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4호선에서 겪어본 ‘가스라이팅’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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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식의 청담유감(有感)

전장연 불법 시위로 파괴된 서민들의 1년
일반 유권자 두려워하도록 정치인 심판을
4호선 이용객 일상 무너뜨리는 불법 행위

홍찬식 필진페이지 + 입력 2022-12-07 09:07:11

지하철 4호선을 자주 이용한다. 집이 외진 곳에 있어 주변에는 4호선 아니면 달리 이용할 지하철도 없다. 믿고 의지해온 4호선에 탈이 난지 오래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시위 탓이다.

지하철역 구내, 혹은 전철 안 안내방송에서 ‘전국장애인’으로 시작되는 멘트가 흘러나오면 승객들은 곧바로 표정이 굳어진다. 시위 때문에 당분간 열차가 못 갈 것 같으니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라고 하는데 이런 말은 승객들의 짜증만 더할 뿐이다. 멈춰선 지하철 안은 싸늘한 냉기로 휩싸인다. 지난해 12월 3일 전장연 시위가 처음 시작됐으니 4호선 이용객들은 꼬박 1년 동안 이렇게 시달려 왔다.

처음에는 그들도 오죽 답답하면 저렇게까지 나올까 싶었다. 그러나 시위가 일주일이 멀다 하고 반복되고, 하필이면 월요일 아침 출근길을 꼭 찍어 이뤄지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외부에서는 이 문제를 장애인이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시위가 일상화되어버린 지금은 다른 차원으로 넘어갔다.

지하철 운행 지연은 30분은 보통이고 심할 때는 1시간을 넘는다. 전장연 홈페이지에는 47차례에 걸쳐 ‘선전전(그들은 이 어휘로 승객들을 더 격앙시킨다)’을 했다고 나와 있다. 실제 횟수로는 더 많을 것이다. 하도 당하다 보니 어느 날 시위 장소를 4호선이 아닌 다른 지하철 노선으로 옮긴다는 ‘너그러운 처분’에 고마움을 느낄 지경이다. 이런 걸 ‘가스라이팅’이라고 부르는가. 공공의 시설물을 특정 이익단체가 시위 수단으로 삼고 다수 시민을 ‘학대’해도 되느냐가 문제의 핵심이 됐다.

매사에 미주알고주알 나서는 정치인과 지식인, 이들의 불법 행위를 막아야 할 경찰까지도 시민들의 정당한 하소연에는 무관심하다. 오히려 전장연 편을 들어 ‘연대’를 주장하기도 한다. 이 높으신 분들은 평소 4호선을 타고 다니지 않는다고 확신한다. 나와는 무관한 남의 얘기니까 쉽고 섣부르게 말하는 것이다. 그나마 4호선이 지나가는 지역에 기반을 둔 소수 정치인들이 외롭게 전장연의 불법 행위를 비판하고 있다. 경찰이 업무 방해 등으로 전장연 인사들을 검찰에 송치한 것도 시위가 1년이나 경과한 지난주의 일이었다.

4호선 이용객은 국토교통부 집계로 하루 평균 83만 명이다. 전장연 시위대는 장애인 30명 정도를 포함해 많아야 100명이다. 83만 명이라는 수많은 시민의 삶이 하루 시작부터 속절없이 파괴되고 있는 데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이유는 뭘까. 한마디로 전장연은 이익단체로서 사회적 약자 프레임까지 앞세워 강하게 뭉쳐 있는 반면, 4호선 지하철 승객들은 숫자는 많지만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비단 전장연 문제 뿐 아니다. 국가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일반 국민이 배제되는 일이 허다하다. ‘대형마트 의무 휴무제’와 ‘타다 금지법’은 각각 재래시장과 택시 업계를 위해 다수 소비자와 택시 이용자들을 희생시킨 사례다. 그나마 실효성도 없는 것으로 판명되고 ‘야간 택시 난(難)’을 부르는 등 결말도 좋지 못했다. 최근 추진되는 ‘노란봉투법’ ‘양곡관리법’은 노골적으로 노조와 농민의 표를 잡겠다는 법이다. 두 법 모두 필연적으로 일반 국민들에게 큰 피해를 주는 것이지만 정치인들은 이 점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

보통 시민들은 고통과 피해를 당해도 세세하게 기억하지 못하고 쉽게 잊어버린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바쁜 생활인들은 어느 정당이 어떤 정책을 내놓았는지 구체적으로 파악할 여유가 없다. 선거 때는 전체적인 인상만으로 지지 정당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이른바 ‘합리적 무지’다.

이러니 정치인들 입장에서는 외견상 강력해 보이는 이익단체에 신경을 집중시키지, 그 반대편에 있는 일반 유권자들에 대해서는 얼렁뚱땅 넘어가게 된다. 요즘에는 일반 유권자들이 아예 정치인의 ‘광팬’을 자처하고 나서니 더 편하게 됐다.

이런 기득권 철옹성을 허물고 정치인들에게 번번이 속지 않으려면 일반 유권자들이 기억력을 곤두세우는 수밖에 없다. 더구나 지금 정치는 이성도, 양심도 모두 팽개친 상태다. 일반 유권자들의 철퇴가 무섭다면 저렇게 막 나갈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 정치는 유권자들의 기억력을 시험하고 있다.

전장연 얘기로 다시 돌아가 보자. 전장연은 처음에는 지하철역에 장애인 엘리베이터를 설치해달라고 하더니 요구사항이 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지금도 “시위를 일시 중단한다”는 말을 4호선 이용객들에게 무슨 시혜를 베풀 듯 내놓는다. 전장연 요구를 100% 수용해도 나중에 수틀리면 바로 4호선으로 컴백할 사람들이다. 그리고 앞으로 다른 이익단체들이 전장연처럼 지하철을 점거하고 요구사항을 내걸면 무슨 명분으로 막을 것인가.

전장연은 자신들이 새로운 장애인 투쟁사를 쓰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4호선 이용객들에게는 아니다. 서민들의 일상을 무너뜨리는 명백한 불법 행위일 뿐이다. 시위를 하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4호선 승객들은 지난 1년간 최대한 인내심을 발휘해 왔다. 이제는 정치인들을 향해 자신들이 갖고 있는 83만 명 숫자만큼의 힘을 보여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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