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 폴리로그 > 행정·자치
[장혜원의 도란도란(道瀾道瀾)] 함운경 공화주의아카데미 상임대표
[인터뷰] 함운경 “尹정부 ‘자유대한민국 정상화’ 마지막 기회”
美문화원 점거하며 86운동권 상징된 함운경 ‘공화주의 전도사’ 앞장
“대한민국에 애착도 없으며 도덕적 우월감으로 집권까지 유지하려”
“자유주의 진영은 산업·민주화 시대 열어… 86운동권 성과 무엇이냐”
장혜원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3-10-16 19:24:55
▲ 함운경 공화주의아카데미 상임대표. 박미나 기자 ©스카이데일리
 
윤석열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대한민국세력을 특정해 언급했다.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정하는 정치세력을 가리킨다. 미국을 분단체제의 원흉으로 악마화하고 우리나라를 건국·성장시킨 세력을 친일로 매도하며 대한민국 행보를 민주화운동으로 포장해 온 사람들이다. 이들이 주도한 정부가 각종 정책실패로 민생을 파탄내고 미래를 약탈했음에도 민주화운동 경력만으로 도덕성의 우위를 자부한다.”
 
함운경 민주화운동동지회 공동대표이자 공화주의아카데미 상임대표의 말이다. 서울대 물리학과 82학번. 1985년 서울 미국문화원 점거 사건의 주모자로서 ‘586운동권의 한 상징이 된 함 대표는 ‘586의 실체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 같이 답했다.
 
미래 세대를 위해 586 청산을 외치는 게 민주화운동동지회, 민주화만으론 달성되지 못한 공화국 가치의 실현을 위해 공화주의에 천착하는 공부모임이 공화주의아카데미다. 공화주의 덕성을 갖춘 정치신인 양성도 추구한다. 586 세대가 만든 6공화국 체제의 재건축을 내세운 대한민국재건축조합추진위에도 함 대표는 이름을 올렸다현 정부에게 법치·공화의 문법을 기대한다. 국가를 정상화할 마지막 기회로 보는 것이다
 
그는 1985년 결성된 전국학생총연합(전학련) 산하 투쟁 조직 민족통일·민주쟁취·민중해방투쟁위원회(삼민투)’ 공동위원장을 맡아 그해 5월 서울 미국문화원 점거 사건을 주도하며 전국적 운동권 스타로 떠올랐다. 징역 66개월을 선고받고 복역 중 1988년 특사로 석방됐다. 이후 국회의원·지자체장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을 거듭했다
 
2016년 수산물 유통업을 시작해 현재 전북 군산에서 횟집 네모선장을 운영한다어린 시절 심취했던 쥘 베른의 과학소설 해저2만리의 미스테리어스한 주인공잠수함 노틸러스호의 선장 네모로 가게 이름을 삼았다.
 
야권 주요 인사와 지지자들 다수가 과거 동지들이다하지만 함 대표는 중소 자영업자로서 소득주도 성장론의 허구성을수산물 유통업자로서 후쿠시마 방류수가 괴담임을 솔직한 현장의 목소리로 여러 번 들려줬다학원강사·조경사업자 등을 거쳐 현재 횟집 사장인 그가 총선을 6개월 앞두고 공화주의아카데미 상임대표로서 자유시민결사체 형성 노력에 시동을 건 상태다.
 
-586운동권 과거 전반을 돌아본다면?
 
일단 공화국 시민의 기본권인 저항권에 충실했다고 본다. 그 때는 그게 대한민국 세계관·역사관의 주류였다. 그러나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386이던 이들이 나이 먹으며 힘도 키워 문재인정부의 배타적 기득권 586이 됐다. 전두환정부를 독재라 칭하면서 북한에 민주화가 필요하다는 말이 일체 없다. 남과 북에 명백하게 다른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남한을 친일파들이 세운 나라로 몰아세운다. 꿈꾸던 사회주의가 가능하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으면서 대한민국에 애착이 없다. 대한민국 뿌리부터 부정한다. 미래 비전을 제시하지도 못한 채 자신들의 도덕적 우월감만 내세운다. 오만과 독선의 결정체인 그들을 보면 전두환을 다시 보게 된다. 깨끗이 약속대로 물러나지 않았나. 여느 독재자들과 다른 모습이었다.
 
-함 대표 자신은 586 운동권 일반의 경험과 어떻게 다르고 또는 겹칠까?
 
