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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눌지왕 시기를 대표하는 인물은 단연코 박제상이다. 박제상은 눌지왕의 요청에 의해 고구려와 왜로 직접 건너가 볼모로 가있던 눌지왕의 동생 복호(보해)와 미사흔(미해)을 각각 탈출시켜 귀국시킨다. 박제상 이야기는 ‘삼국사기’ <열전>과 ‘삼국유사’ <기이>편에 자세히 실려 있다. 다만 두 기록의 포커싱(focusing)은 다소 차이가 난다. ‘삼국사기’는 눌지왕에게 고통을 준 실성왕의 부도덕과 이를 해결한 외교관으로서의 제상의 충성스런 모습을 담고 있는 반면, ‘삼국유사’는 육신을 희생하며 충절을 지킨 제상과 그 희생을 갸륵하게 여긴 눌지왕의 품격을 담고 있다.
제상의 성씨는?
그런데 제상의 성씨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이 다르다. ‘삼국사기’는 박(朴)씨로 적는다. <열전> 박제상 편이다. ‘박제상[혹은 모말(毛末)이라고도 한다]은 시조 혁거세의 후손이요, 파사이사금의 5세손이다. 할아버지는 아도(阿道) 갈문왕이며, 아버지는 파진찬 물품(勿品)이다(朴堤上[或云毛末] 始祖赫居世之後 婆娑尼師今五世孫 祖阿道葛文王 父勿品波珍飡).’ 제상은 아도-물품 계열의 박씨이다. 이에 반해 ‘삼국유사’는 김(金)씨로 적는다. <기이> 내물왕 김제상 편에 나온다. 다만 ‘삼국유사’는 제상이 왜 김씨인지는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지 않다.
일반적인 해석은 ‘삼국사기’는 제상의 아버지 성씨를, ‘삼국유사’ 는 제상의 어머니 성씨를 따랐다고 본다. 제상의 어머니의 경우 신라왕실 족보인 ‘상장돈장’(남당필사본)에 나온다. 제상의 어머니는 이찬 급리(急利)의 딸 지황(志皇)이다. 급리는 석씨왕조 후반기인 흘해왕 시기에 정사와 내외병마사를 겸하며 막강한 실세관료정권을 출발시키며 김씨왕조 내물왕 즉위의 토대를 마련한 인물이다. 급리는 내물왕 계열과 같은 선비계 김씨(모씨)이다. 제상의 또 다른 이름은 모말(毛末)이다. ‘일본서기’<신공왕후기>는 모마리질지(毛麻利叱智)로 쓴다.(※ 질지는 경칭). 모말과 모마리는 같다. 모마리는 ‘모=못=堤’와 ‘마리=머리=上’이다. ‘堤上’은 한자를 훈차한 이름이다. 또한 모말의 모(毛)는 선비계 김씨의 본래 성씨인 모(慕/牟)와 음이 같다.
제상의 성씨 변화를 보면 이렇다. 본래 제상의 성씨는 박씨이다. 박(朴)+마리(말)이다. 그러나 복호와 미사흔을 탈출시킨 공로로 사후 모씨 성을 하사받아 모(毛)+마리(말)가 된다. 이후 모씨가 김씨로 재조정되며 모마리는 한자를 훈차한 제상(堤上)이 된다. ‘삼국유사’ 는 조정된 성씨 김씨를 따르고, ‘삼국사기’는 본래의 성씨 박씨를 따른다.
복호와 미사흔의 탈출 사건
제상이 복호와 미사흔 탈출시킨 사건은 ‘삼국사기’, ‘삼국유사’ 에 자세히 실려 있다. ‘신라사초’는 이를 압축해 기록하고 있다.
복호 탈출은 서기 418년 7월에 이루어졌다. <눌지천왕기>이다. ‘2년(418년) 황마 무오 7월, 보해(복호)가 돌아왔다. 이에 앞서 거련(장수왕)은 이미 귀국을 허락했으나 참언을 듣고 다시 추격했다. 이에 변복을 하고 도망쳐 나와 달이홀(강원 고성) 수구에 이르렀는데 추격하는 자가 제상에게서 금을 받고 빈 화살로 쏘아 맞지 않았다. 마침내 아슬라(강원 강릉)로 들어와 바다에 배를 띄워 돌아왔다. 왕은 교외로 나가 맞이하고 태후를 뵙게 했다. 큰 잔치를 열어 공로를 포상했다(二年 黃馬 戊午 七月 宝海還 先是巨連旣許歸而聞讒言復追之 乃變服逃出 至達已忽水口 追者受堤上金以空矢射之不中 乃入阿瑟羅浮海而歸 王迎于郊外而入見太后 大宴賞功).’
