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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쉽게 읽힌다고 쉽게 쓴 것은 아닙니다… ‘블루아이’의 작가 염기원
벤처사업가에서 소설가로의 성공적인 변신
관찰하고 파고 집요하게 묻는 게 비결
임요희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2-14 11:12:36
 
▲ 염기원 작가가 신작 ‘블루아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임유이 기자
 
이런, 염기원 작가의 신작 ‘블루아이’의 출간 소식이 바람결에 실려 왔지 뭔가. ‘여고생 챔프 아서왕’이 출간된 지 불과 한 달 남짓이다. 원래는 아서왕 인터뷰를 하려고 하던 참이었다. 만남의 시간을 조율하면서 미루어 둔 인터뷰가 차기작을 소개하는 자리가 되고 말았다.
 
더 지체하다간 차차기작으로 넘어갈 판이다. 염기원의 왕성한 창작열의 비결은 무엇일까. 남들은 한 편도 쓰기 힘든 책을 어찌하여 이다지도 쉽게 쓴단 말인가.
 
이번에 출간하는 블루아이는 들개가 주인공이다. 들개를 소재로 하는 소설은 이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들개가 주인공은 아니었다. 이외수 작가의 ‘들개’는 들개 그림에 온 정신을 바친 남자의 원시적 야성을 그린 작품이다. 염기원의 들개는 어떤 들개일까?
 
염기원의 들개는 어떤 들개?
 
▲ 신작 '블루아이'의 표지. 문학세계사
“이름과 실체가 다른 것들이 있죠. 예를 들어 나도밤나무는 밤나무가 아닌데 잎이 비슷하게 생겨서 그런 이름이 붙었어요. ‘G선상의 아리아’는 영화나 드라마의 BGM으로 자주 쓰이는 바로크 음악인데 제목과 달리 원곡은 D장조입니다. 게다가 아리아도 아니죠.”
 
염 작가는 ‘블루아이’에 등장하는 아프리카들개는 우리가 알고 있는 들개와 다르다고 강조한다.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개와는 종부터 다르다. 우선 외모를 통해 쉽게 구분할 수 있는데 아프리카들개에게는 얼룩무늬가 있다.
 
그가 주목한 것은 녀석들의 호감 가지 않는 외모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개는 늑대 중 인간 친화적 특성이 있는 개체의 돌연변이다. 그중에서도 우리 눈에 예쁘게 보이는 것들만 선별해 육종을 거듭한 결과다.
 
그는 어릴 때부터 동물 다큐멘터리를 즐겨봤다고 털어놓았다. 호랑이와 사자처럼 위엄있고 멋진 고양잇과 포식자의 사냥 장면에 열광했고, 맹수를 피해 달아나는 슬픈 눈의 톰슨을 응원했다.
 
“저만 그런 것은 아닐 것입니다. 아프리카들개는 흉측해 보이는 외모뿐 아니라 사냥 방식도 잔인해 감정이입의 대상에서 제외되곤 합니다. 그래서 바로 그 점에 주목했습니다. 다른 종에 대해 지극히 인간적인 관점으로만 바라보았구나, 외모로 그들을 평가했고, 생존을 위한 그들의 선택을 야만적이라고 폄하했구나, 이런 반성이 들었죠.”
 
인간의 편견을 최대한 줄이면서 야생을 보여주는 방편으로 그가 선택한 것이 아프리카들개였던 것이다.
 
벤처사업가 출신 소설가
 
그는 글을 쓰기 전 사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떻게 하다가 소설가의 길로 들어선 것일까? 사업 경험이 소설을 쓰는 데 도움이 될까?
 
“대학 입학 직후 연달아 벤처기업을 창업했어요. 그러면서 글을 쓰겠다고 전국 일주를 떠돌았죠. 돌아와서 입대했고 40개월간 장교로 근무했습니다. 전역 후 포털회사와 미디어렙을 다니다가 모바일 관련 스타트업을 창업했어요. 정신 없이 바쁘게 지내던 어느 해 봄이었어요.”
 
