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태종에게 무릎 꿇었던 김춘추 신라 왕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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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헌식의 대고구리

당 태종, 요동 정벌하러 갔다가 안시성서 패해 눈알 잃어
김춘추는 진덕여왕의 뒤를 이어 신라에서 왕으로 추대

성헌식 필진페이지 + 입력 2022-06-14 09:15:26

648년 당 태종으로부터 병력 지원을 약속받은 김춘추는 신라 관리들의 복식을 당나라 제도를 따르고 싶다면서 이를 허락해 줄 것을 청하니 태종은 내전에서 값진 옷을 꺼내 주며 김춘추에게 특진(特進) 관작을 내렸고 아들 문왕을 좌무위장군(左武衛將軍)으로 삼는다는 조서를 내렸다. 아예 당나라의 제후국이 되겠다고 자청했던 것이다.

당 태종이 선뜻 병력 지원을 허락한 이유는 불과 3년 전인 645년에 요동을 정벌하러 고구리로 들어갔다가 안시성에서 패해 눈알을 잃는 수모를 겪은 데다가 퇴로 없는 200리 요택에 빠졌다가 간신히 살아 돌아온 기억이 생생하여 복수를 염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나라 자체의 힘만으로 고구리를 정벌하기는 불가능했기에 같은 삼한의 하나인 신라와 함께 백제를 먼저 정벌하고 나서 훗날 요동 정벌의 기회가 오면 신라를 배후 협공용으로 이용하려고 했던 것이다.

김춘추가 돌아가겠다 하니 당 태종은 3품 이상의 관리들에게 모두 송별연에 참석하라고 명했으니 그 대접이 얼마나 극진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 자리에서 김춘추가 “제게 일곱 아들이 있사오니 원하옵건대 폐하 곁을 시위(侍衛)토록 하게 하여 주시옵소서”라고 아뢰니 당 태종은 김춘추의 두 아들에게 숙위(宿衛)할 것을 명했다.

김춘추 일행은 귀국길에 바다 위에서 고구리 순찰병을 만났다. 춘추를 수행하던 온군해가 높은 관직의 모자를 쓰고 귀족 옷을 입고 배 위에 앉아 있었더니, 순찰병이 그를 춘추로 여겨 잡아 죽였다. 김춘추는 작은 배로 갈아 타고 신라에 당도하니 왕이 이 이야기를 듣고 슬퍼하며 온군해를 대아찬으로 추증하고 그 자손에게 후한 상을 하사했다고 한다.

▲ 당태종의 사인은 안시성 전투에서의 눈 부상 때문이었다. [SBS 드라마 연개소문]

이듬해(649년) 봄 정월에 신라에서 처음으로 당나라 의관을 착용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은 5월24일, 김춘추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병력 지원을 약속했던 당 태종 이세민이 죽고 이어 아들 고종 이치가 즉위했는데, 태종의 유조로 요동의 전역(戰役)이 모두 취소되었다. 김춘추는 무척 난감해 하며 노심초사했으리라.

8월에 백제군이 쳐들어와 김유신 등이 맞섰으나 이기지 못하다가 적을 속이는 계책을 써서 장수 100명과 1만명에 가까운 백제군을 참수하고 군마를 노획하는 전과를 올렸다.

650년 6월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백제군을 대파한 사실을 알렸다. 진덕여왕이 비단에 오언시인 태평송(太平頌)을 직접 수 놓아 김춘추의 아들 법민(法敏)을 보내 당 고종에게 바쳤고, 자체 연호를 태화(太和)로 고친지 불과 3년 만에 당 고종의 연호인 영휘(永徽)를 사용했다.

이렇듯 김춘추는 대야성에서 죽어간 딸의 복수를 위해 백제를 칠 병력을 당나라로부터 빌리고자 자주국에서 이민족의 속국이 되는 길을 자청했다. 김춘추가 고구리를 방문했을 때 연개소문이 찾아와 동족인 삼국이 연합해 같이 이민족인 당나라를 도모하자는 제안을 거절했던 장본인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