관은 외교부 북미1과장, 북미국 심의관, 주미 한국대사관 참사와 공사 등을 지낸 미국통으로 꼽힌다. 통상 대통령 ‘복심’이나 국정원 출신 인사가 원장에 지명되던 관례를 깬 이번 인사를 두고 윤 대통령이 국정원의 국내 정치 개입을 막고 국정원을 해외‧대북 정보 업무에 집중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윤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는 최근 “윤석열 (당시) 당선인이 참모들에게 ‘내가 아예 모르는 사람이라도 좋으니 안보 업무를 해 본, 실력이 입증된 인사를 찾으라’고 주문했다”며 “여기에 더해 최근 추가 인선 기준으로 ‘국제 안보 질서를 꿰뚫어 볼 줄 아는 중량감 있는 사람’을 언급했다”고 귀띔했다.
새로운 윤석열정부에서는 새로운 안보수장으로 김규현 전 국가안보실 2차장을 발탁해 눈길을 끈다. 윤석열 정부의 첫 국가정보원장 후보자로 지명된 김규현 후보자가 역대 국정원장과는 다른 국제적 안목으로 해외‧대북 정보 업무에 주력해나갈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특히 각종 정치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규현 원장 체제의 국정원이 앞으로 자유로울수 있을지 대내외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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