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재중 탈북민 170명에 대한 추가 강제 북송 채비에 돌입했다는 유력한 증언이 나와 북한 인권 단체 등 시민사회가 한국 정부의 향후 대응을 주문하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김태훈 사단법인 북한인권 이사장(변호사)은 23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공동으로 주최한 외신 기자회견에서 “중국 정부가 탈북인 170명에 대한 북송을 서두르고 있다는 첩보가 20일 수감자로부터 전달됐다”고 폭로했다.
김 변호사는 “현재 중국 길림성 백산시 백산 감옥에 수감 중인 탈북인 A씨가 감옥에서 ‘살려 달라’며 이모에게 연락해 첩보를 입수했다”며 이같이 밝히고 “10월 초 백산 감옥에 수감된 탈북인은 9일 북송됐으며 그 숫자는 180명”이라고 공개했다.
애초 조선일보는 중국이 아시안게임이 끝난 직후 재중 탈북인을 기습적으로 북송했다고 11일 보도하면서 북송된 규모를 600명으로 알렸다. 그러나 김 변호사가 입수한 첩보에 따르면 9일 180명이 1차 북송됐으며 170명이 2차 북송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다.
자유북한방송과 성공적인통일을만들어가는사람들(성통만사) 등 북한 인권 단체 9곳이 공동으로 주최한 이날 외신 기자회견에선 유일한 내부 증언자로 추정되는 A씨의 현재 처우와 구금 중 인권 유린 상태, 향후 탈출 및 중국 잔류 가능성 등에 초점을 맞춘 외신 질의가 이어졌다.
주최 측에 따르면 A씨는 감옥에서 간수에게 뇌물을 주고 전화 통화로 한국에 정착해 살고 있는 이모에게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전달한 것으로 파악된다. A씨가 전한 내용에 따르면 10월 초 그를 포함한 70여 명의 탈북인이 중국 동북 요령성(랴오닝성)감옥에서 북한 강제 송환 전 단계인 백산(바이산) 구금시설로 옮겨졌으며 그 감옥에는 이미 280명이 수감 중이었다. 그중 180여 명이 9일 1차로 북송됐다는 것이다.
A씨는 “수감 이후로 중국 남편으로부터 음식·의료품을 제공받았으나 며칠 전부터 완전히 금지됐다”며 “강제 북송이 임박했기 때문이다. 제발 도와달라”고 한국에 있는 이모에게 전했다고 주최 측은 밝혔다. A씨의 이모가 북한 인권 단체에 도움을 요청하면서 이날 기자회견이 마련됐다.
9일 1차 북송된 재중 북한 주민에 대한 기사가 국내·외로 전해지면서 중국 정부에 북송 반대를 요구하는 북한 인권 단체와 시민들이 많아지고 있지만 향후 대응에 관한 정부의 괄목할 만한 해법 제시는 아직 없는 상황이다.
자유북한방송 김성민 대표 “中대사관 앞 분신도 불사”
이에 대해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는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총동원해 20여 년 넘게 북한 인권 운동을 해왔지만 달라진 것이 없다”면서 간절하고 단호한 어조로 “이제 북한 인권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다 해 봤는데 남은 옵션은 세 가지밖에 없다. 첫 번째는 윤석열정부가 중국 정부에 북한 주민 북송을 금지해 달라고 직접 요청하는 것, 나머지 옵션은 북한 주민 중 하나가 중국대사관 앞에 가서 분신하거나 제네바 유엔기구 앞에 탈북민 전체가 몰려가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호소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성토했다.
