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제국의 꽃’ [13] 이조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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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나라의 주인인 백성을 괴롭히는 자를 처단했을 뿐이다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1-20 10:10:01

부엌에서는 정갈한 옷매무새의 여인들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의 앳된 얼굴이었다.

“쯧쯧... 사내라고 여인에게만 관심이 있구먼, 이접주! 저분들은 어린 나이에 과부가 된 불쌍한 여인들이라오.”

“아니, 그러면 저 여인들이 모두 대도주님을 모시고 시중들며 산단 말씀입니까?”

이기달이 화들짝해서 물었다.

“이접주, 자네는 동학당에서 이름을 빼야겠구먼!”

이미생이 노기에 찬 음성으로 말했다.

“아이고, 어르신! 이놈이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이놈의 혀를 잘라주십시오! 아니, 목을 쳐 주십시오.”

“여기 이접주가 평소 농이 심합니다. 어르신, 용서해 주십시오!”

창수도 거들었다. 그러나 이미생의 화는 잘 가라앉질 않았다.

“그런데 저 여자분들은 도대체 누구길래 여기에 있습니까?”

창수가 공손하게 물었다. 이미생이 겨우 침착해졌다.

“이접주는 앞으로 조심하게나. 오늘은 여기 청년 접주 얼굴을 보아 내 참겠네.”

“요놈의 주둥아리를 용서하십시오. 참회하겠습니다.”

“우리 동학도는 누구든 차별 없이 하늘님처럼 평등하고 존귀하게 대함을 자네들도 알고 있을 걸세. 해월 대도주께서는 여인이나 어린이나 모두 하늘님으로 대하라고 가르치셨고, 임금님도 그동안 여인들이 구습에 묶여 고생하는 걸 돌보셨다네. 그래서 과부의 재가를 허용하셨지.”

이미생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여인들에 대한 배려 또한 임금님이나 우리나 똑같다네. 하지만 우리 동학도는 백성들의 사정을 더 잘 알기에 현실적인 조치를 했지. 특히 어린 나이에 정혼만 하고 혼자된 부인들도 많지 않은가. 그래서 많은 과부를 적극적으로 결혼시켰지. 여기서 일하고 있는 여인들은 다시 짝을 만난 분들이네.”

“어르신, 제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도인들 중 여인의 역할도 크겠군요.”

겨우 정신을 차린 이접주가 덧붙였다.

“내가 직접 본 이야기를 해줄까? 동학의 가르침에 감복한 어린 여성들이 지난 장흥전투에서 맹렬하게 싸웠지. 그중 이조이(‘조이’는 ‘여사’란 뜻의 존칭)란 여인이 있었어. 그녀는 백성들을 잔혹하게 수탈하는 현감을 살해했다네. 이제 22세이었는데. 살면서 처음으로 사람대접을 해 준 가르침에 감격하여 누구보다 열심히 훈련에 임하고 전투에 참가했어. 내가 나주성을 지날 때 그녀를 보았는데...”

이미생은 목이 메어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였다.

“어르신, 그런데요,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창수가 다그쳤다.

“그분은 초모관 백낙중에게 발각되어 극심한 고문을 받았는데, 그 참혹한 모습은 차마 말로 옮기기 어려운 지경이었어. 양쪽 허벅지살을 모두 잘라내어 뼈만 남아 거의 송장처럼 되어 있었다네. 상처 부위는 썩어 문드러져서 악취가 나고 대소변은 앉은 채 나오는 대로 내버려두어 사람들이 모두 그 여인을 보며 혀를 찼지. 모진 고문으로 목소리도 내기 힘든 이조이는 심문하는 자에게 이렇게 말했다네. ‘나는 하늘님과 임금님의 뜻을 따라 이 나라의 주인인 백성을 괴롭히는 자를 처단했을 뿐이다.’ 가늘지만 기백에 찬 그녀의 말에 모두들 숨을 죽이고 있었어.”

[글 최문형 그림 박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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