그가 번아웃에 빠져있을 무렵 그 사건이 터졌다. 있어선 안 될 일이었다. 팽목항 바다에서 벌어진 참사를 보고 그는 깊은 슬픔에 빠졌다. 며칠을 소리 내어 울었다.
 
“분노와 함께 허탈감이 몰려왔습니다. 자본주의라는 OS(Operating System, 운영체제)의 관성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오래전 멈추었던 글쓰기를 다시 시작했다. 그해 단편소설 공모전에서 수상했고, 곧이어 문예지 신인상도 받았다. 하지만 등단작가라고 해서 글만 쓸 수는 없었다. 창업 관련 강사를 하며 웹소설을 썼고, 팟캐스트 방송을 만들었고, 대학 강의도 했다. 그러다가 쓴 첫 번째 장편으로 문학상을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소설가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나름대로 치열하게 살았지만 진득하게 한 분야를 파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편력의 길을 걸었지요. 그런데 그게 소설가로서 자산을 쌓는 과정이 되었습니다. 여러 번의 사업 경험 특히 IT 분야에서 겪은 것들은 ‘구디 얀다르크’에, 강의를 하며 느낀 것들은 ‘오빠 새끼 잡으러 간다’에 녹여 넣었습니다.”
 
그는 창업 강의를 할 때 ‘빠른 실패’를 강조한다. 방점은 ‘실패’가 아니라 ‘빠른’에 찍혀있다. 사업은 실패로 끝날 확률이 높다. 소설도 마찬가지다.
 
“사업에서는 MVP(최소 기능 제품)를 빠르게 만드는 게 중요한데, 이를 소설에 적용해 시놉시스를 빨리 뽑아냈습니다. 나름의 창작 프로세스가 정립된 것이지요.”
 
마르지 않는 영감의 원천 관찰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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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장점은 마르지 않는 영감이다. 그것은 타고나는 것일까, 노력의 결과일까?
 
“영감을 얻는 때와 장소가 제각각이었어요. 달리기나 근력운동 같은 루틴을 수행할 때 소재가 번뜩인 적이 여러 번이었고 특히 여행을 가면 꼭 하나씩 건지더라고요. 강원도의 동굴·등대가 있는 어촌마을·짐바브웨의 마나 풀스 국립공원 심지어 우주 공간까지….”
 
다양한 배경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만큼 소설 속 등장인물도 다양하다. 십 대 청소년부터 중년의 우주인·수상한 연극배우·복싱하는 여고생·블루아이에 등장하는 아프리카들개도 그렇고 외계인과 귀신마저 등장한다. 그의 소설에 출연하지 못할 인물군·동물군은 없다.
 
“샤워하다가, 꿈속에서, 술을 마시다, 어느 때고 떠오르는 것들을 휴대폰 메모장에 적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영감을 얻는 게 타고나는 것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고민하는 만큼 얻기는 했어요. 걷는 걸 좋아하는데 낯선 곳에 갈 때면 곧잘 길을 잃곤 합니다. 제 삶도 그러했는데 많은 시도를 한 만큼 실패도 자주 겪었어요. 힘든 시기를 지날 때마다 언젠가는 소설로 써야겠다고 다짐하며 버텼습니다.”
 
그는 자신이 몸 담고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무엇이든 자세히 관찰하는 습관이 있다. 그는 다양한 사람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인다. 지금 이곳에서 벌어지는 현상·인물·사건을 유심히 관찰하고 끝까지 파고 그 배경과 이유를 집요하게 묻는다. 또한 그는 경계선 밖에 있을 것·비판적인 시각을 잃지 않을 것이라는 원칙도 세워 두었다. 소설가라면 꼭 필요한 직업정신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습관과 원칙이 다양한 캐릭터를 만드는 바탕이 된 것 같습니다. 다행인 것은 저에게 전혀 없는 줄 알았던 농업적 근면성이 글을 쓸 때만큼은 제대로 발휘되더라고요.”
 
