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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하는 건 지금 이 자리를 나가는 거, 그리고 다시는 사적인 일로 엮이지 않는 거야.”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가던 선우가 다시 돌아섰다.
“공천 축하해. 하지만 이렇게 비겁하게 군다면 닥터 로건이 먼저 기자들 만나게 할 수밖에 없어. 그런 거 하지 말자.”
선우는 밖으로 나왔다. 결혼생활 7년을 통틀어 상훈과 마음 상하는 말을 주고받은 적은 없었다.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아는 두 사람이 서로 감정 섞을 일은 안 만들었던 것이다.
만일 상훈이 먼저 양해를 구했더라면 선우는 마지못해 그 요구에 응했을지도 모른다. 선우는 상훈에게 빚이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명환이 세상을 떠나기까지 6개월 동안, 바로 옆에서 마지막 마무리를 도왔던 사람이 바로 상훈이었다.
선우야…. 물조차 제대로 넘기지 못하고 링거에만 의존해 있던 명환이 갑자기 선우를 찾았다. 미술관…. 너무 애쓰지 말고…. 너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아…. 잘 떠지지 않는 무거운 눈꺼풀을 밀어 올리려 이맛살을 잔뜩 찌푸린 채 겨우 명환이 말했다.
아니야, 내가 좋아서 하는 거야, 아빠. 선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니 그림 그려, 나는 니가 편하게 살면 좋겠다. 명환이 선우의 손을 꼭 잡았다. 명환의 손이 맞나 싶을 만큼 강하게 느껴지는 힘이 선우에게로 전해왔다.
그리고, 상훈이…. 적으로 만들지 마. 살면서…. 누구하고도 원한 맺지 마…. 너는 귀한 사람이야. 모두 귀하게 너를… 귀하게… 여길 수 있도록… 선우를 잡고 있던 명환의 손이 스르르 풀어졌었다.
선우는 힘없이 풀려나는 명환의 손을 놓고 침대 아래로 쓰러졌다. 가장 먼저 뛰어들어 오열하는 선우를 안고 간호사를 부른 사람도 바로 상훈이었다. 그날을 떠올리니 자신도 모르게 가슴 속 둑이 무너져 파도가 쓸려오는 느낌이 들었다.
“닥터 로건이 과연 뭔가를 해주긴 할까? 그러기에 뉴욕은 먼 곳이지. 그리고 그가 당신 편이 돼 줄 거란 보장도 없어.”
어느새 상훈이 선우 옆을 걷고 있었다. 선우가 상훈을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해.”
상훈이 걸음을 멈추었다. 내 말대로 하겠다고? 정말? 물음에 선우는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선거 다음 날 서류 정리랑 이사 하도록 할 게. 변호사 시켜 조치해 줘.”
상훈이 자신의 차로 끌었지만 선우는 뿌리치고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그날, 명환의 침대 아래 자신을 일으켜 주던 사람이 진욱이길 바랐었다. 그가 아니고선 아무도 선우에게 위로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명환의 장례식장에서 만난 건 국회의원 이진욱이라고 쓰인 커다란 조화뿐이었다.
“은선우….”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번쩍 정신이 들었다. 오후에 미술관에 미팅이 잡혀 있었다. 택시 정류장을 향해 돌아서는데 어떤 남자가 앞에 서 있었다. 선우 맞구나. 익숙한 목소리, 숨이 턱 멎는 순간이었다.
[글: 이경희 / 그림: 도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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