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제국의 꽃’ [1]작별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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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고 피고 또 피는 꽃이 되어 작은 꽃이 되어 당신과 함께할게요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1-04 09:40:22

사랑이 울고 있다. 나의 사랑이 울고 있다. 나는 손을 뻗어 그의 손을 잡는다. 슬픔이 이슬처럼 마디마디 열려 있다. 나의 촉수는 그 이슬을 하나씩 거둔다.

“내 사랑, 슬퍼 말아요. 나는 당신을 떠나지 않아요.”

나는 조용히 말했다. 나의 사랑이 몸을 흠칫했다. 그가 얼굴을 들어 나를 보았다. 나는 그의 이마를 어루만진다. 엄지를 들어 깊은 주름을 따라간다. 중지로는 그의 눈썹을 더듬는다. 야무진 콧날과 앙다문 입 사이로 땀과 눈물이 엉겨있다. 나는 다시 말한다.

“내 사랑, 나는 언제나 어디서나 당신과 함께 있어요. 이제 시작이에요! 같이 가요, 우리.”

그는 내 말을 듣고 있을까? 감은 눈 밖으로 비애가 배어나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그를 안고야 말았다. 그의 심장을 내 가슴에 새겨 넣으며 그렇게 한참을 있었다.

어젯밤 그는 늦게까지 나와 함께 있었다. 아들 내외가 저녁문안을 마치고 물러간 후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국제정세에 밝은 내 사랑은 ‘황제의 나라’를 만들고자 했다. 황제의 나라, ‘제국’은 요즘 트렌드였다. 먼 나라나 가까운 나라나 모두 제국이었다. 대영제국, 대러시아제국, 대청제국…. 오랫동안 우리는 대륙의 나라를 제국으로 모시고 살았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대청제국 말고도 많은 제국이 있고 그 속에서 우리 또한 당당한 제국이어야 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우리의 제국은 마땅히 ‘대한제국’이 되겠지요?”

내 사랑이 바라보았을 때 나는 얼어버렸다. 탁자 위 불빛에 비친 그의 눈은 번개처럼 번쩍였다.

“저는 당신의 뜻을 따를 거예요. 이제 대륙의 영향에서 벗어나 당당한 제국의 주인이 되셔야지요.”

섬광 같은 그의 눈을 응시하며 나의 목소리는 고조되었다. 내 눈 속에 그의 눈이, 그의 눈 속에 불빛이 일렁대고 있었다.

“태조대왕의 뜻, 세종대왕의 마음, 정조대왕의 지혜가 나를 지켜주시길 바란다오. 내겐 그 분들 모두가 부러워할 당신이 곁에 계시질 않소!”

내 사랑이 그렇게 말하며 나의 손을 잡았다. 그의 결연한 의지가 손 마디마디를 따라 나를 포위했다. 따뜻한 손! 굳은 손! 나는 그의 손을 잊을 수 없다. 나의 머리칼을 쓰다듬던 부드러움을.

어둑한 새벽 총소리에 풋잠에서 깨었다. 폭도들이 함부로 궁에 들어오는 소리였다. 그는 나를 궐 밖으로 피신시키려 했으나 시간이 없었고 내가 원하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와 함께 이곳을 지키기로 했다. 결국 나는 그에 의해 거처에 감추어졌다. 우왕좌왕하는 바깥 분위기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난입한 왜놈들 앞에서 나를 지키는 그의 고함과 아들의 울부짖음, 며느리의 흐느낌도 들렸다. 무고하게 죽어나가는 상궁과 나인들, 나의 거처 앞에서 끝내 도륙된 충성스런 대신의 죽음을 느꼈다.

놈들은 결국 나를 베었다. 차가운 물건이 내 이마를 갈랐다. 한 놈이 베기 시작하자 다른 놈들도 달려들어 나를 자르고 조각내었다. 내 사랑과 함께하던 뜰에서 우리가 정답게 걸었던 그곳에서 나는 작게 아주 작게 잘리었고 불태워졌다.

‘내 사랑 슬퍼하면 안 돼요. 지고 피고 또 피는 꽃이 되어 작은 꽃이 되어 당신과 함께할게요.”

[글 최문형 그림 박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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