가족 친화형 소설가
 
예술가에게 가족은 짐스러운 존재이기 쉽다. 그런데 그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뜻밖에도 외할아버지다. 또 어머니·여동생과도 친밀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궁금했다.
 
“외할아버지께서는 평생 도인으로 살며 가난한 자유인을 지향하셨어요. 4대째 한의사를 하시면서 제중신편(濟衆新編)을 필사해 추사체를 독학하셨습니다. 무척 산만했던 유년 시절, 저는 방학 때면 외가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침부터 외할아버지 옆에서 먹을 갈았고, 종일 붓글씨와 그림을 배웠어요. 한번 붓을 들면 열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서화에 매진하시던 모습을 지켜보았는데 그게 제게 큰 귀감이 되었죠.”
 
그의 외할아버지는 11개 서예 단체의 초대작가와 심사위원을 여러 차례 역임했지만 생애 마지막까지 후진 양성과 서화에 전력을 다하며 재야 예술가로 지냈다. 그렇다고 많은 제자를 둔 것은 아니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았다.
 
“조지 부시 대통령·토니 블레어 총리·모로코 국왕 등 소수만이 작품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부와 명예 같은 것들과 늘 거리를 둔 채 평생 예술혼을 사르시던 외할아버지의 모습은 제게 예술인의 표상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어머니는 그런 외할아버지의 큰딸이었다. 염 작가의 기억 속 어머니는 늘 책 읽었다.
 
“지금도 한결같으세요. 제 글쓰기 선생님이기도 했습니다. 초등학교 때 어머니와 함께 백일장에 나가 모자가 함께 수상한 적도 있어요. 어머니는 제 초고를 가장 먼저 읽는 두 여인 중 한 명입니다. 다른 한 명은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여동생인데 누구보다 꼼꼼하게 읽고 피드백을 줍니다.”
 
‘오빠 새끼 잡으러 간다’를 쓰게 된 것도 여동생 덕분이라고 한다. 그는 장편을 집필하는 동안 오롯이 혼자 지낸다. 대신 주말이면 어머니와 여동생을 만나 쉼의 시간을 갖는다. 함께 영화를 보고 감상을 나눈다. 쓰고 있는 글에 관해 의견도 주고받을 때도 있다. 염 작가는 그게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루틴이 나를 쓰게 한다
 
그에게 소설 쓴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어떻게 하면 그렇게 지치지 않고 오래 그리고 빨리 쓸 수 있는 걸까?
 
“문학상을 받으며 첫 책을 낸 뒤 장편 두 개를 연달아 썼지만 좀처럼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인생 마치 비트코인’을 쓰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시도를 했어요. IT 계에 ‘크런치 모드’라는 용어가 있는데 제품 출시를 앞두고 강도 높게 근무하는 행태를 뜻합니다. 소설 쓰기에도 이 방법을 적용했지요.”
 
이른바 ‘창작의 행군’이 시작된 것이다. 창작의 행군을 이어가는 2년 동안 여덟 편의 장편을 쓰며 크런치 모드를 반복했다. 그리고 8편을 쓰고 난 후 자세를 변경했다.
 
“예술혼을 불사르갰다는 일념에서 벗어나 하루하루 성실하게 쓰는 사람으로 변모했어요. 엑셀로 집필 진도를 관리하며 40일에 하나꼴로 초고를 썼고, 다음 작품을 쓰기 전까지는 퇴고에 매달렸어요. 글 쓰거나 고치는 일에 하루 대부분을 사용했고 나머지 시간은 단순하고 담백한 루틴을 매일 반복했습니다. 그게 오히려 빠르면서도 꾸준히 쓰게 된 비결 같아요.”
 
빠르게 쓰기 위해 그가 준비했던 것이 또 있다. 소설 속 등장인물과 동화되는 것이다.
 
