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업자 재승인 제도의 정치적 악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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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편 재허가·재승인 제도 허술하고 자의적… 객관·공정성 결여
文정권, 고강도 규제 수단 활용… 시대 역행하는 반민주적 행태

황근 필진페이지 + 입력 2022-09-27 11:00:43

급기야 검찰이 2000년 종합편성채널 사업자 재승인 심사와 관련해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를 압수 수색했다. TV조선 재승인 점수가 조작되었다는 의혹은 최근에 표면화되었지만, 심사점수가 지나치게 자의적이라는 의견은 심사결과 발표 직후부터 있었다. 전체 총점은 기준점을 넘었지만 방송 공정성 관련 점수가 기준에 미달해 조건부 승인을 받았기 때문이다.

매우 가혹한 조건부 승인을 받은 TV조선은 이후 방송편성에 심한 압박을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한 예로 방통위 심의 제재를 1년에 3회 이상 받으면 승인 취소된다는 조건도 있었다. 그런데 4월에 조건부 재승인 통보를 받은 TV조선은 연초에 시민단체들이 고발한 사안으로 이미 2건의 제재를 받고 있었다. 마치 사전에 각본이 짜여있던 것처럼 두 기관이 절묘한 콤비플레이를 벌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 재승인 심사는 TV조선을 비롯한 종합편성채널들을 압박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연결고리였던 셈이다. 조건부 재승인 결과가 나와야 합법적 압박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물론 그 배경에는 보수 신문이 소유하고 있는 종편들이 정치적으로 자기들에게 유리할 것이 없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다. 재승인 제도를 통해 방송사업자들에게 이른바 ‘자기검열’을 압박하고자 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재승인 제도를 정치적 통제 수단으로 악용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현행 재승인 심사제도가 너무나 허술하고 자의적이기 때문이다. 통상 모든 정책은 효과성과 형평성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물론 두 조건이 완전히 배타적인 것은 아니다. 특히 인·허가제도는 효과성이 가장 높은 정책이다. 방송행위 자체를 원천적으로 금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강한 규제인 만큼 심사 절차나 기준이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현행 방송사업자에 대한 재허가·재승인 제도는 심사 절차나 기준에 있어 객관성이나 공정성을 충분히 담보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무엇보다 전체 배점에서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공익성’ ‘공정성’ 같은 추상적 심사기준이 과도하게 높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6개 재승인 심사 항목 중에 ‘방송의 공적 책임·공정성의 실현 가능성, 지역사회 문화적 필요성(210점)’과 ‘방송 프로그램의 기획·편성 제작 및 공익성 확보 계획의 적절성(190점)’이 400점을 차지하고 있다. 여기에다 ‘방송평가(400점)’까지 합하면 무려 800점이나 된다. 재승인 심사와 별개로 정기적으로 실시되는 방송평가에도 공익성·공정성 관련 항목이 결코 적지 않다.

특히 문재인정부 들어 공익성·공정성 같은 정성적 평가 항목이 차지하는 비중을 더 높였다. 추상적이고 다의적(多義的)인 공익성·공정성 항목들은 심사위원 성향에 따라 극단적으로 상반된 평가가 나올 수도 있다. 이처럼 공익성·공정성 평가 비중을 늘림으로써 심사 과정에 특정 의도가 개입되거나 악용될 여지가 높아졌다. 더구나 TV조선 조건부 재승인의 근거가 되었던 ‘방송의 공적 책임·공정성 실현 가능성’ 항목은 전체 점수와 별개로 50% 이상의 기준을 다시 요구하고 있다. 정상적인 민주국가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이중 통제방식이다.

그렇다고 경영·기술 같은 전문분야에 대한 평가가 정량적이고 객관적인 것도 아니다. 일단 선발된 분야별 심사위원들이 자기 분야뿐 아니라 모든 분야를 다 평가하게 되어 있어 완전히 전문성에 기반한 평가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기술이나 경영·회계를 잘 모르는 타 분야 심사위원들은 사업자들이 제출한 자료에 대한 인상 평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아마도 기술·경영 분야 심사위원들도 공익성·공정성 분야를 평가하면서 같은 느낌이었을 것이다.

심지어 기술·경영 평가도 5~7점 척도로 평가하는 이른바 ‘정량적 정성평가’다. 이 때문에 기술·경영 분야는 외부 전문기관에 의뢰하거나 방송평가처럼 정기적으로 실시되는 평가결과를 반영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공익성·공정성에 대한 평가 역시 현행 방송평가제도를 보완하는 방법으로 단일화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런 요구에도 지난 정권은 반대로 재승인 심사를 더욱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형태로 만들어 운용했던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방송사업자에 대한 인·허가 제도는 유지되고 있지만, 그 의미나 심사 강도는 점점 약해지고 있다.인·허가와 무관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이미 전체 방송시장을 추월하였고, 인터넷 기반의 언론 매체들은 거의 규제를 받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공공독점(public monopoly)’이나 ‘공공수탁원리(public trusteeship)’에 근거를 둔 인·허가 제도의 존립 근거가 퇴색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지난 정권이 허술한 재승인 심사제도를 강도 높은 규제 수단으로 활용한 것은 정치적 목적 이외 어떤 다른 이유를 찾기 힘들다. 만약 여기에 불법 행위까지 있었다면, 그것은 정말 시대 역행적이면서 동시에 반민주적 행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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