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트와 그의 연인 다굴의 아지트, 프랑스 살레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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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모니-몽블랑에 위치한 ‘제네바의 발코니’
세상의 비난 피해 들어간 그들만의 안식처

최인숙 필진페이지 + 입력 2022-11-09 09:19:51

헝가리인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 한 명은 프란츠 리스트다. 피아노 최고의 거봉이자 피아노의 마술사 리스트, 그는 헝가리 도보르얀에서 태어났다. 작곡가이자 필경사로도 활동한 그는 ‘라 캄파넬라’ ‘사랑의 꿈’ ‘헝가리 광시곡’ 등 수많은 명작을 남겼다. 이 거장은 세계 각지를 돌며 연주한 자유로운 코즈모폴리턴이었다. 하지만 그의 주요 활동지는 프랑스 파리였고 생을 마감한 곳은 독일의 바이로이트였다.

프란츠 리스트는 음악광의 가정에서 성장했다. 그의 아버지 아담 리스트는 에스테르하지 오케스트라의 첼로 연주자였다. 프란츠는 어린 시절 매우 허약했다. 이런 그에게 아버지는 피아노를 가르쳤다. 피아노를 시작한 지 2년이 채 안 돼 프란츠는 바흐·베토벤·모차르트를 섭렵했다. 아담은 아들을 모차르트처럼 영재로 키우고 싶어 했다. 이런 그들에게 지원자가 나타났다. 바로 헝가리 귀족들이었다. 그들의 지원으로 리스트 가족은 1822년 비엔나에 정착했다.

프란츠는 여기서 피아니스트 체르니와 작곡가 살리에리의 가르침을 받았다. 그리고 그의 나이 열 한 살에 첫 콘서트를 열었다. 어린 프란츠는 금세 알려지기 시작했고 ‘리틀 리스트’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곧 유럽순회를 시작했고 파리에 오래 머물다 이탈리아·영국으로 떠나 연주했다. 아담은 아들 덕에 돈방석에 앉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프란츠가 열여섯 살 때 그만 세상을 떠났고 ‘리틀 리스트’는 혼자서 음악 인생을 개척해야 했다.

프랑스 파리, 헝가리인 피아니스트의 운명을 바꾸다

성년이 된 리스트는 파리로 주 무대를 옮겼다. 여기서 베를리오즈, 상드와 발자크, 뮈세, 쇼팽을 만나 영혼을 살찌우고 들라크루아와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됐다. 또한 파가니니를 알게 되면서 그로부터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운명적 사랑도 여기 있었다. 1833년 22살의 청년 리스트는 6살 연상의 여인 마리 다굴을 만났다.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난 이 여인은 독일계 프랑스인이었다. 그녀는 일찍부터 문학에 심취해 있었고 조르주 상드와 함께 프랑스 살롱문학을 대표하는 여류작가였다. 빅토르 위고, 라마르틴느와 우정을 나눌 만큼 대단한 여자였다.

다굴은 어느 날 파리의 한 귀족 살롱에서 열린 콘서트에서 리스트를 만났다. 금발에 푸른 눈의 리스트를 보자마자 그만 사랑에 빠졌다. 리스트도 마찬가지였다. 지적이고 눈부신 미모의 다굴을 보고 거부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신분의 차이가 컸지만 이 둘은 그만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다굴과 리스트는 19세기 가장 유명한 한 쌍의 커플이 됐다. 하지만 세간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파리 사교계는 이들을 비난했고 스캔들로 규정했다. 다굴은 이미 백작과 결혼해 자식이 있는 여자였다. 하지만 로맨티시스트였던 다굴은 세간의 비난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청년 리스트를 사랑했다. 리스트도 다굴에게 “당신은 내게 필요한 여자가 아니고, 내가 원하는 여자다”라며 진지하게 사랑을 고백했다. 이때 안타깝게도 다굴의 큰 딸이 병으로 죽었다. 이로 인해 그녀는 남편과 더욱 멀어지고 결국 가족을 떠나 리스트에게 왔다. 그러나 파리에서 함께 살기는 어려웠다. 그들은 스위스로 거처를 옮기기로 했다.

1835년 8월 스물 네 살의 리스트는 다굴과 함께 제네바에 도착했다. 제네바 사람들은 이 커플을 맞이했다. 하지만 이들이 살기에 제네바는 너무 엄숙하고 도덕성을 강조하는 캘빈주의자들이 많았다. 이곳 역시 리스트와 다굴을 두고 험담하며 수근댔다.

궁지에 몰린 리스트가 은신했던 샤모니-몽블랑

리스트는 알프스 지방에 있는 작은 마을 살레브로 들어가 오두막집을 빌리고 다굴과 함께 정착했다. ‘제네바의 발코니’라 불리는 살레브. 이곳은 프랑스에 속하지만 북서쪽에 위치한 제네바와 이웃해 있다. 이 아름다운 곳에서 리스트는 다굴과 여름 캠핑을 하고 샤모니 계곡을 탐험하며 인고의 시간을 보냈다. 절친인 상드는 이들을 보러 아이 둘을 데리고 파리에서 여기까지 찾아 왔다. 그들은 함께 유니옹 호텔에 머물면서 샤모니의 레보쏭과 몽블랑의 빙하를 구경하고 둘레길을 걷기도 했다.

여기서 충전한 에너지로 리스트는 다굴과 함께 벨라지오, 밀라노, 베네치아, 루가노, 모덴, 플로랑스, 볼로뉴, 로마 등 유럽의 여기저기를 여행했다. 이때 얻은 영감을 리스트는 ‘순례의 해’로 탄생시켰고 다굴 역시 글쓰기에 매진했다. 이렇게 이들은 12년간 살면서 세 명의 자식을 낳았다. 그 중 둘째 딸 코지마는 훗날 바그너의 아내가 됐다.

리스트의 은신처였던 샤모니-몽블랑. 이곳은 경치가 아름답기로 정평이 나 있다. 마을들도 매력적이고 정상에는 하얀 산이 전설적이다. 특히 샤모니-몽블랑 계곡은 세계적으로 이름난 절경들이 많다. 신비로운 풍광, 라메르 글라스와 레귀드 미디의 빙하, 블랑호수의 산책, 그리고 하얀 산 몽블랑은 경탄을 불러일으킨다.

몽땅베르 열차는 타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한 때를 보낼 수 있다. 이 열차를 타고 있으면 빙하를 지나고 역사를 감지할 수 있는 수많은 건축물들을 만나게 된다. 이 열차는 관광객을 순식간에 몽블랑 산 속으로 인도한다. 하강 길에 만나는 라 피에제르의 알프스 절경 또한 기염을 토하게 한다.

이곳엔 리스트와 다굴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지 않다. 다만 리스트의 광팬이라면 샤모니-몽블랑으로 순례를 떠나 그의 자취를 한번쯤 음미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산을 좋아한다면 더욱 주저 없이 떠나도 좋다. 4807m의 몽블랑은 알피니즘의 요람으로 스위스에서도, 프랑스에서도, 이탈리아에서도 오르는 길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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