일간지의 신간 시리즈 기사를 보며 자랐다. 대학 입학 후 좌파 경제학 관련 책을 많이 읽으면서 수탈론에 주목하게 됐다. 풍요롭지 못한 나라, 그게 누구 탓 어떤 구조 탓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산업화시대 도시근로자 위주의 쌀값정책 등이 소작농 수탈 논리로 설명되는 것에 공감했다. 
 
가톨릭농민회 소식지 등을 접하며 대학 입학 전부터 학생운동을 꿈꾸기도 했다대학에 들어가니 사복 경찰들이 교정으로 출근하고 있었다. 이게 과연 민주공화국인가 의문이 솟았으며 광주 5·18에 깊이 분노했다. 미국문화원 점거 사건도 그 연장선이었다.
 
-1985년 미 문화원 사건으로 투옥돼 험난한 삶이 펼쳐지지 않았나?
 
그런 셈이다. 마르크스·레닌도 공부한 상태에서 이듬해 옥중에서 김일성 주체사상을 접했다. 굉장히 단순한 논리 체계였고 암기만 하면 될 것 같았는데 끌리지 않았다. 주변에 주사파가 정말 많았다. 주체사상을 장착한 조직 활동가들이 다 친구들이었다.
 
다만 이 과정에서 북한에 대해 생각하고 논쟁할 기회가 많았다. 민주화운동가로 자임하면서도 북한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막막했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등 절차적 민주주의의 급격한 진전 속에 북한 중심의 민족통일을 이뤄야 한다고 믿는 NL(민족해방)파가 운동권의 압도적 주류였다. 노동해방의 PD(민중민주)는 소수였고 그마저 소련·동구권 몰락 후 전멸하다시피 했다.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세력이 대한민국의 주류로 성장하는 역설이 벌어졌다.
 
-운동권 출신이면서 전두환 대통령의 공을 인정한다니
 
훗날 알게 됐. 전두환 대통령이 박정희 산업화를 완결한 인물이라는 평가에 동의한다. 경제 문외한이라며 경제수석 김재익에게 정책 과정을 맡긴 것도 솔직하고 겸허한 모습이다. 올림픽이 열린 1988년과 이듬해의 경제호황은 그래서 가능했고 덕분에 대거 중산층의 출현이 이뤄졌다. 알고 보니 그 또한 민주화의 밑거름이었다. 전두환을 그토록 용서 못할 독재자로 말하면서 그보다 잘한 게 무엇인지 586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8월 민주화동지회를 꾸렸다. 금후 계획은?
 
몇 십 년간 교류해 온 사람들이다. 586 주류에 대한 강력한 문제 제기를 집단적으로 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1988~90년대 말까지 1년에 10만 명씩 815일 범민족대회란 이름으로 통일운동 행사를 했다. 당시 행사 때 윗사람 떠받들던 의전 행태 등을 돌이켜 보면 발상이나 습속이 북한스러웠다. 그런 문화와 사고방식이 체화된 586 주류가 우리 사회 각계각층 중진인 상태다. 
 
586이 관여한 영화나 드라마는 비슷비슷하다부자에 대한 분노가 들어가 있다장사하고 기업을 일군 사람들의 노력과 아이디어 등엔 관심이 없으면서 그 성과는 나눠 갖자는 발상이 기본적으로 널리 퍼져 있다젊은 사람들이 의욕과 도전의식이 부족한 것도 이런 시대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너도 나도 안이해지는 이런 현실이 위험천만하다
 
586에 밀려 내년 총선에 패배하면 현 정부가 큰 위기를 만난다. 반미·반일의 한계를 누구보다 먼저 실질적으로 체험한 사람으로서 이런 역사의 정리작업·증언·기록을 통해 586적폐에 맞설 생각이다그들의 잘못된 역사인식을 알리는 것이다대한민국이 민족보다 우선한다이것이 자유민주공화국의 가치다. 
 
▲ 함운경 공화주의아카데미 상임대표. 박미나 기자 ©스카이데일리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0
좋아요
2
감동이에요
9
화나요
0
슬퍼요
0
오늘자 스카이데일리
주요 섹션 기사
주소 : 서울특별시 중구 새문안로 26 청양빌딩 7층 | 전화 : 02-522-6595~6 | 팩스 : 02-522-6597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시 아01703, 등록일 : 2011년 7월 18일, 대표이사·발행인·편집인: 조정진, 편집국장: 고동석
copyrightⓒ2011, All rights reserved. Contact : skyedaily@skyedaily.com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선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