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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수의 전지적 시점]

色의 바다에 빠져 보시렵니까

박혜수 필진페이지 + 입력 2022-07-05 09:40:07

“모든 예술은 에로틱하다.”

건축가 아돌프 로스의 책 '장식과 죄악' 첫머리에 나오는 이 구절은 예술에 내재된 에로티시즘의 미학적 의미를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었다.

이 말은 화가 구스타브 클림트로 대표되는 빈 분리파의 세기말적 퇴폐주의를 겨냥한 일종의 야유였다. 빈 분리파란 19세기 말 오스트리아 빈을 중심으로 전통적인 미술에 대항해 아르누보 계열의 장식적이고 관능적인 이미지와 찬란하고 화려한 색채를 구현한 화가들을 일컫는다. 그 중심에 구스타브 클림트가 있었다.

아돌프 로스는 모든 장식적이고 화려한 것을 혐오하고 극도의 실용주의를 지향하는 건축가였다. 그는 빈 분리파의 예술을 ‘불결한 에로티시즘’이라 규정했고 이 말에 대한 답으로 클림트는 생식기가 드러난 나체의 자화상을 그렸다.

사이먼 커티스 감독의 ‘우먼 인 골드(Woman in Gold, 2015)’라는 영화에도 클림트의 그림이 등장한다. 제65회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초청작으로 상영된 이 영화는 클림트가 그린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화를 둘러싼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실제로 나치에 의해 퇴폐예술로 낙인찍혀 강탈당한 것을 세월이 흐른 후 우여곡절 끝에 그림의 법적 소유자인 아델레의 조카가 되찾아오는 이야기를 그려 냈다. 영화에 등장하는 초상화의 주인공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는 클림트의 수많은 모델 중 하나, 클림트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세 명의 여자 중 하나였다.

평생 독신으로 지낸 클림트는 자신의 모델들과 수시로 육체관계를 맺었고 그중 미치 짐머만과는 12년을 함께 지내며 아들을 둘이나 낳았다. 모델들은 클림트를 위해 외설적인 포즈도 마다하지 않고 취해 주었는데 직업 모델이 아닌 나이 많고 부유한 남자의 아내였던 아델레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은 물론 한쪽 가슴을 드러낸 ‘유디트 I'의 모델도 아델레였다.

호색한이자 여자들이 많이 따르는 남자였던 클림트는 사실은 아주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였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좋아하지 않아서 만년에는 거의 작업실에 틀어박혀 그림만 그렸다고 한다. 주머니에는 늘 단테나 괴테의 문고판 책을 넣고 다녔고 슈베르트의 음악을 열렬히 좋아해서 평생을 외롭고 가난하게 지낸 슈베르트를 위해 고급스럽게 장식된 화려한 방에서 아름다운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는 ‘피아노 앞의 슈베르트’를 그렸다.

▲ 구스타브 클림트(왼쪽)와 평생의 연인이었던 에밀리 플뢰게. [필자 제공]

클림트는 앙리 마티스와 함께 고양이를 좋아한 화가로도 유명하다. 작업실에는 늘 7~8마리의 고양이가 함께 살았는데 고양이들이 마구 돌아다니며 종이를 찢거나 그림을 망가뜨려도 개의치 않았다고 한다.

그런 그가 평생을 바쳐 사랑한 단 한 사람은 의상 디자이너인 에밀리 플뢰게였다. 자유분방한 바람둥이였던 클림트가 에밀리 플뢰게에 대해서만은 끝까지 플라토닉한 사랑을 지켰고 임종의 순간에도 에밀리 플뢰게를 찾았다고 한다.

‘키스’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클림트의 대표작 ‘연인(원제)’은 입을 꼭 다문 채 살짝 고개를 돌린 에밀리 플뢰게를 안고 입 맞추려 애쓰는 자신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툭하면 여자들과 엽색행각을 벌이는 클림트의 행실에 화를 내고 가 버렸던 에밀리 플뢰게는 이 그림을 보고 마음을 돌려 돌아왔다고 한다.

세기 말 세련된 쾌락주의자들로 이루어진 빈 분리파의 핵심 구성원 중 한 명이었던 클림트는 아르누보와 에로티시즘이 혼합된 몽환적 분위기의 수많은 작품을 만들어 낸다.

일반적으로 그의 그림은 초상화를 중심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정말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것은 풍경화 작품들이다. 무슨 색을 쓰든 그의 그림 속 색채에는 금빛이 묻어 있고 그 금빛이 찬란한 느낌으로 투명하게 빛난다.

그는 풍경화를 그릴 때는 화면을 가득 채우는 사각형의 구도를 즐겨 사용했다. “이 구도는 사물에 평화로운 기운을 깃들게 한다. 사각형의 구도를 통해 내 그림은 우주의 일부가 된다. (구스타브 클림트)”

현대에도 클림트의 금빛을 재현해 내는 예술가가 있다. 패션계에서 가장 서정적인 디자이너, 우아한 젠틀맨으로 불리는 드리스 반 노튼이다. 벨기에 왕립미술학교 출신인 그는 옷감의 재단보다는 색채에 좀 더 집중한다. 화가가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듯 그는 금빛이 도는 찬란한 색감과 강렬한 패턴으로 클림트의 풍경화와도 같은 옷을 만든다.

일반적으로 그의 디자인은 영국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림에 비유되기도 한다. 하지만 정교한 자수와 프린트, 시퀸·자카드·벨벳 등의 소재가 만들어 내는 화려하고도 대담한 아르누보적 분위기는 클림트의 풍경화에 좀 더 가깝다.

5월 초에 서울숲 갤러리아포레에서 창작 뮤지컬 ‘클림트 : 그 영혼의 시간 속으로’가 막을 올려 공연 중이다. 이달 17일까지 공연하고 뮤지컬과 함께 클림트의 그림들까지 감상할 수 있다 하니 드리스 반 노튼의 옷을 입고 집을 나서 클림트와 함께 색의 바다에 빠져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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