“깨어있는 시간은 물론 잠들기 직전까지 등장인물이 되어 소설 속에 펼쳐놓은 상황에 몰입했어요. 그러면 집필하는 동안 이야기 전반을 장악하는 것은 물론 내일 펼쳐질 그러니까 집필할 내용을 고민할 필요가 없더라고요. 처음에는 그렇게 한 편을 쓰고 다음 작품을 쓸 때까지의 시간이 꽤 괴로웠습니다. 메소드 연기를 하는 배우들과 비슷할 것 같은데 여러 편을 쓰다 보니 여기에도 나름의 요령이 생기더군요.”
 
그는 소설가의 일과에 대해서도 들려 주었다. 집필하는 기간 그는 점심 무렵에 일어난다. 하루에 두 끼를 먹되 점심은 조금만 먹는다. 식사 후 커피를 마시며 집필을 위한 예열을 시작한다. 이메일을 확인하고 인터넷 서핑을 한다. 모든 준비가 끝나면 듀얼 컴퓨터를 활용해 왼쪽 모니터에 시놉시스나 참고 자료를 띄워놓고 오른쪽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뒤 몰입하여 쓴다.
 
“조금 지루해질 무렵 피아노를 칩니다. 장편을 쓸 때마다 내용에 맞는 새로운 곡을 연습하는데 레퍼토리가 벌써 열세 곡이 되었네요. 매일 같은 곡들을 연주하고, 그게 끝나면 또 글을 쓰다가 저녁 먹기 전에 스트레칭과 근력운동을 합니다. 하루 중 가장 싫어하는 시간인데요, 초보 작가 시절 매일 늦게까지 작업하다 허리에 통증을 느낀 이후로는 빼먹지 않는 루틴입니다. 운동을 마치면 저녁을 먹습니다.”
 
저녁 뉴스가 끝나면 디카페인 커피를 마시며 다시 야간작업을 시작한다. 쉬지 않고 글을 쓰다가 11시 무렵 밖으로 나간다. 달리기를 하기 위해서다. 일산에 있을 때는 5km 조금 넘게 뛰었는데 요즘에는 7~8km를 달린다. 
 
달리기를 마치고 돌아와 이온 음료를 마시고 샤워를 한 뒤 다시 지칠 때까지 글을 쓴다. 그러다 보면 새벽 4시를 넘기기 일쑤다. 잘 안 써지는 날이나 반대로 정말 잘 써지는 날에는 날이 밝을 때까지 쓴다. 그리고 잠이 들고, 눈을 뜨면 점심 무렵이다.
 
“이걸 집필이 끝날 때까지 반복하는 게 평일의 일과입니다. 주말에는 아무리 바빠도 작업을 쉬고 식구들과 시간을 보냅니다. 집필하지 않을 때도 큰 틀에서는 차이가 없습니다. 작업 대신 책을 보거나 소설이 아닌 글을 끄적이거나 자료조사를 하죠.”
 
새해 들어 부쩍 모임과 술자리가 잦은 편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그는 강박적으로 루틴을 따른다. 다음 집필을 위해서다.
 
정리하는 분위기에서 차기작이나 출간 계획이 있는지 물었다.
 
“창작의 행군 기간에 쓴 소설 여러 편이 출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문명이 초기화된 상황에서 생존한 아이들·가족을 모두 잃고 죽으려 했던 남자 이야기·세상을 무대로 연극을 하는 이야기 등 다양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집필할 작품들 역시 메모장 앱에서 대기하고 있다.
 
“한 줄로 정리한 아이디어도 있고 간단한 시놉시스 형태도 있는데 사실 터무니없이 많습니다. 그중 혁명을 꿈꾸는 사람들의 얘기를 가장 먼저 쓰게 될 것 같습니다. 근미래의 한국이 디스토피아가 된 모습을 다루는 소설이에요. 하드보일드한 내용으로 제가 좋아하는 문체를 마음껏 사용할 예정입니다.”
 
업계에는 ‘소설가라면 무릇 이래야 한다’ 하는 것들이 있다. 업계의 원칙 같은 것이다. 그 원칙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닥치고 써라!”이다. 그리하여 소설가 염기원이 사용하는 문체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열심체! 염기원은 오늘도 쓴다, 열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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