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결과가 여당 참패·야당 압승으로 끝났다. 예측된 결과라지만 의석수 격차가 너무 컸다. 국민은 정권 심판이라는 준엄한 잣대로 충격적인 결말을 만들었다. 공천 과정을 비롯하여 막말·불법 대출 등 파행과 논란이 많았지만 국민은 오만하고 무능한 정권의 독주에 제동을 거는 선택을 했다.
우리에게 리더십의 복이 없는 것인지 이러한 일이 반복적으로 생기면서 국민은 희망을 잃고 국가는 후퇴를 거듭한다. 이에 분노한 국민은 국가의 미래보다 당장 현재의 삶에 강한 불만을 표출하면서 몇 년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선거를 통해 의사를 나타낸다. 정치 세력은 이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진영을 가르고, 말초적인 이슈 확대를 통해 자기편을 최대한으로 끌어들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승리를 쟁취한다.
미래는 실종되고 항상 현재에 함몰되어 쳇바퀴를 돌면서 시행착오를 밥 먹듯이 한다. 이제 거대 범야권이 민생을 살리겠다면서 팔을 걷어붙일 것이 자명하다. 반(反)기업·반(反)시장 관련 입법을 강행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중단된 노란봉투법·방송법·양곡관리법 등에다 민주화유공자법에 이르기까지 야당이 내걸었던 각종 정책이 빠르게 트랙에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최근 점화된 상속세 완화법이나 금융투자 소득세 폐지 등도 동력을 상실하면서 무산될 가능성이 커졌다. 야당에선 또한 선거 때 공약했던 1인당 25만 원 민생회복 지원금도 밀어붙일 공산이 크다.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즉 지난 정부 시절로의 회귀가 감지되면서 벌써부터 부동산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예측마저 나오고 있다.
선거 기간 중 최대 쟁점이 되었던 물가가 과연 잡힐 수 있을 것인가도 주목된다. 야당이 선거판을 정치 심판으로 몰고 가면서 정부의 가장 큰 실정으로 지적한 것이 바로 물가이고 이에 상당수 국민이 동조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물가가 내려가기보다 더 올라갈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는 마당이다. 여야가 한목소리로 각종 포퓰리즘 공약을 남발하였으니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부가 시행된다면 시중에 돈이 더 풀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한편 정부 압박에 억눌려 가격 인상을 자제했던 소비재 기업이 시기를 조율하고 있어 설상가상으로 민생이 더 어려워질 수도 있는 모양새다. 지금 전 세계가 겪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은 앞서 3년간의 코로나19 기간 중의 유동성 증가와 전쟁으로 인한 공급망 혼란, 기상 재해 영향이 크다. 물가 전쟁은 지구촌 대부분의 나라가 실시간 치르고 있는 현재 진행형의 상황이다.
미국을 비롯하여 상당수 국가의 물가가 점진적으로 안정되어 가는 추세다. 이에 따라 연내 적당한 시기에 금리인하를 시작할 것으로 예측된다. 우리도 큰 고비를 넘어가는 과정에 있으며, 미국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인하 시점을 검토하는 중이기도 하다. 냉정하게 따져 보면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고통은 현 정부보다 지난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등 명목으로 엄청나게 시중에 풀린 유동성에서 비롯되었다는 평가가 더 정확하다. 경제는 공짜가 없고 반드시 대가를 치르기 마련이다. 문재인정부의 후유증을 현 정부가 덮어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가 이에 대해 아무 변명도 하지 못하고 있는 게 아쉽고 철저한 원인 분석과 더불어 재발을 막기 위한 구체적인 처방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더욱 안타깝다.
주요국 외신들도 앞 다투어 한국 총선 결과를 보도하고 있다. 우선 미국은 선거 결과로 한국 정부의 외교정책 근간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를 보낸다. 일본은 최근 개선되고 있는 한·일 관계가 냉각되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을 보인다. 중국은 윤석열정부가 레임덕 위기에 빠질 수 있다면서 내심 반기는 분위기다. 특히 한국 사회의 근본적 변화에 대해 주목한다. 이념이나 도덕보다는 권위주의에 대한 반감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 평균 상식 수준 이하의 시정잡배들이 정치판에 몰리다 보니 내로남불이 당연시되고 오히려 진영 간의 보복 의식이 강하게 자리를 잡는다. 이에 따라 상대의 독선적 정치 행태에 대한 분노를 키우면서 규범이 작동하지 않는 비이성적인 사회로 변모해 가고 있다.
선거를 통해 다수 국민이 국가 장래보다 현재에 더 집착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현재의 삶이 더 중요하고, 경제적 격차 해소에 관심이 더 크다. 성장 잠재력 확장을 통한 파이 확대보다 있는 파이를 나누는 데서 정부의 역할을 기대하고, 더 강력한 수단을 통해 불평등이 시정되기를 원한다. 기다리지 못하고 당장 이를 실현하라고 주문한다. 이것이 국가가 직면하고 있는 딜레마이고, 정치는 유불리를 계산하면서 이 틈새를 파고들어 국가를 퇴행시키는 마중물이 되고 있다. 파이를 키우기 위한 규제 완화 동력이 약화될 것이고, 재개발·재건축 추진에는 빨간불이 깜빡거린다. 연금·노동·교육 등 3대 개혁 과제는 후퇴할 것이다. 총선이 끝났지만 주어진 여건은 바뀐 것이 없다. 그러나 정치판은 승자독식 구조로 근본적 처방보다 임기응변식 미봉책을 연발하면서 바닥으로 가는 길을 재촉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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