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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오셨습니다. 친구분이라고 합니다.”
국립미술관 초청 작품 선별 문제로 회의가 길어져 잠깐 숨 돌리러 나오니 문 앞에 양 실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친구 분이 뭔가 급하신 눈치라서 아무래도 친구 분 먼저 만나셔야 할 것 같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친구가 왔다고 회의실 앞에 기다리고 있을 양 실장이 아니었다. 제가 대신 회의 들어가겠습니다. 양 실장은 선우 답을 듣지도 않고 바로 회의실 문을 열었다.
나소선 작품을 전시하고 싶다는 국립미술관 제의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프랑스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한 ‘초대’가 다시 언론에 오르내리면서 소선의 그림을 전시하고 싶다는 국립미술관 제의가 부쩍 잦아졌다.
선우는 양 실장에게 나머지 회의를 맡기고 대표실을 향했다.
“너무 놀라서 바로 여기로 왔어. 우리, 얼굴 보고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아서.”
나정이었다. 수빈은 전혀 연락이 닿지 않아 나정에게 문자를 남겼던 게 바로 전날이었다.
“수빈이랑 해원이 사고 난 후로 나정이 너랑 연락이 잘 안 돼서 궁금하기도 하고 또 해원이 문제도 좀 이상하게 돼서 문자 남겼어.”
“사실은…. 아니야, 선우야, 니가 먼저 말해.”
나정은 선우 말을 끊으며 끼어들더니 멈추고는 뭔가 골똘히 생각하더니 이윽고 다시 말을 시작했다.
“선우야. 사실은 내가 수빈이랑 해원이에 대해서 뭔가를 알고 있는 것 같아.”
수빈이랑 해원이에 대해 알고 있어, 도 아니고 알고 있는 것 같아, 라는 자신 없는 어투로 나정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래전이야. 정확하게는 기억이 안 나지만 대학 3학년 초였나? 2학년 말이었나? 수빈이 갑자기 전화를 해서는 자기를 따라 산부인과를 가 달라는 거야.”
수빈과 버스 정류장에서 만나 나정이 동행한 산부인과는 도시 외곽의 작은 병원이었다.
“임신 19주라고는 하지만 태아가 많이 커서 수술이 좀 까다로울 수 있어요.”
나정은 의사가 하는 말이 뭐가 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너는 그냥 내 옆에서 보호자라고만 해 줘.”
수빈은 아무 설명 없이 의사 앞에 나정을 앉혀 놓았었다. 임신, 19주, 태아, 수술, 이 모든 말들이 낯설고 민망하기만 했던 그날, 결국 수빈은 수술실을 향했고 나정은 몇 시간을 대기실에 앉아 있어야 했다.
누구의 아이인지 어쩌다 그렇게 됐는지 수빈은 어떤 말도 해 주지 않았다. 몇 시간이 지나자 간호사가 나정을 불러 수빈의 입원실을 안내해 주며 들어가도 좋다고 했다.
수빈은 울고 있었다. 문 앞에서 방 안의 소리가 다 들리도록 애절하고 큰 소리의 울음이었다. 다독이거나 위로해 줄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저러다 기절이라도 하면 어쩌나 싶을 즈음 한순간 울음이 뚝 멈췄다.
“아, 이제 시원하다. 우리 냉면 먹으러 갈래? 나 임신해 있는 동안 냉면이 제일 먹고 싶더라.”
금방까지 목놓아 통곡하던 애가 얘가 맞나 싶게 수빈의 얼굴이 말짱했다.
[글: 이경희 / 그림: 도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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