미사흔 탈출은 419년 5월에 이루어진다. <눌지천왕기>이다. ‘3년(419년) 토양 기미 5월, 왕의 동생 미해(미사흔)가 땟목을 타고 도망쳐 돌아왔다. 왕이 교외에 나가 맞이하고 우식가(憂息歌)를 지어 즐겁게 했다(三年 土羊 己未 五月 王弟美海浮槎逃歸 王出迎郊外作憂息歌以娛之).’
하지만 제상은 신라로 돌아오지 못하고 421년 3월에 왜국에서 사망한다. <눌지천왕기>이다. ‘6년(422년) 수구 임술 3월, 금관 사신이 래조해 토산물을 바치며 제상이 목도(木島)에서 불타죽었다고 알렸다. 애초에 보미가 제상의 목숨을 구해 목도에 유배됐다. 야인이 미색과 금은보화로 그 마음을 기쁘게 하였으나 제상은 충심이 변하지 않았다. 불에 타 죽음에 이르렀는데도 계림의 신하를 칭할 뿐 야왕에게는 신하라 칭하지 않았다. 야인이 그 뼈를 바다위에 내던져 뼈가 모두 서쪽으로 흘러가 없어졌다. 왕은 그 소식을 듣고 크게 놀라 국중에 발상하고 해상에 초혼해 사당을 세웠다(六年 水狗 壬戌 三月 金官使來獻土物報堤上被燒于木島 初宝美救堤上而流木島 野人以美色金寶悅其心 堤上不變忠心 至被燒殺而口稱鷄林之臣 不稱臣於野王 野人投其骨於海上 骨皆西流而盡 王聞之大驚爲之發喪國中 招魂于海上而立祠)’.
목도(木島)는 대마도이다. 불타 죽은 장소는 ‘일본서기’가 사우미(鋤海) 미나토(水門)로 기록한 지금의 대마도 북단 사고(佐護)의 방파제이다. 특히 기록은 왜왕이 제상을 죽이지 않고 목도에 유배시키는 데 보미(宝美)의 역할이 있음을 전하고 있다. 보미는 미사흔과 혼인한 왜 인덕왕의 딸이다.
제상은 충절(忠節)을 지킨 신하의 표상이다. 조선 세종은 ‘신라 천년에 으뜸가는 충신’으로 평가하고, 정조는 ‘도덕은 천추에 높고 정충(貞忠)은 만세에 걸친다’고 극찬한다.
순절한 제상의 부인 치술
제상의 부인은 치술(鵄述)이다. 치술은 실성왕의 딸로 혼인해 청아, 자아, 녹아, 홍아 등 딸만 넷을 낳는다. <눌지천왕기>이다. ‘6년(422년) 수구 임술 4월, 치술궁은 청아, 자아, 녹아 등 세 딸과 함께 해발령에 올라 동쪽의 목도를 향해 통곡하다가 기가 다해 홍했다. 왕이 이를 슬프고 가슴 아파해 상궁(上宮)의 예로 장사지내고 봉우리 정상에 사당을 세워 치술신모사(鵄述神母祠)라 했다(六年 水狗 壬戌 四月 鵄述宮與靑紫綠三女登海發岺 東向木島痛哭氣盡而薨 王哀傷之以上宮禮葬之 立其祠于岺上 曰鵄述神母祠).’ 치술은 제상이 목도에서 불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해발령(‘삼국유사’ 치술령)에 올라 제상을 그리워하며 사망했다. 눌지왕은 상궁의 예로 장사지내며 신모(神母)로 받들고 사당을 세우기도 했다. 적어도 신라사회는 충절을 지킨 남편 제상 못지않게 치술부인의 순절(殉節)도 높게 평가한 것이다.
제상은 충절, 치술은 순절의 표상이다. 부창부수(夫唱婦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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