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문턱이 낮아지면서 관람객들도 대폭 젊어졌다. 유행을 좇아 소문난 음식점·카페 등을 찾아가 자신의 SNS에 올리곤 하는 MZ세대들이 최근 미술작품쪽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다만 유명한 작가 전시회를 찾아가기 보다는, 대체 불가능한 토큰(NFT)·가상현실(VR) 등 새로운 기법으로 작품을 만들어내는 신진작가들의 아트를 선호하고 구매도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변화의 흐름에 미술계도 달라지고 있다. 젊은 세대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유망 작가들을 발굴해 협업을 통해 대중에게 널리 알리고 있다. 이처럼 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젊어진 미술문화를 집중 조망해 봤다.
젊어진 미술관, 신진작가 발굴과 NFT를 구매하는 시대
NFT(대체불가능한 토큰) 시장이 뜨겁다. 대체불가능한 토큰이란 희소성을 갖는 디지털 자산을 대표하는 토큰을 말한다. NFT는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지만, 기존의 가상자산과 달리 디지털 자산에 별도의 고유한 인식 값을 부여하고 있어 상호교환이 불가능하다는 특징을 안고 있다.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NFT는 소유권과 판매 이력 등 관련 정보가 모두 블록체인에 저장되어 최초 발행자를 언제든 확인할 수 있어 위조를 할 수 없다.
NFT가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때는 2021년 3월부터다. 디지털 예술가 비플이 10초 분량으로 제작된 비디오클럽을 74억원에 판매했고,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 경영자의 부인이자 가수인 그라임스는 NFT 작품으로 65억원을 벌어들였다. 이후 크리스티 미술품 경매 시장에서 비플이 만든 디지털 작품이 786억원에 낙찰되는 이변을 낳았고, 이는 생존 작가의 작품 중 최고가 낙찰이라는 대기록으로 이어졌다.
비플은 전통적인 미술계에 큰 충격파를 던졌다. ‘족보’도 없는 작가가 이색적인 기법으로 진기록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비플의 본명은 마이크 윈켈만(40)으로 14년 전부터 매일 새로운 디지털 작품들을 그려왔다. 컴퓨터 공학도 출신 웹디자이너인 그는 미술에 관한 정규교육을 따로 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완성한 작품은 무려 5000점이 넘는다.
비플은 ‘첨단 기술시대 저항문화’를 테마로 시네마 4D와 같은 모델링·비주얼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가상세계의 이미지를 주로 작업해왔다. 그는 NFT로 작품을 팔기 전 그림을 인쇄해 개당 100달러 이하에 팔기도 했지만, 꾸준한 노력과 대중과의 소통으로 유명해져 큰 성공을 거뒀다. 현재는 스페이스X, 애플, 루이비통 등 글로벌 브랜드와도 협업하고 콘서트 디자인도 참여할 만큼 미술계를 대표하는 스타작가로 거듭났다.
미국에서 시작된 NFT 문화는 발빠른 MZ세대에게 신선한 문화로 받아들여졌다. 대표적 블록체인 플랫폼인 ‘오픈씨’에서 수많은 작품들이 전시되고 활발한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이같은 흐름에 힘입어 NFT·픽셀(주소화 될 수 있는 화면의 가장 작은 단위)·가상현실 등 디지털 기법으로 새로운 도전에 나선 신진작가들이 줄줄이 등장하고 있다. 이에 발맞춰 미술계도 새로운 얼굴을 발굴하기 위해 분주하기만 하다.
전 ‘일민미술관’ 현 갤러리 ‘휘슬’ 큐레이터로 활동 중인 김수현 씨는 최근 미술시장 트렌드에 큰 변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20~30대 젊은 세대에서는 NFT 등장과 리셀 문화(한정판 제품 등 인기 있는 상품을 구매한 뒤 비싸게 되파는 행위)가 큰 영향을 주었다”며 “이처럼 빠르게 구입하고 수익을 얻는 구조가 새로운 예술문화로 넘어왔는데, 일반 대중이 미술문화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새로운 미술문화가 요구하는 신진작가의 발굴도 더 중요해졌다. 김 큐레이터는 “알려지지 않는 작가의 발굴은 전시 공간 운영 중인 관계자들에게는 늘 큰 숙제다. 대중에게 사랑받고 있는 작가들을 꾸준히 발굴해 접촉하려고 노력 중이다”며 “현재 함께 전시 중인 람한 작가도 NFT·픽셀·가상현실 등 기발한 기법으로 작품 세계를 그려내 SNS 8만 팔로워를 보유한 신진작가”라고 설명했다.
