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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에 있다는 것만 알고, 나머지 그림이 어느 정도인지는 아직 모릅니다.”
어쩔 수 없이 넘겨짚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나소선 그림이 있다는 걸 알고 왔다구요? 누구한테 들었어요?”
정숙은 진욱과 동원을 찬찬히 쳐다보았다. 그 순간을 놓칠 진욱이 아니었다.
“제가 나소선 선생님 따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은명환 원장님도 잘 압니다. 따님이 나소선미술관을 곧 개관할 예정이라 잃어버린 그림을 찾고 있습니다.”
“무슨 소리예요? 소선이 죽을 때 임신해 있던 아이도 죽었는데, 딸이라니요?”
제대로 된 정보는 아니지만 정숙은 나소선을 잘 아는 인물인 건 확실했다. 진욱은 핸드폰을 열어 소선미술관 개관 관련 기사를 정숙에게 보여주었다.
‘작고한 천재 화가 나소선의 딸 은선우, 드디어 소선미술관 개관한다.’
긴가민가 진욱의 핸드폰을 자세히 보던 정숙이 갑자기 눈물을 퍽 쏟았다.
정숙에겐 세세한 기사 내용이 보이지 않았다. 눈에 들어온 건 나소선 딸 어쩌고 하는 큰 글자뿐이었지만, 순간 정숙의 가슴을 휘저어놓은 건 기사 옆의 은선우 사진이었다. 그건 소선의 딸 은선우가 아니라 정숙이 아는 바로 그 나소선이었다.
“어떻게, 어떻게 이렇게 지 엄마를 쏙 빼닮은….”
정숙은 놀란 눈으로 진욱을 쳐다보았다.
정숙이 소선을 만난 건 찢어지게 가난하던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부모 없이 할머니와 둘이 근근이 생활하던 정숙의 교실 옆자리에 소선이 앉게 된 건 어둠 속의 한 줄기 빛과 같았다.
소선은 정숙 사정을 알게 된 후 매일 두 개의 도시락을 싸 왔다. 학용품도, 실내화도, 체육복도, 정숙 대신 소선이 미리 챙겼다.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부잣집 공주님이 나눠주는 거라 생각하고 그냥 고맙게만 생각했던 정숙.
큰 사업을 하던 소선의 부모님이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삼촌이 그 사업을 이어받으며 소선도 그 집에서 함께 살게 되었다는 건 나중에 안 사실이었다.
소선은 늘 밝았다. 어려서부터 공부도 잘하고 똑똑했지만, 무엇보다 그림을 뛰어나게 잘 그려 어딜 가나 천재 소리를 듣는 유명인이었다.
하지만 정숙과 소선의 인연도 중학교에서 끝나고 소선은 서울의 예술고등학교에 발탁돼 학비에 생활비까지 지원받으며 서울 생활을 하게 되었다.
삼촌이 부자인데다 학비 지원까지 받는다지만 낯선 서울 생활이 만만치 않았을 텐데도, 소선은 매달 꼬박꼬박 정숙에게 돈을 보내왔다. 이제 괜찮다고 소선에게 편지를 써 보내긴 했지만 정숙이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소선의 경제적 지원은 계속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소선이 돈을 보내주지 않았다면 정숙은 고등학교 졸업장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었다.
“정숙아. 나 프랑스로 떠나….”
소선이 정숙을 찾아온 건 소선이 유명 미술 대학에 수석으로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은 얼마 후였다.
[글: 이경희 / 그림: 도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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