또 “북한 인권 23개 단체 총연합회의 위임을 받고 왔다. 강제 북송을 당해 사형장까지 끌려갔다가 구사일생으로 탈북한 한 사람으로서 중국 정부가 취하고 있는 탈북자 강제 북송 정책이 얼마나 비인도적인지에 대해 알리고자 한다”며 “북한 인권 단체는 모든 탈북자에 대한 강제 북송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탈북민 단체는 어떠한 행동도 취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김태훈 이사장은 “이스라엘 하마스 위기만큼이나 위급한 상황이지만 국제사회의 시선은 이스라엘 전쟁에 집중돼 있다”며 “이러한 와중에 중국은 북한 주민을 북송시키고 있어 세계가 지금 중국에서 북송 위기에 처해 있는 북한 주민의 위기에 주목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날 기자 회견장에는 중국에서 강제송환됐다 재탈북에 성공한 뒤 2016년부터 한국에 살고 있는 지명희(59) 씨가 인간 이하의 굴욕적인 고문으로 트라우마가 생긴 사실을 비롯해 북송 뒤 겪었던 북한 감옥에서의 실상에 대해 증언했다.
1996년 남편의 사망으로 고군분투해 생계를 꾸려 오던 지씨는 2009년 11월 30일 북한의 강제 화폐개혁으로 그가 소지하고 있던 돈 전부를 빼앗겼다. 지씨는 “당시 그 돈으로 쌀 1470kg을 살 수 있었지만 강제노동하면서 악착같이 모은 돈을 한 번에 빼앗기고 돌려받은 북한 돈으로는 쌀을 19kg밖에 살 수 없어서 탈북을 결심했다”고 탈북 동기를 밝혔다.
탈북인 지명희 씨 “2014년 북송된 북한 주민 1명과 통나무 1대씩 맞바꿔”
탈북 뒤 중국 장춘 선교 단체에서 3개월간 성경 공부를 하고 한국으로 갈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더 머무르던 중 조선족의 밀고로 북송된 지씨는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현재 A씨가 수감된 바이산 구류장에 한 달 정도 갇혀 지낸 적이 있다.
북송 경험이 있는 일부 탈북인들은 북한 감옥보다 중국 감옥에 있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지씨의 경험담은 알려진 것과 다소 달랐다. 지씨는 “중국 연방부대 감옥에 70일간 갇혀 있었다. 감옥 안에 있는 동안 배변 용도로 자그마한 양동이를 하나 준다. 그 안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배변을 본 뒤 통이 가득 차 냄새가 나는데도 치워 주지 않았다”며 “그 통을 치워 달라고 소리를 질렀다가 전자봉을 휘두르면 숨죽이고 있어야 했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그곳에서 탈출하기 위해 매일 조금씩 뽑아 둔 머리카락과 먼지를 꾸역꾸역 삼킨 뒤 ‘배 아프니 제발 병원으로 데려다 달라’고 했지만 보내 주지 않아 고생만 했다”며 처참한 실상을 알렸다.
지씨는 중국 장백 교두를 통해 양강도 보위부에 이송된 뒤 혜산 구류소에 수감됐다. 지씨는 “강제 북송은 탈북민들에게 공포 그 자체이고 그 누구도 상상해 볼 수 없는 고통을 감내해야만 한다. 당시 고문을 받을 때 우리를 북송하는 조건으로 북한에서 중국에 한 사람당 통나무를 1대씩 주고 맞바꿨다고 말하는 걸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중국에서 북송된 뒤 북한 집결소에 들어갔다. 중국에서 돈을 갖고 왔는지 확인하기 위해 위생 장갑도 없이 여성의 자궁에 손을 넣어 숨긴 돈을 찾는다. 인간으로서 견딜 수 없는 치욕이다. 한국과 연결 고리가 있는 사람의 경우 더 가혹한 고문을 당하기도 한다”며 “고문을 하는 간수들은 북한에서 고문을 전문적으로 배운 이들로 의자에 앉혀 놓고 고문을 시키는 등 가죽혁띠(허리띠)와 구두 등으로 고문을 받았다”고 말했다.
앞서 북한 인권 단체들은 중국 내 탈북인 강제 북송을 막아 달라는 탄원서를 뉴욕에 있는 유엔 인권사무소에 제출한 바 있다. 이들 단체는 서울에 있는 유엔북한인권사무소 엘리자베스 살몬(Elizabeth Salmon) 북한 인권 공보관을 만나 탄원서를 재차 전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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