새로운 미술품 존재형식 요구하는 디지털 환경
신진작가들은 대체 불가능한 토큰·픽셀·가상현실 작업 기술들로 동시대 예술의 지형도를 뒤흔들고 있다. 예술의 가치라는 측면에서 우려 섞인 시선도 있지만, 디지털 환경을 작업의 바탕으로 사용하는 예술가들에게는 미술품 존재 형식의 새로운 시도라는 점과 디지털 작품에 원본성을 부여했다는 점에서 기대하는 바가 크다.
람한 작가는 대중에게 사랑받고 있는 대표적인 신진작가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다가 2017년부터 국내 미술계에 등장해 새로운 작업 기법으로 MZ세대의 마음을 훔쳤다. 그는 일명 JRPG게임, 아니메(일본 만화영화) 세계관 아래 성장했으며, NFT을 비롯해 콘솔·오픈월드 게임, AR, AI 제너레이티드 아트를 바탕으로 만든 작품으로 젊은 세대에게 각광받고 있다.
특히 람한 작가의 작품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세대들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이 크다. 그는 “보이는 대로 느끼면 되는 친절한 작업이 MZ세대와 공감대를 형성한 것 같다. 작품의 색채나 형태는 익숙함을 자아낼 수 있다”며 “동세대가 봤던 영화나 소설, 게임 등 미디어에서 발견한 익숙한 이미지가 그들과 소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이다. 지금처럼 추억을 통한 드로잉을 이어나갈 생각이다”라고 설명했다.
귀국 후 그는 유명 브랜드 설치예술·포스터 작업에 참여하며 굵직한 커리어를 쌓았다. 현재는 페인팅과 설치를 기반으로 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13일부터 일주일간 전시회를 열 계획이다.
강문 작가는 다음 작업에선 NFT 기법을 활용하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그는 “다양한 미디어로 내 안에 담긴 것들을 구현해내고 싶다. 평소 NFT에 관심이 컸다”며 “블록체인은 한정된 수량을 찍어내고 그 작품을 다양한 사람들이 소유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더불어 주식처럼 점점 가치가 오른다는 점도 큰 강점”이라며 큰 기대를 드러냈다.
그림 소장 유행… MZ가 작품을 구매하는 이유
새롭게 접하는 디지털 예술문화 속에서 NFT 작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들도 늘어났다. IT 업계에 종사하는 회사원 박선형 씨(43)는 최근 NFT 토큰을 발행해 작품을 거래하는 플랫폼인 오픈씨에서 그림 세 점을 구매해 소장했다.
박 씨는 “미술관에 가지 않아도 집에서 클릭 몇 번만으로 작품을 살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라며 “유명한 NFT 작품의 경우 시세가 많이 오를 수 있어 재테크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고 관심의 이유를 설명했다.
다만, NFT의 장점이 단점으로 변질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귀담아 들을만 하다. 박씨는 “가격의 급등락이 엄청나기 때문에 잘못 사면 가치가 많이 하락해서 손해를 볼 수 있다”라며 “학습이 필요하다. 어떤 작품이 유망한 그림인지 잘 알아야 해서 진입장벽이 높기 때문에 다방면으로 공부를 해야 한다. 이를 위해 메타마스크, 코인지갑, 민팅, 화이트 리스트, 에어드랍 등 초보자 입장에서는 어려운 개념을 익혀야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출판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김화정 씨(37)는 평소 그림에 관심이 많다. 인기 아이돌처럼 미술품 컬렉터가 되고 싶었지만 경제적 사정상 여의치 않았는데, NFT 시장이 열려 마음에 드는 여러 작품을 소액으로 구매했다.
김 씨는 “미술품 하나쯤은 소장하고 싶다는 MZ세대의 욕망과 맞아 떨어진 것 같다. 그림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며 “작품 구매는 본인의 개성·취향을 드러내는 동시에 문화적 후원 성향을 띠는 재테크 역할도 하고 있어 인기가 많을 것 같다. 신진작가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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