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권력 서열 3위인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대만 방문 직후 1박 2일 일정으로 방한해 4일 국회를 방문한데 이어 북한 접경지대인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직접 살펴봤다. 펠로시 하원의장의 이번 방한은 안보와 경제 협력에 방점이 찍혔다.
한미 양국 의회는 양국 동맹 70주년을 맞아 기념 결의안 채택을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첫 여름휴가를 이유로 펠로시 의장과 만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으나,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이날 오후 펠로시 의장과 전화 통화로 접견을 대신했다.
4일 정치권에 따르면 전날 오후 9시쯤 경기 오산 공군기지를 통해 입국한 펠로시 의장은 서울 용산의 한 호텔에서 휴식을 취했다. 펠로시 의장은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남중국해 항로를 피해 통상 비행하는 동중국해를 거쳐 방한했다.
펠로시 의장이 미 ·중 갈등의 뇌관으로 불리는 대만을 방문하자 중국이 실제로 군사적 대응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가 증폭되기도 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인민해방군의 영향력이 미치는 남중국해 상공을 피해 인도네시아·필리핀 영공을 거쳐 대만에 들어간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펠로시 의장은 이날 오전 국회를 찾아 김진표 국회의장과 약 50분간 회담했다. 정부는 펠로시 의장이 의회를 대표하는 인사인 만큼 카운터파트인 김 의장과 만나는 게 맞는다는 입장이다. 두 의장은 회담 결과를 공동 발표하고 오찬을 함께 했으며, 이 자리에는 여야 원내대표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의원들도 참석했다.
회담 이후 공동언론발표문에서 한미 양국 국회의장은 “강력하고 확장된 대북 억지력을 바탕으로 국제 협력 및 외교적 대화를 통해 실질적인 비핵화와 평화 정착을 이루기 위한 양국 정부의 노력을 지원해 나가기로 했다”며 “(한미) 양측은 북한의 위협 수위가 높아가는 엄중한 상황에 우려를 표했다”고 밝혔다.
펠로시 의장은 이날 안보를 비롯해 경제와 거버넌스는 물론 문화적인 부문에서도 양국의 굳건한 관계를 앞으로도 이어나가자고 제안했다. 일각에서는 미중 갈등의 뇌관인 대만을 방문한 직후의 방한인 만큼 반도체 동맹 강화를 통해 우회적으로 ‘대중 압박’을 가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펠로시 의장은 “이번 주요 순방 목적 중 하나가 안보”라며 “한반도 비핵화 문제, 경제적인 성장 문제 등 에 대한 방안을 논의하고 경제 위기문제, 코로나 문제, 이외 여러 중요한 현안을 논의하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김진표 의장은 이에 대해 “오늘 우리는 한미 동맹이 군사안보, 경제, 기술 동맹으로 확대되고 있다는데 주목하면서 포괄적인 글로벌 동맹으로의 발전을 의회 차원에서 강력하게 뒷받침하기 위한 협력 방안에 대해 진지한 협의를 가졌다”며 “협의 결과, 양측은 내년이 한미 동맹 70주년임을 상기하고 동맹 발전에 대한 양국 국민들의 기대를 담아 동맹 70주년 기념 결의안 채택을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고 강조했다.
김 의장은 “실질 협력과 관련해 우리측은 미 의회가 작년 말 ‘인프라법’에 이어 지난 달에는 ‘반도체 및 과학 지원법’을 통과시킨 점을 높이 평가하고, 미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에 대한 실질적인 혜택으로 이어지도록 미 의회 차원의 협조를 당부했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은 4일 오후 2시30분부터 약 40분에 걸쳐서 펠로시 의장과 배석한 하원의 의원 5명 그리고 골드버그 주한 미국 대사와 1+6 형식의 전화회담을 가졌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의 관련 브리핑에 따르면, 이 자리에서 양측은 외교·국방·기술협력·청년·여성 그리고 기후변화 등 다양한 이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한편 유승민 전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전날 윤 대통령 내외가 대학로 연극 공연을 관람한 사실을 언급하며 “대학로 연극 뒤풀이까지 하면서 미 의회의 대표를 만나지 않는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라며 “미국은 대통령제 국가이지만, 외교·안보는 의회가 초당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나라”라고 강조했다.
비판의 수위가 높아지자 대통령실은 “펠로시의 대만 방문과 관련해 우리 정부는 대화와 협력을 통한 역내 평화와 안정이 중요하다는 기조하에서 역내 관련 당사국들과 제반 현안에 관해 긴밀한 소통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또한 윤 대통령이 펠로시 의장을 만나지 않기로 한 것과 관련해 “중국의 압박도 없었고, 미국 측에 ‘하계 휴가’라는 점을 양해를 구했고, 미국도 충분히 이해했다”고 설명했다.
중국의 반발이 예상됨에도 윤 대통령과 펠로시 의장의 전화통화가 성사된 배경에는 한미동맹이라는 상징성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날 “펠로시 의장의 무게감을 고려할 때 휴가를 이유로 대면 인사조차 하지 않는다면 향후 윤 대통령이 미측 고위 인사를 만날 때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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