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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화단에서 현실주의를 이끈 화가 귀스타브 쿠르베. 수많은 명화를 남겨 예술사에 한 획을 그었다. ‘세상의 기원’ ‘절망’ ‘오르낭의 매장’ ‘플라게이의 떡갈나무’ 등 명작을 남겨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한다. 그중 ‘세상의 기원’은 여성의 하체를 노골적으로 그린 걸작이다. 너무도 사실적인 이 그림은 오랫동안 초록색 실크 베일 뒤에 가려져 있었다. 세간을 놀라게 한 스캔들의 화가 쿠르베. 그는 여성과 자연을 강렬히 사랑했다.
나폴레옹 3세가 지배하던 프랑스에서 틀에 박힌 그림을 공부한 쿠르베.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기존의 틀을 벗고 혁명적으로 캔버스를 누볐다. 획기적인 주제를 선택함으로써 그는 도발적인 화가의 화신으로 자리매김했다. 오노레 도미에·장 프랑수아 밀레와 함께 현실주의 학파를 창시한 선구자이기도 했다.
1819년 6월10일 스위스 접경 프랑슈 콩테 지방 오르낭에서 태어난 쿠르베. 플라게이 농장주의 아들로 행복한 유년기를 보냈다. 딸 부잣집의 장남이었던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 농장에서 소를 치고 동네에 나가 산사람들과 사냥꾼·어부·나무꾼들과 어울려 노는 걸 좋아했다.
쿠르베는 열네 살이 되자 예비신학교에 들어갔다. 5년간 수학할 목적이었다. 하지만 곧 신앙심을 완전히 잃고 말았다. 다행스럽게도 자상한 보 신부님을 만나 그림의 세계를 발견했다. 신학교를 나온 그는 브장송 아카데미에서 그림 공부를 계속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아들을 공학도로 만들고 싶어 했다.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지 못한 쿠르베는 폴리테크닉 대학 입학시험을 쳤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수학 점수가 나빠 낙방했다. 그러고는 법과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스무 살 되던 해 파리로 상경했다. 하지만 공부는 안 하고 오직 그림만 그렸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던가! 아버지는 결국 아들에게 손을 들었다. 일단 그림 그리는 걸 허락한 후에는 발 벗고 나서 아들을 지원해 줬다.
1840년 파리 라틴 구역에 정착한 쿠르베. 보헤미안들의 아지트를 드나들었다. 그는 정말로 자유분방해서 학교 대신 루브르 박물관을 좋아했다. 매일 거기에 나가 거장들의 그림을 복사해 연습했다. 한편 개인 레슨을 받으며 능력을 향상시키고 네덜란드 판매업자 핸드릭 장 반 위슬렝의 지원을 받아 혼자 작업했다. 다음 해 4월 노르망디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심취했다. 프랑스 북부의 아름다운 해변과 자연과 고딕식 건물을 그렸고, 다음엔 퐁텐블뇌 숲에 머물며 자연 경관에 빠졌다. 영국과 네덜란드도 여행했다.
반란이 일어난 1849년 6월에 열린 살롱전이 끝나고 쿠르베는 오르낭으로 돌아와 오래 머물렀다. 이때 그의 아버지 레지는 할아버지가 살던 집 곳간을 아틀리에로 개조해 줬다. 초라했지만 쿠르베는 여기서 1850년 12월 열릴 살롱전에 출품할 획기적인 그림들을 그렸다. 낭만적인 풍을 벗어던지고 지극히 사실적으로 그렸다. 20년간 지켜 온 화풍을 버리고 평범한 일상에서 영감을 얻어 사실주의로 눈을 돌렸다. 그것은 간소하고 솔직한 표현으로 나타났다. ‘오르낭에서 저녁 식사 후’는 이를 잘 대변한다. 이 그림은 높이 평가받아 금상을 탔고 프랑스 정부가 1500프랑을 주고 샀다. 비평가 샹플레리는 쿠르베를 응원했다.
쿠르베는 1850년 겨울 고향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장터에서 돌아오는 ‘플라게이의 농부들’을 그렸다. 그해 그는 살롱전에 불후의 명작 세 점 ‘돌 깨는 사람들’ ‘오르낭의 저녁 식사 후’ ‘오르낭의 매장’을 출품했다. 특히 장례식을 그린 ‘오르낭의 매장’은 큰 파장을 낳았다. 대형 화폭에 무명의 농부와 추할대로 추한 조문객들을 빼곡히 그렸기 때문이다. 큰 화폭은 대개 국왕이나 영웅의 장례식 그림에 사용돼 고결함과 사기를 드높인다. 하지만 이 그림은 달랐다. 다비드의 나폴레옹 대관식을 패러디한 양식이라는 의혹을 받을 만했다.
1860년부터 쿠르베는 단연 탑이었다. 프랑슈 콩테의 자연 속에서 파리가 거절한 자유의 공간을 찾았다. 그의 예술 철학은 다음 글을 통해 알 수 있다. “나는 모든 시스템에서 벗어나 전통예술과 현대예술을 공부했다. 나는 다른 사람을 흉내 내길 원치 않는다. 나는 자신으로부터 독립해 전통을 알고 모든 것을 단순화하는데 이성적으로 감정을 탐색하길 원했다.”
이런 쿠르베의 상상을 자극한 건 오르낭의 자연과 문화였다. 브장송에서 30분이면 도착하는 이곳은 니콜라 페르노·샤를르 깽·피에르 베르니에 등 역사적 인물들의 요람이 된 유적들이 남아 있어 매우 생소하고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특히 루 강으로 둘러싸인 프랑슈 콩테는 작은 베니스로 불린다. 리종과 루의 샘들과 폭포·바위가 두드러져 보이는 계곡은 그림처럼 아름답다. 가을에는 사냥감이 많은 방목림과 수렵장으로, 겨울에는 눈 덮인 대지로 변신한다. 대조적인 경치들은 쿠르베의 그림재료가 됐다.
루의 오솔길 역시 장관이다. 귀스타브 쿠르베 광장에서 시작되는 참나무 숲길은 오르낭의 골목 산책으로 이어지고 그 여정 속에서 15세기에 건축된 보퀴에르-도네이와 같은 특이한 호텔과 별장들을 만나게 된다. 구름다리 위에서 도시의 아름다운 전경을 내려다보고 있노라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생 로랑성당·나앵다리·17세기 초 닻 형태로 만든 분수도 보인다. 쿠르베의 팬들은 루의 수면에 감탄한다. 쿠르베는 이를 ‘오르낭의 수면’으로 그려 냈다. 강 옆에는 쿠르베가 마지막 작업터로 이용한 아틀리에가 남아 있다.
루의 수원지 길 계곡을 가로지르면 16·17세기의 와인 제조 박물관이 있다. 루 강가에 늘어선 이 마을은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는 인증을 받았다. 이 수원지 하류인 무티에르 오트-피에르에서 한가로이 거닐어 볼만하다. 좁고 긴 골목에 늘어선 그림 같은 집들과 유적을 에워싼 위풍당당한 풍경들은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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